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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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표
2시간 전
AI 사용을 최소화하여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끔 AI로 결과물을 만들고 나면, 묘한 찜찜함이 올라왔다. 그 정체가 뭘까 요 며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하나의 질문으로 표현해보면 "이렇게 일해도 되나?"라는 의문이었던 것 같다. 이는 결과물의 완성도나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관점은 아니다. 모든 경우에 AI의 결과물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에는 내가 직접 고민하고 풀어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을 내어준다. 어쨌든 일에서 결과물의 퀄리티는 중요하므로, 내가 직접 하든 AI를 활용하든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프로의 자세다. 내가 불편한 부분은 바로 이 '프로의 자세'라는 점이었다. 결과로 말해야하는 세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AI 활용능력"은 점점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장면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의 무게를 신성시 여긴다. 결과는 여러 통제불가능한 요인들로 인해 뒤틀릴 수 있고, 결국 남는건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느꼈으며 성장했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가 다소 좋지 않았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뭔가를 깨달았다면 '이다음'을 기약할 수 있고, 이것이 인간이 당장의 현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내일을 향해 나아갈 정신적 바탕이 되어준다.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건, 나도 모르게 '결과'의 중요성에만 시야를 좁히게 만드는 행위이다. 왜냐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가설, 시도, 증명의 행위들이 모두 거두어지고, 오로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평가자'로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가자'로서의 고민과 가설, 시도, 증명으로 AI를 활용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토매틱으로만 운전해본 사람은 절대로 스틱을 다루면서 운전해본 사람의 차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없다. 운전이야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면 되는 것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생각한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정의해내는 힘이다. 하나하나 기초에서부터 개념을 직조하고 쌓으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 누군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분석하고 파악해서 수정을 지시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유사한 부분은 '결과물을 읽어낼 수 있는 시야'이며, 다른 부분은 '백지 상태에서부터 하나씩 쌓아올릴 수 있는 감각'이다. 이는 곧 세계와 나에 대한 섬세한 시각이며, 이것의 있고 없고 여부는 아마 수 년뒤 사람 격의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 같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AI를 적극 활용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세상을 읽는 나의 언어가 퇴화되어 간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조만간 이 주제가 떠오를 게 될 것 같은데, 물론 이 사회가 건강한 비판 담론이 작동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역사에 늘 반복되었듯 앞으로 수 년의 과도기는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필요악의 실험장이 될 것이고, 지금의 우리는 '그 땐 참 어리석게도 그랬지'라며 과거를 분투한 사람들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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