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7.23.
요즘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가 유행이라는데, 썩 반갑지는 않다. 내가 따르는 사회주의와는 이름만 같은 남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사회주의는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잘 나눌 것인가에 주로 힘을 쏟는다. 아직까지는 좌익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당선된 무슬림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는 뉴욕시의 번영에 증세해서 빈자에게 복지를 제공할 방법만 제시했을 뿐, 그 번영을 지키거나 키울 방법을 제시한 적은 없다. 공약에는 재분배만 가득할 뿐, 효과적인 산업정책이나 생산성 개선 방안이 없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할 의무조차 부과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중에는 역사 깊은 산업주의 전통이 있다. 산업주의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에 맞게 산업 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 상속과 지대에 의한 '인위적인' 불평등을 없애고 능력과 헌신에 의한 '자연스러운' 불평등만 남은 사회를 추구한다. 이런 유기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통해 더 유용한 것을 더 많이 생산해서 최대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산업주의의 핵심 목표다.
이 산업주의자들은 동서양의 물류를 통합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구상했고, 실제로 그 구상이 실현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물류를 실어나르고 있다. 또한 산업주의자들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모으고 재배분해서 투자를 계획하기 위한 금융 기관을 직접 창설하고 운영했다. 산업주의야말로 '과학자, 기술자, 은행가 등 전문가가 지도하는, 국가 또는 국제 단위의 합리적인 경제 발전 계획'을 구상하고 확산시킨 주역이다.
그런데 미국 민주사회주의에는 산업주의 요소가 거의 없다. 일부 저널리스트는 자본주의와 복지국가를 결합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민주사회주의를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닮은 것으로 규정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북유럽 사민주의는 생산을 등한시한 적 없다. 자본주의가 알아서 부를 창출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더 잘 조직해서 생산을 촉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적극적 노동정책은 그저 분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생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기업 간 경쟁을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노동자가 그 경쟁에 일방적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만든 것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다. 다시 말해, 북유럽 사회주의는 생산의 조직화에도 신경썼다. 물론 위계적인 산업주의자들의 구상과 다르게, 노사 간 자율적인 협상과 정부의 중재를 결합한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구축했지만.
미국 민주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옥죄는 동시에 그 성과에 기생해야 하는 모순된 사상이다. 억압받는 자본주의가 알아서 부를 생산할 것이라 믿고 그 부를 흩뿌리는 것을 유일한 사명처럼 여기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주의인지 의문이다. 늘 그랬듯, 자본주의가 흔들리면 그 충격을 완화하지는 못하고 함께 흔들릴 것이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면서 자본주의가 창출한 성과와 지대에 철저히 의존하는 것이 자칭 사회주의자들의 요상한 특징이다. 무분별한 부자 증세와 일할 의무 없는 퍼주기는 전통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좌익 포퓰리즘이다. 1% 부자와 99% 나머지의 갈등이라는 유사 맑시즘을 차용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차라리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정책과 대기업 지분 흡수 등 국가주도 자본주의 정책이 미국을 사회주의화하는 데 더 도움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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