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er
2025.08.19.
십 수년 전 일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남편의 주식투자 실패로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힘들지 않니?”
친구는 생활비에 보태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친구가 소핑백을 들고 나왔는데 샤넬백이 담겨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OO가 자기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한다며 비싼밥도 사주고 백화점에 데려가서 사고 싶은걸 골라보라고 해서 머뭇거렸더니 위로 겸 사준 물건이 샤넬백이었다.
사실 친구는 사넬백이 아니라 생활비가 급했다. 당장이라도 무르고 싶었지만 카드영수증이 있어야 무를 수 있어서 불가능했다. 그러면서 내게 가방을 사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고의 고민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100만원 정도는 기한없이 빌려줄 수 있으니 다른데 팔아보는 건 어떠냐고 했는데 네가 들면 좋겠다며 굳이 내놓고 갔다. 그 뒤로 친구 자존심이 상할까봐 선물이 들어오면 나누기도 했고 시골에서 보내온 쌀인데 다 못 먹는다며 쌀을 사서 보내기도 했다. 당장 생활비가 걱정인 친구에게 족히 200만원은 했을 샤넬백은 당시엔 보통 가정의 한 달 생활비였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충격이자 가르침이 되어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공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유명 여행지나 맛집을 포스팅하지 않는 이유도 이 사건의 영향이 크다.
샤넬백을 사준 친구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남편이 주식으로 재산을 다 들어먹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샤넬백을 받은 친구는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아이들도 크고 남편이 직장을 잡게 되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것까진 막을 수 있었다. 내 삶도 녹녹치 않았는데 시장을 잘못 읽어 큰돈을 날리기도 하고 회복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지금은 몇몇 친구들과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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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겪는 많은 행복과 불행이 금융시장과 관련이 있다. 만일 금융시장에서의 성공경험, 실패경험, 목표달성 과정, 사기 당한 경험, 무지에 대한 댓가와 깨달음, 시장에 대한 통찰을 한곳에 모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용한 서비스가 될 것이다. 또한 데이타로써의 가치도 상당할 것이다. (그야말로 고품질 언어모델 아닌가!)
나는 인생사 돌고 돌 듯 시장도 그러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금융SNS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길 바란다. 또한 실패를 거울 삼아 재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와 선험자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재테크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금융역량이 상승할 것이다.
가끔 그간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내 삶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돈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SNS를 만들자 결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의 욕망과 필요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에게 공감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고객이 진짜 원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보다 투자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하다가 망하는 것도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할비가 필요한 친구에게 샤넬백을 사주듯이 말이다.
언젠가부터 돈 얘기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주식투자 인구가 1500만 명에 육박하고 코인투자 인구는 이보다 더 많다. 어지간한 애널리스트 뺨치는 분석능력을 자랑하는 일반인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금융경험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금융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기엔 기존 SNS의 한계가 명확하다.
(사업 경력이 일천한 주제에 함부로 조언하기 민망하지만) 몇해 전 벤처캐피탈(VC)에 잠시 몸 담은 적이 있다. 그때 뛰어난 개발능력을 앞세워 수십억 투자를 거뜬히 장담하는 청년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관객으로 세우지 말아라. 너의 서비스는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서비스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샤넬백 사건'을 통해 SNS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서비스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으면 플랫폼은 커질 것이고 돈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스트타업들이 공감의 아이콘이 되려는 노력보다 엄청난 마케팅비용을 쏟아 붇는 것으로 그 노력을 대신한다.
엊그제 샘알트만의 인터뷰를 다뤘는데 AI도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생성한 진솔한 스토리(데이터)를 좋아하지 자가복제 된 글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AI물결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인간애에 목 마른 사람들이 몰려가는 서비스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지점을 파고 드는 것도 좋은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해주었지만 인공지능은 다르다. 사람을 힘들고 외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 AI를 단순히 기술의 틀 안에서만 볼게 아니라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이유다. 부디 Keeper team이 만드는 SNS가 인공지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을 푸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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