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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로
4일 전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인가? 듀레이션과 금리(2편)> 앞서 1편에서는 채권가격과 금리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채권의 만기에 따라 금리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듀레이션의 개념에 대해사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SVB가 단기로 조달한 자금으로 장기채권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내용오류 마무리했었는데요. 오늘 그 결정이 어떤 나비효과로 돌아왔는지 살펴보고,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명제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한 금리갭이라는 개념을 배워보겠습니다. 1. SVB 사태의 서막 SVB 사태를 시간의 흐름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음슴체로 쓸게요) 첫 번째 톱니 — 코로나 시절, 예금이 감당 못 할 수준으로 밀려들기 시작 (1) SVB는 실리콘밸리의 은행임 (2)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이 주 고객이었음 (3) 2020~2021년, 코로나 국면에서 미 연준이 코로나 봉쇄로 인해 침체된 경기 회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0%대로 정하면서 시중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풀림 (4)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금리로 벤처 투자 붐이 일었고, 스타트업들은 투자받은 돈을 SVB 계좌에 쌓아둠 (5) SVB의 예금은 폭발적으로 늘어남 (6) 은행 입장에서 예금은 ‘갚아야 할 빚’ 임(부채계정에 찍힘) (7) 예금에 이자를 주려면 이 돈을 굴려서 예금 이자 이상을 벌어야 함 (8) 그런데 밀려드는 예금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출로 다 내보내는 데 한계가 있었음 (9) 여기서 SVB는 남는 돈으로 채권을 사기로 결정함. 그것도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장기 국채와 장기 주택저당증권(MBS, 정부기관 보증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임 (10) 당시 기준금리가 거의 0%에 가까웠으니, 단기채 투자는 무의미했음.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었음 (11) 문제는 앞서 만기가 길다 = 듀레이션이 크다 =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폭락한다는 공식을 배운 바 있음 (12) SVB는 단기로 예금을 받아서, 장기로 운용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금리 상승의 리스크를 지는 것으로 이어지게 됨 두 번째 톱니 — 연준 4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 (13) 2022년, 상황이 급변함. 코로나 이후 CPI가 폭등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금리를 무섭게 올리기 시작함 (14) 2022년 3월 0.25% 수준이던 정책금리는 그해 말 4.5%까지 오름. 이는 40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속도였음 (15) 기준금리가 예상외로 가파르게 상승하자, 장기채 금리도 폭등하기 시작함 (16) SVB가 잔뜩 사둔 저금리 장기 채권의 가격은 폭락함 (17) 앞에서 SVB의 보유채권의 평균 듀레이션이 6.2년이라고 했고, 기준금리 기준으로 금리는 4.25%가 상승했으니, 대략 계산해 보면 듀레이션 6년 × 4.2%, 보유 채권 포트폴리오의 25.2%가 평가손실을 입게 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음 (18) 채권은 투자 시 목적에 따라서 회계처리를 달리함 (19) 만기까지 이자 수취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상각후원가측정 금융자산(AC)으로, 이자 수취도 하면서 매도도 할 목적으로 매수하는 경우는 기타 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OCI)으로, 그 외에 매도가 주요 목적인 경우는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FVPL)으로 분류함 (20) 이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금리변동에 따라 채권의 평가손익이 발생하는 경우 그 평가손익을 바로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결정한다는 데 있음 (21) AC의 경우 평가손익이 발생해도, 별도 평가하지 않고 당기손익에 반영되지 않음. FVOCI의 경우 평가손익이 기타포괄손익 누계액에 반영(자본에 반영), FVPL의 경우 당기순이익에 직접 반영됨 (22) SVB의 경우 전체 보유 채권 약 1,200억 달러 중 762억 달러를 AC로 보유하고 있었음 (23) AC로 분류해서 재무제표의 자본이나 당기순이익 항목에 채권의 평가손실이 반영되지 않더라도, 평가한 공정가치는 반드시 재무제표 주석으로 공시해야 함 (24) 실제로 SVB의 2022년 10-K 보고서에 AC 채권의 장부가와 공정가치 평가금액이 그대로 기재되어 있었음 (25) 해당 규모는 152억 달러 수준이었고, SVB의 장부상 자기자본은 160억 달러임 (26) AC 채권의 미실현 손실을 장부에 반영 시 자기자본은 10억 달러 남짓으로 쪼그라들게 됨 (27) 시장은 이를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었음 세 번째 톱니 — 벤처 겨울이 오자, 예금이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 여기까지만 해도 사실 은행이 곧바로 문을 닫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AC의 경우 평가손실은 팔지 않으면 확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가면, 중간에 가격이 아무리 출렁여도 만기에는 약속된 원금을 돌려받습니다. 