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Avatar
강온화
2026.05.08.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묻는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 나는 그때마다 잠시 멈춘다. 그 질문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그 질문 안에 이미 작은 함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숟가락을 써야 밥을 잘 먹을 수 있냐"고 묻는 것처럼." 질문을 받은 나는 보통 이렇게 답하고 싶어진다. "본인이 재밌는 걸 읽으세요"라고. 그러면 상대는 대개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물어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대답이 가장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흥미 없는 것을 억지로 읽는 행위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앞에 앉아 있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는 질문이 전제하는 것이 있다. 독서는 책이라는 특정 형식을 통해서만 일어난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얼핏 무해해 보이지만, 사실 꽤 폭력적이다. 이 믿음대로라면, 밤새 울던 아이를 안고 새벽 네 시에 "왜 이 아이는 지금 이러는가"를 온몸으로 탐구하는 사람은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수식 하나를 붙들고 그것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도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이 된다. 나는 이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독서의 본질은 하나의 문제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유의 운동이다. 텍스트(Text)는 원래 라틴어로 '짜여진 것'이라는 뜻이다. 직물처럼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만들어진 구조. 그렇다면 써진 글자만이 텍스트일 이유가 없다. 시험 문제도 텍스트고, 아이의 울음소리도 텍스트고, 오늘 출근길에 마주친 그 낯선 피로감도 텍스트다. 읽는 사람이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기만 한다면. 물론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그러면 아무 책이나 읽어도 되는 거냐"라고.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무 책이나 읽어도 된다. 단, 아무렇게나 읽으면 안 된다. 깊이는 형식에서 오지 않는다. 태도에서 온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면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를 페이지마다 반복하며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업무 매뉴얼을 읽으면서 "왜 이 절차가 이 순서여야 하는가, 이 원칙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은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표면을 훑을 때와 구조 안으로 파고들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르다. 전두엽은 "왜"라는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 불을 켠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은, 지금 당신이 가장 깊이 파고 있는 것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게 칸트일 수도 있고, 직업 자격증 교재일 수도 있고, 오늘 밤 잠들지 못하는 아이의 눈빛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반드시 철학적 물음이 솟아오른다. 그 물음이 솟아오른 순간이 바로 독서가 시작된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사실 원하는 것은 책 제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일지 모른다. 그 확인을 책에서 구하려는 마음, 나는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책은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왔다. 다만 이제는 알아도 좋다. 책이 당신에게 오기 전에, 당신이 이미 독서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짜증 자체가 이미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다. 어서 와. 철학은 처음이지?🫠
Like Inactive Icon
26
Comment Icon
4
Share Icon
공유하기
모든 댓글
Avatar
김상민
2026.05.08.
이코에서도 이런글을 읽을 수 있다니 되게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Like Inactive Icon
1
Comment Icon
답글달기
Arrow Icon
답글 숨기기
Arrow Icon
Avatar
강온화
2026.05.08.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ike Inactive Icon
1
Avatar
송대섭
2026.05.08.
우문에 현답을 하셨네요.
Like Inactive Icon
1
Comment Icon
답글달기
Arrow Icon
답글 숨기기
Arrow Icon
Avatar
강온화
2026.05.08.
질문에 개방적이긴하나 원하는 답을 위한 질문은 참 머뭇거려집니다. 🥲
Like Inactive Icon
좋아요
Avatar Icon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