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5일 전
노동장관이 종로 3가역을 전태일역으로 부르자고 한다. 내심 환영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 괜한 갈등을 자극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적극 찬성하기 어렵다. 정치 부족주의 시대에 이런 식으로 공공시설을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물로 만들면, 다른 정치 부족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보수 정부가 구미역을 박정희역으로 병기하자고 하면, 진보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공공시설 이름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식으로 반대하면, 또 길고 지루하고 무익한 역사 논쟁, 진영 갈등이 시작되지 않을까. 산업재해, 임금체불, 노동자 간 임금 격차, 무리한 정부 개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노동권 후퇴 등 온갖 노동 문제가 염증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 고작 전철역 이름 바꾸기인가.
예로부터 무능한 정치인은 이름 같은 상징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쉬운 일이니까. 신자유주의가 세상의 표준처럼 굳어진 뒤로, 여러 진보주의자가 신자유주의 외 대안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시장경쟁을 감독하고 개개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국가 주도 발전이나 공공부문 확대 등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꺼리는 일이 되었다.
더이상 경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없으니, 진보주의자가 존재 가치를 주장하려면 말을 바꿔서 사람들의 기분이라도 풀어줘야 했을 것이다. 더이상 저소득 노동자와 실업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고소득 - 고학력 리버럴층의 고상한 취향이라도 공략해야 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주의의 새 표준이 된 데는 이런 원인이 있지 않을까.
만약 보수의 상징 인물도 함께 공공시설 이름에 넣자고 제안했었다면, 정치 부족 간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시도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거제역을 '김영삼역'으로 부른다든지, 청계천 옆에 '이명박 대통령 기념비'를 작게 만든다든지.
그런데 바로 얼마전에 이재명 대통령은 용혜인 의원을 장관 후보로 지명하고 '좌아하게' 라는 재미 없는 말장난을 쳐서 좌파를 공략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동영 통일장관은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태일역'만 등장했으니, 기성 진보 외 사람들은 그 의도를 의심할 법하지 않을까. 특히 보수층에게는 세상이 누구 것인지 보여주려는 권력 과시로 보이지 않을까.
내가 따르는 진보의 척도는 평등한 분배 그 자체가 아니라 우애와 협력이다. 더 우애 깊고, 더 원활하게 협력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 역시 역사 깊은 진보주의 전통 중 하나다. 그런 진보주의 관점으로 볼 때, 노동장관의 행보는 퇴보적이다. 부디 정치 부족주의 시대에 적응해서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셨으면 좋겠다. 노동장관 뿐만 아니라 기성 진보 전체가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되어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계급 없는 사회의 주된 매력은 사람들 사이의 관습적이고 감정적인 장벽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평등의 모델은 학교 친구이든, 직장 동료이든, 술친구이든, 동료들의 구속 없는 교제이다. 평등의 근본적인 목표는 동일성이 아니라 동료애이다."
- 티모시 A. 틸턴
(Timothy A. Tilton, A Swedish Road to Socialism: Ernst Wigforss and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Swedish Social Democracy,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73, No. 2,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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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댓글

컨츄리 부부
5일 전
이건 좀 아닌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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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제자
5일 전
저분은 할일이 없나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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