미국 국채는 미국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만기에 원금을 갚으니까요. “장부상 손실일 뿐, 만기까지 버티면 된다”는 게 SVB의 계산이었습니다. 문제는, 버틸 수 있느냐였습니다. 바로 이 포인트에서 은행업의 수익성의 기술적 포인트인 만기 불일치 — 단기로 조달해서(예금), 장기로 운용(대출, 채권) — 가 재앙이 되기 시작합니다. SVB의 자산(장기 채권)은 만기가 길어서 중간에 매도하지 않는 이상 현금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불어 금리 상승으로 미실현손실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라 중간에 매도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고객의 예금은 언제든 스마트폰 버튼 한 번으로 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2022년 들어 금리가 오르자 벤처 투자가 얼어붙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새로 투자를 못 받으니, SVB에 쌓아둔 예금을 야금야금 빼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거죠. 다시 음슴체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26) 금리가 인상되자 VC의 겨울이 찾아왔고, 그들이 예치한 예금이 야금야금 인출되기 시작함. 이는 22년 4분기에 시작해 23년 1~2월까지 계속되었음 (27) 23년 3월 초 무디스가 SVB에 신용등급 강등 준비를 통보함. SVB가 보유한 채권가치의 하락이 무디스의 강등 준비 통보의 이유였음 (28) SVB는 등급을 지키기 위해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만들어야 했음. 그 계획으로 채권을 매각하기로 함 (29) 이때 보유 채권 중 AC 채권을 팔면 FVOCI로 재분류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미실현 손실이 한꺼번에 재무제표에 반영되게 됨 (30) 그래서 보유 중이었던 200억 달러 규모의 FVOCI를 눈물을 머금고 손절매함 (31) SVB는 보유 채권을 손해를 감수하고 팔아치웠다고 발표함. 이 매각으로 약 18억 달러의 손실이 ‘확정’됨 예금이 빠지면 은행은 돈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예금을 받아 투자한 자산은 만기가 긴 미국국채로 만기 전에 현금화할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채권을 내다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채권은 지금 금리 급등으로 가격이 폭락한 상태입니다. “만기까지 버티면 된다”던 계획이, 예금 인출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3년 3월 8일, SVB는 결국 보유 채권 일부를 손해를 감수하고 팔았다고 발표합니다. 장부 속에 숨어 있던 평가손실이 진짜 손실로 터져 나온 거죠. 그리고 부족한 자본을 메우려 약 22.5억 달러 규모의 증자(보통주와 우선주 등 신주 발행)를 하겠다고 함께 발표했습니다. 2.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으로 단 이틀 만에 파산하다 (31) SVB 경영진은 이 발표가 시장을 안심시킬 거라 기대함.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음 (32) 투자자와 예금자들은 “자본을 급하게 메워야 할 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뜻으로 해석함. 장부에 안 잡힌 손실이 더 있는 거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함 (33) 여기서 SVB 고객의 특성이 최악으로 작용함. SVB의 예금은 대부분 거액의 법인 예금이었음 (34) 게다가 고객들은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이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 서로 실시간 소통하는 사이였다는 것임 (35) “SVB 위험하다더라, 빨리 돈 빼라”는 말이 메신저를 타고 삽시간에 퍼짐. 유명 벤처캐피털들이 자기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에게 “지금 당장 SVB에서 돈을 빼라”라고 조언함 (36) 그 결과 하루 만에 약 420억 달러의 인출 요청이 몰림. SVB 전체 예금의 약 4분의 1이 단 하루에 빠져나가려 한 것임 (37) 창구 앞에 사람이 줄을 서던 옛날 뱅크런과 달리,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벌어진 디지털 뱅크런이 벌어짐. 은행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였음 (38) 2023년 3월 10일, 규제당국이 SVB를 폐쇄하고 예금보험공사를 관리인으로 지정함 (39) 설립 40년의 은행이, 마지막 이틀 만에 사라진 것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 코로나 예금 폭증 → 장기 채권 대량 매입(듀레이션 폭탄 장착) → ② 연준 급격한 금리 인상 → 채권 가격 폭락(거대한 평가손실) → ③ 벤처 겨울로 예금 인출 → 손실 확정 매각 → 불안 확산 → 디지털 뱅크런 → 파산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요. 이렇게 급격하게 예금 인출이 확산한 이유에는 SVB 예금의 특성에 있습니다. 앞서 거액의 법인 예금이 많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SVB 예금의 약 94%가 예금보험 한도(미국은 1인당 25만 달러)를 넘는 ‘무보험 예금’이었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돈일수록, 조금만 불안해도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빠져나갈 출구를 찾습니다. 은행이 무너지면 25만 달러까지만 돌려받고 나머지는 날릴 수 있으니, 남들보다 1초라도 먼저 빼는 게 상책이라 그들은 생각한 거죠. 뱅크런의 살인적인 속도는 디지털 기술만이 아니라, 이 ‘보호받지 못하는 두려움’이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3. 