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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yun_noir
2026.08.21.
사주명리를 보다 문득 생각나 쓴 단편. 제목 : 가능성의 설계자 비가 오기 직전에는 도시의 냄새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습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습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기압이 내려가고, 자동차가 지나간 아스팔트 위로 먼지가 낮게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결과를 맡고서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 비 냄새.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게 이상했다. 세상은 언제나 결과에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나는 결과보다 그 앞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왜 저 사람은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저 가게에는 이상하게 사람이 몰릴까. 왜 똑같이 노력했는데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까. 그리고 가장 오래 붙잡았던 질문.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되었을까. ⸻ 마흔두 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작은 회사의 운영팀장이었다. 직함은 그럴듯했지만 실제 업무는 간단했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갔다. 기계가 멈춰도 나를 불렀고, 거래처가 화를 내도 나를 불렀고, 직원끼리 싸워도 나를 불렀다. 사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역시 자네밖에 없어.” 처음에는 칭찬인 줄 알았다. 십 년쯤 지나서야 그것이 저주라는 걸 알았다. 내가 문제를 해결할수록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확인할수록 사람들은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일의 마지막에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말했다. “됐어요. 그냥 제가 할게요.” 그 말은 언제나 일을 빨리 끝냈다. 그리고 조금씩 내 인생도 끝내고 있었다. ⸻ 그날도 새벽 두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는 피곤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 “뭐가 잘못된 거지?” 습관처럼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인력 부족? 아니다. 업무 분배? 그것도 일부다. 직원들의 능력? 아니다. 사장의 경영 방식? 그것도 아니다.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문제는— 나인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끊었다.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짜증이 나서 받았다. “누구세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습니다.” “뭘요?” “당신이요.”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사진이었다. 검은 종이 한 장. 가운데에는 흰색 선들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지하철 노선도인 줄 알았다. 확대했다. 선마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취업. 퇴사. 결혼. 이별. 사업. 파산. 성공. 죽음. 수백 개의 갈림길. 그리고 모든 선이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내 이름과 무언가 적혀 있었다. 《운명지도》 나는 피식 웃었다. “별 미친 사기를 다 보겠네.” 삭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멈췄다. 지도 한쪽에 작은 문장이 있었다. 2026년 8월 21일 02:17 현재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은 7초 뒤 뒤를 돌아본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안 돌아보면 된다. 쾅!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나도 모르게 돌아봤다. 화면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확인 완료." 등골이 서늘해졌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공포보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확대하고, 캡처하고, 선들의 규칙을 찾았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쯤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이건 미래를 보여주는 지도가 아니었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내가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37개의 선이 생겼다. 남으면 22개. 누군가에게 전화하면 11개. 전화하지 않으면 8개.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미래가 갈라졌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멀리 갈수록 선들이 흐려졌다. 1년 후는 희미했고, 10년 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현재에 가까운 미래만 상대적으로 선명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평생 궁금했던 것이 눈앞에 있었다. 인과관계. 선택과 결과. 원인과 미래. 나는 그날부터 지도를 사용했다. ⸻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회의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비교했다. A를 말하면 직원이 반발했다. B를 말하면 사장이 반발했다. C를 말하면 둘 다 침묵했다. 나는 C를 선택했다. 정확했다. 투자도 해봤다. 사람도 시험했다.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때 생기는 미래와 내가 직접 했을 때의 미래를 비교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선을 골랐다. 3개월 만에 회사의 적자는 사라졌다. 6개월 만에 임원이 되었다. 1년 뒤에는 독립했다. 사업은 성공했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불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천재가 아니다. 나는 단지 실패하지 않는 길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지도의 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백 개였던 선택지가 어느 순간 열 개가 되었다. 열 개가 다섯 개가 되고, 다섯 개가 세 개가 되었다. 이유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항상 가장 좋은 미래만 골랐다. 위험한 선택을 제거했다. 실패할 선택을 제거했다. 손해 볼 선택을 제거했다. 사람에게 배신당할 선택도 제거했다. 