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jimd.kr/?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3238872&t=board무분별한 관용의 대가를 치른 독일 [이완] : 전인미답이완 칼럼니스트‘독일은 안전한 나라인가.’ 독일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 시베이(Civey)가 2026년 7월 28일~30일 5천 명의 독일 국민에게 물었다. 37%는 동의했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51%였다. 독일의 또 다른 대표 여론조사 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Infratest dimap)은 8월 3일부터 5일까지 약 1,300명에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일어날 위험이 얼마나 크다고 여기는지 물었다. 응답자 29%는 ‘일어날 위험이 적다’고 답했지만, 69%는 ‘위험이 크다’고 여겼다. 2019년 7월보다 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여론조사 며칠 전, 독일인의 불안을 다시 자극한 사건이 있었다. 현지 시각 7월 25일 오후 10시, 누군가가 차를 몰고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돌진했다. 공원에서는 역사 깊은 성소수자 행사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퍼레이드가 끝나고, 폐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차가 나무에 박혀 멈추자, 범인은 큰 칼을 들고 주변 행인을 무차별 공격하고는 달아났다. 다음날 경찰에 포위되자, 범인은 경찰에게 달려들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범인 외 한 명이 죽고, 서른한 명이 다쳤다.범인의 이름은 압둘 발루트. 사건 당시 만 21세였다. 어머니는 2002년에 독일 국적을 얻은 레바논계 이민자였다. 압둘은 어려서부터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고, 친척의 영향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심취했다. 독일 헌법수호청도 2021년 11월부터 압둘을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지정하고 주시했을 정도였다. 2025년에는 사촌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ISIS에 합류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갔다가 레바논 군사경찰에 체포되어 3개월 동안 구금된 적도 있었다.심지어 2026년 5월 압둘은 독일 법원에서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받았다. SNS에 이슬람 극단주의 선전물을 유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5월 기준으로 압둘은 만 20세였는데, 독일 형법에서 만 18세에서 21세까지는 성인과 청소년 사이, 즉 ‘성인 이행기’로 분류된다. 독일 법원은 성인 이행기에 있는 사람에게 성인과 똑같은 형법을 적용할 수도 있고, 조건에 따라서 청소년 형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압둘은 법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IS와 거리를 두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청소년형법에 따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그리고 7월 25일, 압둘은 성소수자를 노린 테러를 저지르고 사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압둘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부 기관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재판도 열렸다. 하지만 이민자 통합에 실패한 채 무분별한 관용을 베푼 결과,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 베를린은 자유의 도시라지만, 차가 사람 가득한 공원에 돌진하는 상황에는 도망칠 자유가 남을 뿐이었다.7월 25일 테러는 무분별한 관용이 초래한 수많은 비극 중 하나에 불과하다. 2024년 베네수엘라 불법체류자에 의한 레이큰 라일리 살해 사건 등, 서구에서 관용의 이름으로 안전을 외면한 사례는 손가락 숫자를 진작 넘어섰다. 그럼에도 ‘관용적인’ 서구 기성 정치인들은 왜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범죄자로 전락하기 쉬운, 궁핍한 조건에 이민자가 몰리는 상황을 구조적 차별이라 부르며 문제 삼을 뿐이다.지금 독일에서는 청년들이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다. 경제 전반이 침체되어 있어서 이민자는 더 어려운 조건에 처하기 쉽다. 그런데 독일은 이런 상황을 고치지 않고 국경부터 개방했다. 무엇이 수많은 독일인을 포퓰리스트로, 압둘 발루트를 테러리스트로 만든 걸까.덴마크의 사회민주주의자 총리인 메테 프레데릭센은 강경한 통합 정책을 추진한 탓에 관용적인 이웃 나라로부터 비난받았다. 2025년 2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프레데릭센 총리는 이렇게 경고했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자처럼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을 모두 받아줄 수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을 받은 사회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대가를, 7월 25일 티어가르텐에 모인 성소수자들이 또 한 번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