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페로
3시간 전
[주제17] 인간은 왜 금을 가치저장 수단으로 쓸까?
1부. 인류는 왜 하필 금을 골랐을까
2부. 금은 무엇이 특별한가?(희소성)
1부 마지막 문장 기억나시나요? 인류가 5,000년간 캔 금의 양을 말씀드렸었는데요. 이집트 파라오의 마스크부터 여러분의 돌반지까지, 지금까지 지상으로 나온 금을 다 합치면 고작 22만 톤에 불과합니다.(이는 세계 금 협회가 지상 재고로 집계하는 표준 수치임) 무게로도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모든 금을 합치면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금은 밀도가 매우 높은 금속이라, 부피로 환산하면 한 변 약 22미터짜리 정육면체 하나에 다 들어갑니다. 가로 세로 높이 22미터 수영장이 있다면 딱 그 크기 입니다. 인류 문명 전체가 5,000년간 숭배하고, 전쟁하고, 압수하고, 사 모은 대상의 전부가 고작 이만큼인 것이죠. 이에 반해 연간 구리는 2,300만톤이 생산되고, 철광석은 26억톤이 생산됩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금이 얼마나 희소성을 가진 금속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2부에서는 금의 희소성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세상 수많은 물질 중에 왜 하필 금이 '가치저장의 왕'이 됐는지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금은 왜 이렇게 없을까 — 채굴의 역사
금이 귀한 건 지각에 없어서가 아니라, 쓸 만한 농도로 모여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금 채굴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이 점점 더 캐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사금 채취: 강바닥에 쓸려 내려온 금 알갱이를 접시로 이는 방식. 고대부터 19세기 골드러시까지의 주된 채취 방법. 골드러시를 거치면서 쉽운 채취 대상이었던 사금은 대부분 소진됨.
□ 노천 채굴: 지표의 광맥을 통째로 파내는 방식. 땅위에 드러난 대규모 광맥인 쉬운 금이 바닥나고 남은 것은 고작 암석 1톤에 금 1g ~ 수그램 정도로 넓게 흩뿌려진 품질이 낮은 암석 뿐입니다. 이제는 품질이 낮아도 산 하나를 통째로 갈아버리는 규모의 채굴로 승부를 보기 시작합니다.
□ 심부 갱도: 남아프리카에서는 지하 4km 가까이 내려가 채굴하는 방식. 갱도 온도를 낮추려 얼음물을 순환시켜야 하는 깊이 수준입니다.
□ 화학 추출: 현대 금광의 표준 방식으로 광석을 잘게 부숴 시안화물 용액으로 금만 녹여냅니다.
현대 금광의 현실은 광석 1톤을 캐고 부수고 화학 처리해서 얻는 금이 보통 몇 그램 수준입니다. 결혼반지 하나를 만들려면 수 톤의 바위를 처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부에서 '왕수'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금은 녹이기도 어렵지만, 애초에 손에 넣기가 이렇게 어려운 금속입니다. 금값의 상당 부분은 이 수고의 값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캐낸 금이 연간 약 3,600톤 안팎입니다. 그럼 지구상에 남은 금은 현재 얼마나 될까요?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추정하는 경제성 있는 매장량은 약 6만~7만 톤에 불과합니다. 현재 연간 채굴량을 바탕으로 단순 계산하면 "20년이면 고갈"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런 기사가 주기적으로 보도됩니다. 하지만 이 매장량 추정치는 수십 년 전에도 비슷했습니다. 셰일 혁명처럼 채굴 기술이 발전하고 금값이 오르면, 예전엔 '경제성 없는 돌'이던 것이 '매장량'으로 재분류되기 때문이죠. 금은 조만간 고갈되지는 않을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조 다이아몬드처럼 갑자기 쏟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갑자기 쏟아지지 않는다'는 성질인 희소성이야말고, 금을 특별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2. 영원한 2인자 은(Silver)
가치저장의 왕좌를 두고 금과 끝까지 경쟁한 금속이 있습니다. 바로 '은'입니다. 수천 년간 인류는 금화와 은화를 함께 썼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금과 은은 1대 15 안팎의 교환 비율이 유지됐습니다.
1717년 뉴턴이 씨름했던 것도 바로 이 비율이었습니다. 그런데 1부에서 살펴봤던 뉴턴의 비율 설정을 계기로 영국은 금 중심으로 기울었고, 19세기 각국이 영국을 따라가고, 또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게되면서 금본위제는 통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은은 화폐의 지위에서 서서히 밀려났습니다. 왜 하필 밀려난 쪽이 은이었을까요. 세 가지 약점 때문입니다.
(1) 변색: 1부에서 봤듯 은은 공기 중 황과 반응해 검게 변함 — '불변'이라는 핵심 자격에서 금에 밀림
(2) 가치밀도가 낮음: 같은 가치를 옮기려면 금보다 수십 배 무거운 은을 날라야 합니다.(금과 은의 교환비율 1대 15를 생각) 국가 간 대규모 결제일수록 금이 압도적으로 유리함
(3) 유용성: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은의 약점입니다. 은은 전기전도율이 모든 금속 중 최고라 산업 수요가 큽니다. 오늘날 은 수요의 절반가량이 태양광 패널, 전자기기 같은 산업용으로 소비됩니다. 소비가 중심이 되는 물건이다보니, 가치저장 수단으로서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는 것이지요.
