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Avatar
이완
2026.07.20.
경제 질서를 마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다. 그 주장을 뜯어보면, '시장 경쟁은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 패자는 재분배를 바라지 말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정부는 경쟁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식이다. 경쟁의 목적을 오직 승자 가려내기로만 설정하는 것 같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서, 문명 밖 야생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을 바라는 것 같다. 자칭 '자유 우파, 애국 보수' 중에서 저런 무정부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데, 저런 경제 질서가 사람들 마음속에 애국심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걸까. 물론 경쟁은 혁신의 동력이자 가장 훌륭한 권력 감시 수단이다. 하지만 무제한에 가까운 경쟁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 무제한 경쟁이 결국 독과점과 경쟁 그 자체의 종말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특히 경쟁 패배자들이 순순히 빈곤과 모욕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공상적이다. 어찌 보면, 극좌파가 꿈꾸는 평등주의적 인간관보다 더 비과학적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모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통속적이고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의도치 않게 사회를 공산화 또는 전체주의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지상주의를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의 앞잡이처럼 여겼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질서를 지키는 것, 경제 질서를 단순한 생존 경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것이 다양한 보수주의, 사회주의 사상의 공동 목표였다. 둘의 차이는 제한 없는 경쟁을 보는 관점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을 어떻게 제한하려 했는가, 어떤 질서를 무제한 경쟁의 대안으로 여겼는가에서 드러난다. 물론 경쟁 그 자체를 찬양하는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보수의 원조 또는 전부가 결코 아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서구 보수주의 사상들 상당수가 무제한 경쟁이 초래한 도덕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려면 대다수 사람이 질서에 충성해야 하는데, 무제한 경쟁이 그런 충성심을 무너뜨렸다고 적지 않은 보수주의자들은 여겼다. 그래서 메테르니히나 비스마르크 같은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들과도 접촉해서 그들의 아이디어를 일부 받아들였다. 비스마르크는 제국 의회 연설에서 대놓고 자신의 계획이 사회주의적이며, 제국이 더 사회주의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전후 보수주의자들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신자유주의 우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만든 이미지에 가깝다. 일본 보수는 오랫동안 시장 경쟁보다는 국가와 재벌이 협력하는 코포라티즘 체계와 광범위한 사회 보장 체계를 다듬어 왔다. 당선과 지지율이라는 단기 이익만 쫓는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과 다르게, 일본 보수 정치인은 서구 귀족처럼 나라를 영속시킬 책임을 지는 통치자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최근 주류 경제학에서도 시장만능주의는 배척당하는 분위기다. OECD나 IMF 보고서도 상황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 복지 확대를 권장하기도 한다. 특히 중국과 미국이 국가 재정을 동원한 발전 경쟁을 벌이면서, 일본과 독일 등 여러 중견국이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는 언제나 국가와 함께 발전해 왔다. 시장 질서를 창출하고 보호하며 사회 통합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한 국가가 없다면, 국가 단위를 넘는 거대한 자본주의도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키려면 국가도 지켜야 한다. 국가를 지키려면 경쟁의 악영향을 철저히 관리해서 대다수가 체제를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제한 경쟁은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 경쟁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는 순환논리에 불과하다. 경쟁의 목적이 경쟁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함께 살며 서로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질서 있는 경쟁이 필요하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정치인 벤자민 디즈레일리 총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오두막이 행복해야 궁전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Like Inactive Icon
11
Comment Icon
0
Share Icon
공유하기
모든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Avatar Icon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