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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5.08.
민원이 많을수록 아무것도 못 한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목소리는 왜 권력이 되었는가 1.서론 — 사과하는 아이들 2025년 가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운동회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박수도, 출발 신호도 아니었다. 사과였다. 뛰기 전에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장면은 곧 퍼졌다. 교육부 장관이 직접 나서 운동회 소음에 "너그러운 이해"를 당부했다. 장관이 움직여야 할 만큼, 이것은 이미 한두 학교의 일이 아니었다. 교육부 자료를 들여다보면 숫자가 말을 한다. 운동장 구기 활동을 제한하는 초등학교 287개교. 부산은 전체의 35%, 서울은 17%. 서울 지역 초등학교 60%는 승부를 가리는 운동회를 열지 않는다. 소풍을 가지 않는 학교는 2023년 1%에서 2025년 51%로, 2년 만에 절반을 넘어섰다.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출처: MBC 뉴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는 사회와, 달러 중심의 단일 질서가 흔들리는 세계 사이에는 어떤 공통된 뿌리가 있는 것일까. 2.첫째 — 구조 분석: 민원은 왜 권력이 되었나 표면적인 설명은 단순하다. 안전 사고가 우려되고, 경쟁에서 진 아이가 상처받을 수 있으며, 소음이 민폐라는 것이다. 각각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학교는 사고를 예방하거나 갈등을 조정하는 대신, 활동 자체를 없애는 쪽을 선택하는가. 답은 구조에 있다. 민원이 들어오면 책임이 발생한다. 책임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현장체험학습 중 사고가 나면 교사가 형사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는 교사가 90%다. 이 구조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활동을 없애면 사고도 없고, 민원도 없고, 책임도 없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용기 부족이 아니다.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민원 제도 자체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렇지 않다. 민원은 권력이 개인의 목소리를 무시하던 시대에 대한 정당한 반격이었다. 그 채널이 생기고 확장된 것은 민주주의의 성숙이다. 문제는 채널이 아니라 그 채널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민원의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라진 것, 그리고 목소리의 크기가 정당성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 이것이 핵심이다. 서울시교육청의 61페이지짜리 민원 응대 매뉴얼은 공감하고, 경청하고, 사과하라고 안내한다. "같은 상황이었어도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문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판단이 빠진 공감은 결국 항복이 된다. 40·50대는 이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세대다. 민원 창구가 생기기 전의 불통도 알고, 민원이 도구가 되는 과잉도 안다. 이 세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눈이다. ​ 3.둘째 — 철학 교차: 신뢰는 어디에 있었는가 토마스 홉스는 말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 개인에게 안전을 제공한다. 이 계약이 사회의 기반이다. 존 로크는 다른 방향을 봤다. 국가의 권위는 개인의 동의에서 나온다. 국가가 그 계약을 위반할 때, 개인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 두 철학자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신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홉스에게 신뢰는 국가가 보장한다. 로크에게 신뢰는 개인의 판단과 동의에서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의 민원 공화국은 어느 쪽인가. 표면적으로는 로크적이다. 개인이 목소리를 내고, 국가(학교, 공공기관)는 그 목소리에 반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홉스적 공포가 작동하고 있다. 민원이라는 위협 앞에서 공무원과 교사는 자기 보호를 위해 행동한다. 이것은 신뢰의 작동이 아니라, 공포의 작동이다. 나는 지금 이 구조를 이렇게 본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 즉 국가라는 거대한 신뢰 장치가 부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신뢰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공백 안에서 목소리 큰 개인이 임시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패치워크 세계와 연결된다. 단일 질서가 흔들리는 세계에서, 달러라는 하나의 신뢰 축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디지털 위안화, 비트코인, 각자의 네트워크로 흩어진다. 학교 운동장도 마찬가지다. 교육이라는 단일한 신뢰 공간이 흔들릴 때, 각자는 자기 아이만을 중심에 놓는다. 세계적 현상과 운동장의 풍경이 같은 구조를 공유하는 것이다. 패치워크 세계는 단순히 지정학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분절화다.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기준이 공존하는 세계. 운동장에서 뛰는 것이 당연한 사람과, 그것이 위협인 사람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세계. ​ 4.셋째 — 현실 접속: AI와 크립토가 묻는 것 여기서 AI와 크립토라는 두 개의 렌즈를 들이대면, 문제가 더 선명해진다. AI는 판단을 자동화한다. 민원 응대 매뉴얼이 61페이지가 되는 사회는, 결국 판단을 매뉴얼로 대체하려는 사회다. 그 다음 단계는 AI가 민원을 분류하고, AI가 응대 문구를 생성하며, AI가 담당자 대신 사과한다. 기술이 판단의 공백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AI가 채우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판단의 형식이다. 