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상범
2026.04.20.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서 본 미국-이란전쟁
1979년 12월 25일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하였다. 이 사건은 서방측에 대단히 큰 충격을 주었다. 소련은 냉전기간내내 팽창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동서간에 합의한 세력선을 넘은 것은 아프간 전쟁이 최초였다.
영국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그레이트게임을 해왔지만 독일의 야망에 맞서기 위해 1907년 영러협상을 맺고 힘을 합쳤다. 아프간은 영국의 세력권으로 남았다. 2차대전 이후에도 소련은 영러협상에서 합의한 세력선을 지켰다.
소련의 아프간 점령은 페르시아만의 석유와 호르무즈해협에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거리를 벌어주었다. 당시는 셰일가스도 없었다. 미국과 서방권에게 중동석유는 사활문제였다. 그뒤 서방권은 급격히 보수화 군사화하였다. 그많은 사람들이 반대시위를 하였음에도 퍼싱2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었다.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여 B-2 스텔스 폭격기와 SDI 스타워즈 프로그램으로 소련에 견딜 수 없는 재정적 부담을 주었고, 결국 소련은 붕괴했다.
사실 1970년대는 소련은 영광의 시기였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워터게이트스캔들, 이란회교혁명 등으로 쇠락하고 있었다. 소련은 쿠바에 소련군을 보내고 대신 쿠바군을 아프리칼로 보내는등 전세계적으로 반식민지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머지않은 장래 공산주의의 승리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1980년대 한국대학가에서 좌파가 득세를 한 것은 북한의 공작도 있지만 국제정세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과에서 대학원에 진학한 애들의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있을 정도 였다.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찮가지였다.
그러나 소련도 내부적으로 모순에 쌓여 있었다. 공산주의 노동동원만을로는 성장의 한계에 부딛쳤고, 미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서 시베리아의 석유와 가스를 개발해야만 했다. 그 재원은 국방비를 줄이는 길 밖에 없었다. 고르바쵸프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굴복을 선택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냉전체제 종식후 동서간에 정한 세력선을 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로써 비로서 진정한 21세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러시아가 서방으로 가는 가스파이프라인을 잠근 것은 서유럽에게는 사활이 달린 문제였다. 메르켈이 그렇게 높은 찬사를 받다가 한 순간에 전후 최악의 총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될 정도였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것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거의 데칼코마니이다. 성공하면 카스피해 자원지대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에너지라인을 작전반경에 둘 수 있다.
트럼프를 매우 협오하지만, 네탄야후의 혓바닥에 놀아나 어리석은 결정을 할 사람은 아니다. 아마도 미 안보공동체 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에 대한 대응책을 깊게 논의했을 것이고, 이번 이란공격은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전쟁의 결말은 많은 분들이 예상했던 보다 일방적일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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