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제완
3시간 전
바다와 산, 어느 곳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좋을까? 정답은 아니지만 대체로 젊을 때는 바다가 잘 보이는 집에서 사는 것이 좋지만, 나이들면 산속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 듯 싶다. 왜 그럴까?
젊은 시절의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역동적이고,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열정과 도전을 닮았다. 쉼 없이 몰아치는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청춘의 시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삶의 굽이굽이를 넘어오면,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산의 품에 더 끌리게 된다.
바다가 무한한 팽창과 확장을 상징한다면, 산은 내면을 다독이고 고요한 안식을 주는 공간이다. 비바람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산의 넉넉함에서, 삶을 관조하는 지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IT 업계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길을 열어갔던 지난 시간들이 거친 파도와 맞서는 바다의 삶이었다면, 지금 양양의 맑은 하늘 아래서 내가 만든 낡은 의자를 색칠하고 자연을 카메라에 담으며 보내는 일상은 산이 내어주는 깊은 위로와 닿아 있다.
변함없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평온하게 기댈 수 있기에, 나이가 들수록 산이 주는 고요함과 든든함이 더 깊게 다가오는 듯하다.
오늘 목공을 처음으로 배우며 만들었던 의자들이 몇년간 비바람에 낡은 듯 싶어 페인트를 칠했는데 녹색의 자연과 대비되는 빨강, 노랑으로 칠했다. 포인트가 되어서인지 더 돋보인다.
그래도 곧 물들 자연의 색 - 단풍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내가 칠한 빨강, 노랑이 AI색이라면 단풍은 내가 직접 쓴 내 일기장 같아 애정이 다르다. 인공지능은 인공이 핵심이고 단풍은 인간이 핵심이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잘 쓴다는 것은 인재가 될 수 없다. 엑셀을 잘 쓴다고 유능한 경영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사용은 수단에 불과하다. 차가 처음 나왔을 때 운전이 기술이였다면 이제 소형차 운전은 기술로 볼 수 없다.
기술(Technology)는 남이 못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기능(Function)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남보다 잘 하는 것이다.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수는 듣는 사람에게⁴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인공지능시대의 단순한 AI활용은 곧 누구나 노래부를 수 있는 것 처럼 범용적 기능이 되어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감동을 주는 인공지능 사용자, 그것을 활용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인간에게 단풍처럼 감동과 행복을 주는 AI활용자가 되어야 미래가 있다.
"창조적 인공지능 활용자"
이제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기혁신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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