세 번째 요소인 유용성이 특히 중요합니다. 산업 수요가 크면 가격이 경기를 따라 출렁이고, 실제로 소비돼 사라집니다. 반면 금은 산업 수요가 전체의 10%도 안 됩니다. 캐낸 금의 대부분은 소비되지 않고 금고와 장롱과 중앙은행의 금고에 쌓입니다. 은은 절반쯤 원자재가 되어버리고, 금은 온전히 화폐로 남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금은비(금 가격 ÷ 은 가격)는 시장의 온도계로 쓰이는데, 이 얘기는 3부에서 다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3. 가치저장 수단의 자격 — 7가지 조건
이제 이 시리즈의 핵심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볼 시간입니다. 어떤 것이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경제학에서 가치저장 수단이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정의한 조건들을 금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1) 희소성: 구하기 어렵고, 공급이 갑자기 늘 수 없어야 함
(2) 내구성: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함 : 썩는 것에는 가치를 저장할 수 없음
(3) 분할가능성: 잘게 나눠도 가치가 보존돼야 함 : 다이아몬드는 쪼개면 가치가 깨지지만, 금 1kg은 1g짜리 1,000개로 나눠도 같은 가치를 가짐
(4) 동질성: 어디서 캐든 순금은 똑같은 순금임 : 등급 논쟁이 필요 없음
(5) 휴대성: 작은 부피에 큰 가치가 담겨야 함 : 손가락 한 마디 금괴가 수백만 원의 가치를 지님
(6) 검증가능성: 진짜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함 : 밀도 측정만으로도 위조 판별이 쉽게 가능함
(7) 상대방 위험이 없음: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 명목 자산인 예금은 은행이, 채권은 발행자가 망하면 휴지가 됩니다. 누군가의 '갚겠다는 약속'인 신용을 전제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은 누구의 약속도, 누구의 부채도 아닙니다. 그 자체로 완결된 자산입니다. 상대방이 부도날 위험 자체가 없습니다.
내구성은 3300년 동안 보존된 투탕카멘 마스크를 통해 이미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만사 무사의 사례에서 금의 가치가 폭락하며 희소성이 문제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한 도시에서 벌어진 예외적 사건이었습니다. 지구 전체로 보면 금의 신규 공급은 연간 3,600톤으로 기존 재고 22만 톤의 1.6%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 광산이 풀가동한다 해도 재고를 의미 있게 늘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석유는 증산 결정 하나로, 지폐는 중앙은행 결정 하나로 공급이 출렁이고 가치가 하락하지만, 금은 그 누구도 공급을 갑자기 늘릴 수 없습니다. 만사 무사급 충격이 다시 재현된다는 것 자체가 지구 전체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4. 처음부터 금밖에 없었다는 사실 : 주기율표 소거법
위 7가지 조건, 혹시 다른 물질이 대신할 수는 없었을까요? 재미있는 사고실험을 한 번 해봅시다. 원소 주기율표를 쫙 펼쳐놓고 금을 대체할만한 가치저장 후보를 찾아보는 겁니다.
- 기체와 액체는 탈락 : 병에 담긴 수소를 화폐로 주고받을 순 없음
- 반응성 높은 금속 탈락 : 나트륨은 물에 닿으면 폭발, 철은 녹쓸어버림
- 독성·방사성 원소 탈락 : 비소 동전, 우라늄 목걸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음
- 너무 흔한 것도 탈락 : 알루미늄과 철은 희소하지 않음
- 너무 희귀한 것 탈락 : 백금족 일부는 채굴량이 적어 화폐로 유통할 물량 자체가 나오지 않음
이 소거를 다 거치고 나면 남는 후보가 사실상 금과 은, 단둘 뿐입니다. 그리고 은은 방금 봤듯 변색이라는 감점 요인과, 산업적 수요가 지나치게 높다는 역설적 단점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모든 점들을 고려해본다면 인류가 금을 선택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상 금이 가진 화학적 성질이 금을 가치저장 수단으로 점지해두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지구상 어느 문명이든(이집트, 리디아, 중국, 잉카) 서로 별다른 교류 없이도 하나같이 금을 최고 가치저장 수단으로 지정한 결론에 도달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부에서 언급했던 문장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겠습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저장한다."
이제 한 줄을 더해볼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희소한 것에 가치를 저장한다."
마치며
여기까지만 보면 금은 완벽한 가치저장 수단처럼 보입니다. 변하지 않고, 희소하고, 누구의 부채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완벽한 가치저장 수단이라면서, 금 가격은 왜 이렇게 요동치는 것일까요?
1980년부터 20년간 금은 가치는 2/3가 날아갔습니다.($850→$293, -65% 하락) 교과서에서는 "금리가 오르면 이자 없는 금은 매력을 잃는다"고 가르치는데, 2025년엔 미국 실질금리가 18년 만의 최고 수준인데도 금이 65% 넘게 올랐습니다. 교과서가 틀린 건가요, 세상이 바뀐 걸까요?
3부에서는 금과 인플레이션, 금과 금리의 관계를 따져보고, 각국 중앙은행이 지금 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을 사 모으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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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3시간 전
수페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사진도 똬악~~ 넣으셨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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