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6.16.
브라질 국기를 확대해 보면, 파란 원을 가로지르는 흰 띠에 '질서와 진보'라는 표어가 파란 글씨로 적혀 있다. 지금 브라질 국기의 초기 버전이 만들어진 시기가 19세기 말인데, 당시 서구에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사상이 유행했다. 사회학의 조상 중 하나로 꼭 거론되는 그 콩트다.
한창 혁명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콩트는 혁명이 초래한 무질서를 극복하고 실증 철학에 기반한 새 질서를 만들려고 했다. '질서'에 기초해서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실증주의 운동의 목표였다. 그리고 브라질은 실증주의 운동이 활발하던 곳이었다. 그 영향이 새 공화정의 국기에도 남을 정도였다.
'질서와 진보'라는 표어가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근본 있는 진보주의 사상 상당수는 히피 운동이나 평등지상주의와 상극이다. 사회적인 의무를 저버리고 자기 권리만 찾는 세상은 뿌리 있는 진보주의의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에 기반한 유기적이고 질서정연한 사회야말로 여러 진보주의자들의 목표였다. 혼돈 대신 질서가 역사 속 진보주의자들의 핵심 가치였다.
물론 역사 속 진보주의를 고스란히 되살릴 수는 없다. 과거 진보주의에는 제국주의 등 지금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과거의 유산에서 좋은 것을 되찾을 필요는 있다. 무질서한 히피 아나키즘에 물들어버린 진보주의를 정화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진보주의들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사회는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살아야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관점에서도 질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합리적인 질서는 자유와 행복의 근간이다.
질서가 나를 부당하게 배제할 때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만, 명백하게 더 나은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경우에만 질서를 어기는 의견 표출이 정당화된다. 특히나 혼란 끝에 대의 정부와 정치적 자유를 얻은 상황이라면, 소수 권력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에 걸맞는 저항 방식을 골라야 한다. 사회는 질서정연하게 진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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