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관
2시간 전
베트남 기업 창업일화 비나밀크(VNM)
비나밀크(VNM) 창업신화, 우유회사의 시작은 목장이 아니라 멈춘 공장이었다
여러분, 우유회사를 세운다고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시나요? 푸른 초원, 젖소, 우유를 짜는 농장일 겁니다. 그런데 비나밀크의 출발점은 달랐습니다. 전쟁 뒤 넘겨받은 유제품 공장 세 곳이었습니다.
공장은 있었지만 원료와 외화, 부품과 기술이 부족했습니다. 첫 질문은 “어떻게 많이 팔까?”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을 이어갈까?”였습니다. 지금 마트에서 만나는 우유 한 팩의 역사는 광고보다 기계를 다시 돌리는 일에서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부터 풀겠습니다. 마이 끼에우 리엔은 개인 돈으로 비나밀크를 세운 창업자가 아닙니다. 회사가 출범한 1976년 입사한 유제품 기술자였습니다. 그가 훗날 최고경영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면,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기술자가 어떻게 기업을 키웠는지부터 살펴볼 차례입니다.
시간을 1976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비나밀크는 ‘남부 우유·커피회사’라는 이름으로 출범해 통녓, 쯔엉토, 디엘락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현재의 주식회사보다 앞선 국영기업 시절입니다.
당시 리엔은 소련에서 육류·유제품 가공을 공부하고 귀국했습니다. 첫 경력은 쯔엉토 공장의 가당연유 생산 담당 기술자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여성 최고경영자’로 기억하는 인물의 출발점은 사장실이 아니라 생산 현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공장의 기술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설비는 고장 났는데 새 부품을 수입할 외화가 부족합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생산을 못 하고, 생산을 못 하면 물건도 공급할 수 없습니다.
리엔과 베트남 기술자들은 기존 설비를 복구하고 생산기술을 익히는 데 매달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 기계를 사는 능력보다, 이미 있는 기계를 이해하고 작동시키는 능력이었습니다. 화려한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매일 생산할 수 있는 기본기를 먼저 다진 셈입니다.
그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디엘락 분유 공장입니다. 공장을 갖고 있다는 것과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달랐습니다. 기술자료와 설비 운영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복구를 거쳐, 1989년에는 베트남산 영유아용 분유를 생산했습니다. 단순히 외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을 넘어 직접 제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여기서 감동적인 장면만 상상하면 중요한 문제가 빠집니다.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해도, 소비자가 사주지 않으면 사업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수입 분유에 익숙해 국산 디엘락을 선뜻 믿지 않는 고객도 있었습니다.
기술자에게는 “공장이 돌아간다”가 성과였지만,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에게 먹여도 믿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생산기술 확보와 소비자 신뢰 형성은 다른 과제였습니다. 분유 한 통을 완성하는 일과 고객의 선택을 받는 일 사이에는 필요했습니다. 그 틈을 넘어야 했습니다.
다음 질문은 공장 밖에 있었습니다. “우유를 만들 원료는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
설비를 고쳤다고 원료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수입 원료에만 의존하면 외화와 해외 공급 여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비나밀크는 1990년대 국내 농가와 협력하며 젖소 사육과 원유 공급기반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이 ‘백색혁명’으로 불립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직영 목장이 완성돼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농가와 연결하고, 원유를 생산하는 기반을 점차 넓혔습니다. 공장을 복구한 회사가 이제 농업과도 연결돼야 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유사업의 성격이 보입니다. 공장 안에서는 제조기술이 필요하고, 공장 밖에서는 원료 공급망이 필요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잘한다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나밀크의 성장사는 이 두 축을 차례로 갖춰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일과 제품을 만드는 일이 떨어져 있다면 공급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과제는 사이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리엔은 생산·기술 부문의 경험을 쌓은 뒤 1992년 12월 최고경영자에 올랐습니다. 설립 첫해 입사한 기술자가 약 16년 뒤 회사 경영을 맡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다고 설명하면 이 경력의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1997년에는 해외시장에 분유를 수출했습니다. 생산을 이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기업이 이제 국외 고객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2003년에는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베트남 유제품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갖췄습니다. 따라서 창업 연도인 1976년과 현재 주식회사의 출범 시점은 구분해야 합니다. 같은 회사의 역사라도 국영기업 설립과 주식회사 전환은 서로 다른 사건입니다.
리엔 한 사람만의 업적으로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공장을 복구한 기술자, 생산직 직원, 원유를 공급한 농가가 함께 만든 기반이 있었습니다. 창업신화에서 한 명의 얼굴만 기억하면, 뒤에서 움직인 수많은 사람의 역할이 사라집니다.
비나밀크의 창업사를 관통하는 단어는 자립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모든 원료와 기술을 국내에서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설비를 복구하고, 제품을 직접 만들고, 국내 원유 공급기반을 넓히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갔다는 의미입니다.
이 회사의 이야기에 거창한 ‘최초의 발명품’이 없어도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겨진 공장을 넘겨받는 일과, 그 공장에서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꾸준히 생산하는 일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집어 드는 비나밀크 한 팩 뒤에는, 멈춘 설비 앞에서 생산을 다시 시작하려던 기술자들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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