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6.11.
군소 진보정당들은 이번에도 나쁜 성적표를 받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의당 권영국 후보는 여성의당 후보와 비슷한 득표율을 받았다. 평택을에서는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강성보수 황교안 총리도 이기지 못했다. 평택은 진보 우위 지역인데도 황교안 총리가 김재연 후보보다 두 배 많이 받았다.
광역의원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군소 진보정당 서너 개 득표수를 합쳐도 다른 정당에 밀린다. 전라북도에서는 진보당, 정의당, 기본소득당의 득표수 합이 국민의힘보다 적다. 서울에서는 진보당, 정의당, 기본소득당에 사회민주당 득표수를 더해도 개혁신당 하나보다 적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기초자치단체당 선거에서도 울산 동구 외에는 진보정당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군소 보수정당보다도 적은 표를 얻었으니, 양당제만 탓할 수도 없다. 강령과 선거 슬로건에 다른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다른 메시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메시지를 더 크게 외쳐봐야 소음일 뿐이다.
기성 진보정치는 진작 실패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사실을 재확인시켜줬을 뿐이다. 실패 이유는 어느정도 드러난 것 같다. 우선 일반 국민이 아니라 진보 활동가들을 겨냥한 메시지를 던졌다.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처럼 일반 국민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혼자 딴소리만 한 셈이다.
기정 진보는 근거가 부족한 정책을 유일한 정답처럼 포장했다. 연동형 비례제가 실시되기 직전에 이미 비례정당이라는 파훼법이 나왔음에도, 누구 하나 정책 설계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뻔한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악용을 예방하는 것이 설계의 기본임에도.
전세계 진보 운동의 장대한 역사에서, 비무장 평화주의, 약자우선주의, 계급투쟁론은 여러 전통 중 하나일 뿐이다. 대표적으로 생시몽주의는 인력과 자본을 과학적이고 위계적으로 조직해서 산업 발전을 극대화하고, 불로소득을 폐지해서 각자 발전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와 미국 진보주의는 애국적, 산업주의적 열정으로 넘쳤다. 20세기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민족 중흥'을 외쳤다. 능력주의, 산업주의, 내셔널리즘, 계급 타협을 통한 점진적 변화도 뿌리 깊은 진보 전통에 속한다. 성공적인 진보 운동은 이 가치들을 함부로 외면하지 않았다.
지금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진보 운동의 다양한 역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마르크스주의나 자본주의 폐지부터 떠올리는 건 진보 운동가들도 마찬가지다. 대신 기성 진보는 평등, 평화, 인권이라는 편리하고 모호한 단어로 모든 논쟁을 끝내는 데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자신들이 따르는 평등, 평화, 인권을 유일한 '정답'으로 여기니, 타협이나 변화따위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아마 이번 선거 결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정치 양극화나 편향된 언론 같은 구조적인 문제 탓에 진보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늘 그랬으니까.
기성 진보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는 일관적이다. 이제는 기성 진보 운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 운동, 지적 전통과 단단하게 이어진, 뿌리 있는 진보주의가 필요하다.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인디언 기우제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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