그 결과— 내 인생에서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 결정적인 사건은 딸에게서 일어났다. 열일곱 살이었다. “아빠, 나 미술 할래.” 나는 즉시 지도를 열었다. 미대 진학. 실패 확률 63%. 취업 불안정. 소득 낮음. 중간에 포기하는 미래 다수. 반면 내가 추천한 전공은 안정적이었다. “취미로 해.” 딸이 나를 바라봤다. “왜?” “네 미래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내 미래를 아빠가 어떻게 알아?”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딸이 방문을 닫았다. 나는 지도를 확인했다. 내 조언을 따르게 만들면 안정적인 미래가 펼쳐졌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괜찮은 소득.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수많은 선 가운데 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딸이 미술을 선택하는 미래였다. 가난했다. 몇 번이나 실패했다. 스물아홉 살에는 크게 좌절했다. 그런데 서른다섯 살의 딸이 웃고 있었다. 반대로 내가 골라준 길의 딸은 성공해 있었다. 좋은 집. 높은 연봉. 안정적인 생활. 그런데 웃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지도 앞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 그날 밤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여자였다. “이제 알겠습니까?” “당신 누구야?” “당신보다 먼저 지도를 받은 사람.” “이걸 왜 나한테 줬지?” 잠시 침묵. 그리고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라면 다르게 쓸 줄 알았습니다.” “뭘 다르게?” “우리는 모두 같은 실수를 했거든요.” “무슨 실수?” 여자가 웃었다. “지도를 받으면 처음에는 미래를 바꾸려고 합니다.” “…….” “그러다가 미래를 통제하려고 하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까지 통제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 새벽까지 지도를 바라봤다. 내 인생의 선들은 이제 거의 하나로 모여 있었다. 성공. 더 큰 성공. 더 많은 돈. 더 강한 영향력. 완벽했다. 그래서 끔찍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가능성을 보는 능력을 얻고서, 가능성을 하나씩 죽이고 있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틀리지 않기 위해. 내가 모든 것을 선택했다. 회사에서도. 사업에서도. 가족에게도. 항상 같은 말을 하면서.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니까.” 나는 평생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를 내가 만들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 “미술 해.” 문이 열렸다. 딸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갑자기?”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딸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웃었다. “실패하면 네가 책임져.” “……뭐?” “성공해도 네 거고.” 딸은 한참 나를 보다가 물었다. “아빠는 안 도와줘?” 예전의 나라면 계획표부터 만들었을 것이다. 학교 목록. 포트폴리오 전략. 취업 가능성. 나는 그 모든 말을 삼켰다. “필요하면 도와줄게.”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선택은 네가 해.” 그 순간 휴대전화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운명지도를 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10개. 100개. 1,000개. 셀 수도 없었다. 딸의 미래뿐만 아니었다. 내 미래도 다시 갈라지고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는 나. 성공하는 나. 누군가를 만나는 나. 혼자가 되는 나. 여행을 떠나는 나. 책을 쓰는 나. 모든 것을 잃는 나. 다시 시작하는 나. 수없이 많은 내가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것들을 지우지 않았다. ⸻ 화면 맨 아래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운명지도 최종 사용자 평가》 질문은 하나였다. 당신은 이제 운명을 이해했습니까? 나는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입력했다. "아니." 잠시 후 답장이 나타났다. "정답입니다." 지도가 사라졌다. 영원히. ⸻ 몇 년 후.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문제를 가져왔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전 같았으면 답부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대부분 당황했다. 어떤 사람은 틀린 선택을 했다. 어떤 사람은 실패했다. 답답할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이지, 내가 하는 게 백 배는 빠를 것 같았다. 그래도 기다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갔다. 누군가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까지 만들어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평생 만들려고 했던 것은 완벽한 답이 아니었다. 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였다. ⸻ 비가 오기 직전이었다. 창밖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옆에 있던 젊은 직원이 말했다. “비 냄새 나네요.” 예전의 나라면 설명했을 것이다. 습도와 기압과 바람과 아스팔트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그냥 창문을 열었다. “그러게.”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웃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결과까지 내가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은 발견할 수 있다. 선택할 수도 있다. 설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순간, 지도는 감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운명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운명을 믿지 않는다. 길은 걷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했던 길도, 돌아갔던 길도, 잘못 선택했던 길도, 지나고 나면 하나의 선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을 뒤돌아보며 말한다. 운명이었다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지도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가능성은 주어지는 것이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며, 운명이란 결국 걸어온 뒤에야 완성되는 지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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