정리 : 그래서, 국채는 안전자산인가? (1) 안전자산의 진짜 의미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SVB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를 샀는데, 왜 그 안전자산이 은행을 파산하게 만들었을까요? “안전자산”이라는 말에는 숨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국채를 안전자산이라 부를 때, 그건 정확히는 “만기까지 들고 가면 약속된 원금과 이자를 떼일 걱정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걸 신용위험(돈을 떼일 위험)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 국채는 미국 정부가 보증하니, 이 신용위험 측면만 고려했을 때는 지구상 가장 안전한 자산이 맞습니다. 하지만 채권은 고정금리 자산이라는 성격 때문에,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금리위험(가격변동위험)입니다. 만기까지 못 가고 중간에 팔아야 할 때,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떨어져서 손해를 보는 위험이죠. 국채는 신용위험은 없지만, 금리위험은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기가 길수록, 즉 듀레이션이 클수록 이 금리위험은 커집니다. “국채는 안전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만기까지 들고 갈 수 있다면 안전하다”입니다. SVB의 비극은 바로 이 “만기까지 들고 갈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무너진 데서 발생했습니다. 예금 인출이 계속되자, SVB는 만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채권을 팔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금리리스크는 손실로 실현되고 맙니다. (2) 10년 넘게 이어져온 채권에 대한 신뢰 붕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전 세계에 값싼 제조품을 수출하면서 디플레이션의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그 기간에 세계의 중앙은행은 아무리 기준금리를 내려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경험했습니다. 그 시기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바로 전 세계 채권투자자였습니다. 그 기간은 무려 10년이나 지속되었고, 2018년 연준의 금리 인상 위협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0년 이상의 태평성대에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금리리스크를 어느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 평화시대에 전쟁을 준비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장기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진 순간, 인플레이션이라는 블랙스완이 채권 시장을 강타했고 국채의 안전성을 믿었던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천문학적 평가손실을 입었습니다. SVB는 그 평가손실의 발생 순간을 버티지 못한 대표적 사례이고요. (3) 이 이야기의 교훈 "자산이 아무리 안전해도, 내가 갚아야 할 부채의 만기와 자산의 만기가 어긋나 있으면 위험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은 짧게 빌려서 길게 운용하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에 그대로 적용된다." 은행의 언어로 바꾸면 이것이 바로 금리갭, 더 정확히는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차이인 ‘듀레이션 갭(duration gap)’입니다. 자산(장기 채권)의 듀레이션은 긴데, 부채(단기 예금)의 듀레이션은 짧을 때, 그 벌어진 틈(갭)만큼 은행은 금리 변동에 취약해집니다. 금리가 오르면 자산 가치는 크게 빠지는데 부채는 그대로니, 그 차이가 고스란히 자본을 갉아먹는 거죠. SVB는 이 갭을 위험할 만큼 크게 벌려놓았고, 심지어 2022년에 이 위험을 막아주던 헤지 장치(금리 상승 위험 시 대비 상품)마저 스스로 걷어냈습니다. 금리가 곧 내려갈 거라 판단하고서요. 그 판단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안전자산에 투자했으니 안심”이라는 말은 진짜 본질의 절반만 본 것이라는 거 이제 이해하시겠죠? 내가 투자한 회사가 짧게 빌려 장기로 운용하는 비즈니스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자산이 미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이라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투자한 회사가 금리 변동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평가하고, 시장이 블랙스완에 빠졌을 때 버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는지를 반드시 같이 살펴봐야 합니다. 단기로 빌려서 장기로 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기법은 언제나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라는 전제가 유지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명심해야 합니다. 가장 안전한 자산을 골랐는데도 어떻게 은행이 무너질 수 있냐는 질문의 해답은 자산 자체의 안전성이 아니라, 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어긋난 틈, 바로 금리갭에 있었습니다.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인가? 듀레이션과 금리>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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