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觀海
2026.06.03.
“On no one quality, on no one process, on no one country, on no one route, and on no one field must we be dependent. Safety and certainty in oil lie in variety, and variety alone.”
— Winston Churchill, First Lord of the Admiralty, 1913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세계 최고의 공업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던 석탄과 철광석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콘월 지방을 중심으로 주석과 구리까지 생산되면서 영국은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철광석으로 철을 제련하려면 엄청난 양의 석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웨일스의 무연탄은 연기가 적고 열효율이 높아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습니다. 군함의 연료로도 사용될 만큼 군사적 가치가 높았습니다.
19세기 영국은 세계 최대의 석탄 생산국이었습니다. 석탄으로 움직이는 공장과 철도, 선박이 대영제국을 만들었습니다.
석탄에서 석유로
그러나 20세기 초 새로운 에너지원이 등장합니다.
석유였습니다.
석유는 액체였고 저장과 운송이 쉬웠습니다. 같은 무게로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었고 군함의 속도와 작전반경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석유 산업의 중심은 미국이었습니다.
1870년 John D. Rockefeller가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했고, 1908년 Henry Ford가 모델 T를 출시한 뒤 1913년 컨베이어벨트 기반 대량생산 체계를 도입하면서 미국의 석유 기반 제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08년 영국 사업가 William Knox D’Arcy가 오늘날 이란 남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은 훗날 Anglo-Persian Oil Company, 그리고 현재의 BP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1911년 해군장관이 된 처칠은 대영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을 합니다.
군함의 주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 최고의 석탄 보유국이었지만 석유는 거의 없었습니다.
자국의 최대 강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미래 기술에 베팅한 셈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석유의 힘
이 선택은 곧 현실이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석유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1942년 캅카스와 바쿠 유전 확보를 목표로 소련 남부로 진격했습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941년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자 일본은 동남아 자원지대 확보를 위해 태평양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전차도, 군함도, 비행기도 결국 석유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총력전 시대에 에너지 공급망은 국가의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의 석유 패권
전후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최대 소비국이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세계 석유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달러와 석유, 해군력은 서로 연결되어 움직였습니다.
석유 패권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국제질서를 설계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패권은 없었습니다.
1970년 미국의 산유량은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중동의 비중은 계속 높아졌고, 결국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합니다.
세계는 고물가와 고금리의 시대로 진입하게 됩니다.
물론 미국은 셰일혁명 이후 다시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의 원유 생산 비중은 약 15~16% 수준입니다.
과거와 같은 압도적 비중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총량이 아니라 비중이다
영국과 미국의 역사를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석탄이든 석유든 세계 생산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할 때 패권이 형성됐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총량이 아닙니다.
비중입니다.
자원이 많다는 것보다 세계 공급망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에너지 패권국가가 아닙니다.
석탄도 부족하고 석유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100여 년 전 처칠이 남긴 말 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것.
특정 에너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것.
특정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는 것.
결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은 생산보다 분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은 처칠의 이 문장을 석유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기술, 반도체, 희토류에도 대입해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Safety and certainty in oil lie in variety, and variety alone.”
안전과 확실성은 오직 다양성, 그리고 다양성에만 있다.
영국은 세계 최대의 석탄 생산국이었지만 석유 시대로의 전환을 선택했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었지만 중동과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에너지 질서를 설계했습니다.
결국 패권국들이 남긴 교훈은 자원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변화에 먼저 적응한 국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문장은 오히려 지금 더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보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적어둡니다.
<사행건樂 by 戒盈杯>
https://m.blog.naver.com/realguy81/22430235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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