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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일 전
1949년 9월,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모스크바에서 추방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소련의 침공까지 걱정해야 했다. 실제로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 근처에 소련군을 주둔시켰고, 국경에서는 여러번 총격전도 일어났다. 스탈린은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인 동맹 체제를 만들려 했다. 그래야 서방으로부터 소련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가 소련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서도 스탈린의 계획에 따라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에 의존해서 공산화된 나라가 아니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외국의 지배에 맞선 게릴라 전술로 혁명을 이뤘다. 소련군이 나치를 밀어내고 주둔한 폴란드나 헝가리와 다르게,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소련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다. 경제 분야에서도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계획을 고스란히 따르지 않았다. 스탈린은 이웃 공산주의 국가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통제해서, 거대한 분업 체계를 만들려 했다. 소련이 석유를 공급하면, 폴란드가 선박을 만들고 불가리아가 농산물을 만드는 식이었다. 유고슬라비아도 소련과 관계가 좋을 때는 소련으로부터 물자를 지원받기를 기대하며 소련과 유사한 방식으로 산업화를 이루려 했다. 하지만 이때도 물자만 받으려 했을 뿐, 통제까지 받으려 하지는 않았다. 1948년에 스탈린이 유고슬라비아를 대상으로 하는 무역을 제재하기 시작하자, 유고슬라비아는 국제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소련식 명령경제와는 다른 제3의 경제 모델을 구현하려 했다. 그 핵심은 이렇다. 먼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누구도 일정 규모를 넘는 주요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팔 수 없게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공산주의 국가와 닮았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기업 경영에 대한 개입을 서서히 줄였다. 명령경제를 상당히 내려놓고, 자율성과 시장 경쟁을 허락했다. 이 때,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기업 경영을 노동자에게 맡겼다. 노동자는 대표를 선출해서 ‘노동자 평의회’를 꾸렸다. 자본주의 국가의 이사회와 닮은 기관이지만, 주주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선출된다는 점이 달랐다. 노동자 평의회는 임금과 경영 방침을 결정할 수 있었고, 전문적인 경영자를 선출할 수 있었다. 경영자는 노동자 평의회의 방침에 따라 일상적인 기업 경영을 맡았다. 이런 민주적인 기업들이 꽤 자유로운 시장 속에서 서로 경쟁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누구도 큰 자본가가 될 수 없었지만,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기업을 경영했고, 그런 기업들이 중앙의 명령을 받기보다 시장 상황에 맞게 생산량과 가격을 조율했다. 이런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를 소련식 국가(State) 사회주의와 구분해서 ‘자주관리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1970년대 후반까지 자주관리 사회주의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1952년에서 79년 사이, 유고슬라비아 경제는 매년 평균 6%씩 성장했다. 특히 1950년대에는 매년 9%씩 성장했다. 한 사람의 소비량도 4.5%씩 늘었다. 이런 성과 덕에, 자주관리 사회주의는 서방 경제학자들에게도 주목받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관리 사회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도 다르고 소련식 공산주의와도 다른, 시장경제와 사회적 소유를 결합한 제3의 대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자주관리 사회주의는 곧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유고슬라비아 노동자는 대표를 선출할 수 있었고, 그 대표들은 임금을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기업과 지방정부가 은행을 통제했다. 지방정부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을 통해 자금을 흩부렸고, 그 덕에 기업은 손실을 입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탓에 노동자는 미래를 위해 이익을 축적해 두기보다 당장 임금을 올리려는 경향을 보였다. 은행과 기업이 신용을 창출하고 임금을 올리는데, 유고슬라비아 중앙정부는 통화량을 통제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오일쇼크 등으로 원자재 수입 물가가 급등했다. 그 결과는 치솟는 생활 물가였다. 게다가 자주관리 사회주의는 안에서부터 부패하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는 시장이 아니라 인맥이 돈의 흐름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했다지만 엄연히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였기 때문에, 공산당에 인맥이 있는 사람을 경영자로 선출하면 보조금을 받거나 재고를 처분하는 데에 유리했다. 정치인이 명확한 성과 기준과 무관하게 기업에 돈을 준 탓에, 기업은 정치적 인맥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연고주의는 시장 경쟁을 잠식하고 경제 전반을 정치적 인맥과 담합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는 비효율적인 자본 배분과 생산성 하락, 정체된 혁신이었다. 참고자료 Vladimir Unkovski-Korica, The Economic Struggle for Power in Tito’s Yugoslavia: From World War II to Non-Alignment, I.B. Tauris, 2016. Ivan Vejvoda, Yugoslavia 1945–91 - From Decentralisation Without Democracy to Dissolution, in Yugoslavia and After: A Study in Fragmentation, Despair and Rebirth, Routledge, 2014. Milica Uvalić, Investment and Property Rights in Yugoslavia: The Long Transition to a Market Ec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Saul Estrin, Yugoslavia: The Case of Self-Managing Market Socialism,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5, no. 4, 1991. Goran Music, Making and Breaking the Yugoslav Working Class: The Story of Two Self-Managed Factories, Central European University Press, 2021. Jure Zrilic, Between Ideology, Strategy, and Diplomacy: The Political Economy of Yugoslavia’s Investment Treaties, Leide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3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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