공감의 언어를 생성하지만, 무엇이 정당한 요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구조의 문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민원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그 주체가 사라진 자리를 AI가 채우면, 우리는 판단 없는 응대의 무한 루프에 갇힌다. 크립토는 신뢰를 탈중앙화한다. 비트코인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국가나 기관을 신뢰하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 선언이기 전에 철학적 선언이다. 신뢰의 주체를 인간 기관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기겠다는 것. 그러나 여기서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알고리즘은 무엇이 정당한 거래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규칙을 실행할 뿐이다. 규칙을 만드는 것, 규칙이 옳은지를 묻는 것,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민원 공화국과 크립토 세계는 같은 지점에서 충돌한다. 신뢰를 시스템에 위임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신뢰는 반드시 판단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 한 민원인이 2025년 한 해 동안 46,685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하루 128건. 이것을 처리하는 시스템은 점점 AI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그 민원들 중 어떤 것이 정당하고, 어떤 것이 시스템을 무기화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역량이 없다면,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빠르게 처리하는 기계가 될 뿐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는 것이 결국 무엇을 요구하는가. 판단하는 인간의 복원이다.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규칙인지를 묻는 사람. 민원을 공감하되, 그것이 정당한지를 먼저 물을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 판단을 개인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제도적 보호막. 5.결론 — 아무것도 안 하는 사회의 비용 하나의 인사이트를 남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그 규칙은 대부분 "하지 말라"는 형태를 띤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고, 사회 전체가 그 방향으로 수렴한다. 그 끝에는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학년마다 등교 가능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일찍 와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된다. 부모의 출근 시간은 제각각이고, 아이의 걸음 속도는 날마다 다른데, 학교는 10분 안에 골인하라고 요구한다. 안전 관리를 위한 규칙이라지만, 그 규칙을 맞추지 못한 아이는 교문 앞에서 혼자 기다려야 한다. 사고를 막으려다 아이를 더 위험한 곳에 세워두는 구조다. 규칙이 정밀해질수록 현실은 더 엉성해진다. 오늘 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이 있다면, 이것이다. 내가 속한 공간에서 "이것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 공감이 먼저가 아니라, 판단이 먼저다. 그 판단을 말로 꺼내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남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패치워크 세계에서, 신뢰는 누가 만드는가. 국가가 무너지고, 알고리즘이 판단을 대신하며, 목소리 큰 소수가 규칙을 흔드는 세계에서, 판단하는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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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픽
2026.05.08.
좋은 글 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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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5.09.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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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2026.05.08.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그 규칙은 대부분 "하지 말라" 정말 절절히 공감합니다. 민원들어주는게 인권 지켜주는 걸로 알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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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5.09.
맞습니다! 공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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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철
2026.05.08.
공감되는 말씀 하셨습니다. 왜 민원에 쩔쩔매고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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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5.09.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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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김여사
2026.05.09.
여자들이 걸핏하면 민원 넣고 극성을 부려서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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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5.09.
여성분들이 민원을 많이 넣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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