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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2026.08.07.
“이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맹인 바둑 고수 ‘주님’의 대사입니다. 친구와 레버리지 ETF 사태 관련 얘기를 하다가 이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정부가 처음 이 상품을 허용한 취지는 대략 이랬을 겁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관련 레버리지 상품으로 향하던 국내 투자 수요를 국내 증시로 돌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자.” 취지만 놓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정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려할 만한 지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나치게 높았고, 상품 출시 당시 두 종목의 주가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대형주에 레버리지까지 더한 상품이 등장한다면,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정부가 국내로 다시 끌어오려고 했던 홍콩 시장의 투자자들은, 적어도 이런 상품에 관한 한 상당한 경험을 가진 투자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나라 증시에 상장된 파생·레버리지 상품까지 찾아가 거래하는 투자자는 일반적인 개인투자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상품 구조와 괴리율, 유동성, 기초자산의 밸류에이션과 변동성 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거래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엔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 시장의 ‘고수’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 유사한 상품이 출시됐다고 해서 그들이 정부의 기대만큼 대거 돌아왔을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상품이 국내에 상장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위험을 먼저 계산하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정부가 기대했던 ‘고수들의 귀환’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기존에는 이런 고위험 상품에 접근하지 않았던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새롭게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해외 시장의 복잡한 상품을 직접 찾아 거래하던 숙련된 투자자를 국내로 불러들이려던 정책이, 역설적으로 국내의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들에게 레버리지 상품을 대중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고수를 위한 상품이 수많은 평범한 '하수'에게까지 손쉽게 열리면서, 누군가에게는 놀이터였던 시장이 누군가에게는 생지옥이 됐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책당국은 이런 결과를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이상 그 답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론이 제기되는 정책 결정자들은 대한민국의 금융·경제 정책을 오랫동안 다뤄온 전문가들입니다. 복잡한 금융상품의 구조와 개인투자자의 행태, 레버리지 상품이 상승장과 과열 국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중의 의심은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섭니다. “위험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알면서도 정책적 효과를 위해 감수한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미필적 고의’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법률적 의미에서 누군가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책 결정 과정과 책임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감정이 왜 단순한 아쉬움이나 실망을 넘어 ‘분노’로 향하는지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고와 사건의 차이를 떠올려보면 그렇습니다. 사고에는 대개 희생자만 남습니다. 반면 사건에는 피해자뿐 아니라 책임을 물을 대상, 즉 가해자의 존재가 전제됩니다. 코로나19나 2008년 금융위기처럼 거대한 외부 충격에 의해 발생한 위기는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위험에 밀어 넣었다고 단순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부 투자자들의 감정은 다릅니다. 위험한 상품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위험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문을 활짝 열어준 정책 결정이 있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번 일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건’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결국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금융시장은 원래부터 고수와 하수가 함께 존재하는 곳입니다. 누군가는 위험을 읽고 이용하며 돈을 벌고, 누군가는 같은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손실을 입습니다. 그렇기에 정책의 역할은 고수에게 더 큰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하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지옥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선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도 결국 그것일 겁니다. 고수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아래 만든 놀이터에, 정작 돌아온 것은 고수가 아니라 수많은 하수였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면 과연 이것을 개인투자자의 단순한 사고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요. 레버리지로 큰 손실을 입은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있는 방법이 이런 글과 밥한끼 사는 것 정도밖에 없어서 안타까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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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
2026.08.07.
이번 건은 누가 모라 해도 잘못 한거죠. 정책 한번 잘못 쓰면 시장이 거덜난다는거 정책 책임자들이 책임을 지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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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술
2026.08.07.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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