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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026.07.24.
투기를 막는다고 하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생산적인 투자이고 지대를 추구하는 투기인가? 여기에는 모든 나라가 공유하거나 주류 학계가 합의한 단 하나의 기준이 없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회는 공공이익을 위해 무엇이 부당한 소득인지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과 언덕의 경계, 안전 운전과 과속 운전의 경계가 임의적인 것처럼, 사회는 생산적 투자라는 목적에 맞게 임의로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을 설정할 수 있다. 요리사가 여러 재료를 맛보며 가장 맛있는 조합 비율을 찾듯이, 사회는 억울한 사람을 최소화하고 생산 활동을 촉진하는 투기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초과이윤세를 도입한 사례들을 보면, 산업별 평균 이윤율이나 국채나 예금 등 안전자산의 수익률을 초과하는 부분을 초과이윤으로 설정한다. 흔히 상대적 빈곤의 기준을 중위소득 50% 또는 60% 미만으로 설정하지만 이것도 임의적인 기준이지, 절대적인 기준선이 아니다. 과속 기준이나 유통기한처럼 이미 세상은 목적에 맞게 설정된 임의 기준들로 가득하다. 투기 역시 사회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준이다. 문제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권들이 하나같이 투기의 의미를 정하는 작업조차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적이 누구인지 정하지도 않고 전쟁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적이 잡힐 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하는 주제는 '사회가 무엇을 투기로 봐야 하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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