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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유변호사
2026.07.07.
위대한 투자자 찰리멍거의 비극적 개인사 및 교훈 워렌버핏의 평생 동지인 찰리 멍거의 삶은 성공담으로만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개인적 비극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태도로 삶을 살아갔고, 이러한 경험이 그의 투자 철학과 인생관을 형성했다. 1. 첫 번째 결혼의 파경과 이혼 1945년 첫 부인 낸시 허긴스(Nancy Huggins)와 결혼했지만, 1953년 이혼했다. 당시 그는 아직 젊은 변호사였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다. 이혼 과정에서 상당한 재산을 잃었고, 가족과 떨어져 작은 원룸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혼 직후 아들의 백혈병까지 겹치면서 그의 삶은 최악의 시기를 맞았다. 2. 거의 전 재산을 잃을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 이혼과 자녀 치료비가 겹치면서 멍거는 사실상 빈털터리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낡은 자동차를 타고, 허름한 숙소에서 지내며 변호사 일을 계속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원칙으로 버텼다. 3. 아들의 백혈병 사망 (가장 큰 비극) 1954년경, 첫째 아들 테디(Teddy Munger)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는 소아 백혈병의 치료법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의료보험도 제대로 없어 멍거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치료비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매일 병원을 오가며 아들의 상태가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결국 테디는 1955년 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멍거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첫째 아이가 죽었을 때 나는 계속 울었다. 하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로 꼽힌다. 4. 백내장 수술 실패로 왼쪽 눈 실명 50대 초반, 백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이 실패했다. 합병증으로 교감성 안염(Sympathetic Ophthalmia)이 발생해 극심한 통증을 겪었고, 결국 왼쪽 눈을 적출해야 했다. 당시 의사들은 남은 오른쪽 눈도 실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멍거는 실제로 점자(Braille)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른쪽 눈은 회복되어 평생 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5. 평생 시력 문제와 노년의 건강 악화 한쪽 눈으로만 생활해야 했고, 말년에는 오른쪽 눈의 시신경에도 문제가 생겨 다시 실명 가능성을 걱정해야 했다. 또한 고령이 되면서 거동이 불편해져 골프도 그만두고 지팡이에 의지해 생활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독서와 토론, 투자 활동을 계속했다. 6. 두 번째 아내와의 사별 두 번째 부인 낸시 배리(Nancy Barry Munger)는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오랜 결혼생활 끝에 배우자를 잃었지만, 멍거는 이후에도 강연과 투자, 기부 활동을 이어갔다. 7. 멍거가 남긴 가장 유명한 교훈 이처럼 그는 아들의 죽음, 이혼, 경제적 파산 위기, 한쪽 눈 적출, 실명 위기, 배우자와의 사별등 일반인이 평생 겪기 어려운 고통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 악물고 버티는 힘을 믿는다. 많은 고난이 닥치겠지만 잘 견뎌내야 한다. 또 인생에는 아주 드물게 기회들이 찾아온다. 그 기회들을 알아채고 이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기회가 찾아오면 작은 일처럼 지나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로 내가 배운 단순한 교훈이다.” "인생은 원래 힘들고 불공평하다. 중요한 것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작은 웅덩이에 무너지지 마라. 20년으로 펼치면 지금의 하락은 아주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다.“ 워런 버핏이 멍거를 높이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뛰어난 투자자였을 뿐 아니라, 극심한 개인적 비극 앞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살아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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