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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2026.05.06.
시총 1조 달러 삼성전자, 7천피, 그리고 다음 세대 개발자들에게 보내는 포스트멘텀 —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끝난 날, 잔을 들며 2026년 5월 6일. 코스피 7,384.42, 전일 대비 +6.45%. 사이드카는 올해만 일곱 번째. 외국인은 단 하루에 1조 8,885억 원을 순매수했다. 삼성전자는 장중 27만 원을 찍고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아시아에서는 TSMC에 이어 두 번째,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 SK하이닉스는 162만 원, 글로벌 시총 16위. 이 두 종목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를 넘는다. 이런 날의 칼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쓸 수 있다. 하나는 "AI 슈퍼사이클이 어쩌고, 메모리가 구조적으로 저쩌고" 하는 점잖은 분석. 다른 하나는 잔을 들고 시작하는 글. 나는 후자를 골랐다.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다. 그런데, 잠깐. HTS가 좀 이상하다는데? 축배의 잔을 들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늘 몇몇 트레이더 단톡방에서 이런 캡처가 돌았다고 한다. "가격 입력 오류", "호가 단위 초과", "표시 자릿수 초과". SK하이닉스 162만 원, 삼성바이오로직스 100만 원대 종목들이 슬슬 7자리, 8자리로 뻗어나가는데 어떤 HTS는 가격 칸이 깨지고, 어떤 차트는 라벨이 잘려 나온다. 원인을 짚어드리겠다. 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짠 코드 때문이다. 당시 HTS는 정답을 몰랐다. 그래서 하드코딩이 난무하고 C로 된 라이브러리와 차트를 그리기 위한 vbscript가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IMF 직후의 폐허 위에서 만들어졌다. 코스피 지수는 277.37(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 회복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그 시절에 우리가 정의한 가격 필드는 대체로 이랬다. int price; // 4자리면 충분하지 뭐 char price_str[6]; // "9999\0" + 여유 1 NUMBER PRICE PIC 9(4); // COBOL은 또 어떻고 소수점 자리는 별도로 빼고 정수부 4자리. 코스피 지수도 실수로 표현해서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6,000을 넘는 코스피, 100만 원짜리 우량주? 그게 우리 세대 개발자에겐 사이언스 픽션이었다. "9999면 평생 안 깨지지"라고 누군가 회의실에서 말했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게 이제 깨졌다. 정확히는, 오늘 우리가 깨버렸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후배 개발자들에게 증권사 CTO들, IT 본부장들, 그리고 무엇보다 한밤중에 알람을 받고 일어날 후배 개발자들에게 — 정말 미안하다. 당신들이 이번 주말부터 야근하며 들여다볼 그 코드, priceFormat(), OrderValidator, MarketDataParser. 그 안의 매직 넘버 9999, 999999, 그리고 더 무서운 Int16. 그건 사실 서른 살 즈음의 우리가, IMF의 한복판에서, "한국 증시가 이렇게 클 리 없잖아" 라는 비관과 "일단 돌아가게만 만들자" 는 데드라인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물이다. 리팩터링 가이드를 미리 드리자면 대략 이렇다. <첨부 이미지> 마지막 줄이 핵심이다. 하드코딩으로 박힌 임계값은 정책 테이블로 빼라.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변경이 아닐 것이다. 7천피를 보고 놀라는 우리가, 1만 5천피 앞에서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여러분이 작성할 회고록 어딘가에 "2026년 5월의 그 양반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INT16을 박아둔 거지" 라는 줄이 들어가도 좋다. 사실대로 적자면 그때 우리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던 우리가 틀렸다. 그게 오늘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랜 핑계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증시를 설명할 때 가장 편했던 단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였다. 지정학 리스크, 지배구조, 행동주의 펀드의 부재, 배당 성향, 분식의 그림자, 그리고 무엇보다 — 어차피 외국인은 한국을 안 본다는 자기충족적 예언. 우리는 그 단어 뒤에 너무 오래 숨었다. PER 5.9배짜리 메모리 강자를 앞에 두고도 "그래도 한국이니까"라며 할인했다. 그런데 오늘 외국인은 단 하루에 1조 8,885억 원을 던져 넣었다. 역대 3위 규모다. 블룸버그가 잡은 증권사 컨센서스는 이 값에서 12개월간 25%가 더 갈 수 있다고 본다. 라운드힐 인베스트먼트의 데이브 마자는 "메모리 반도체가 AI 인프라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경기 순환적이 아니라 구조적" 이라는 시장의 판단을 거론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디스카운트'라는 단어가 더 이상 면죄부로 쓰이지 않는 시장이 됐다. 이건 단순한 주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매겼던 디스카운트 가 풀렸다는 얘기다. 그래서, 잔을 들자 오늘은 분석가의 날이 아니다. 분석은 내일 해도 된다. 어차피 내일도 변동성은 살벌할 거고, 누군가는 "과열이다" 를 외칠 거고, 또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다" 를 외칠 거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거다. 오늘은 그저, 27년 전 자기 코드의 가정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본 한 명의 옛 개발자가, 그 무너짐이 다름 아닌 우리 시장의 성장 때문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는 날이다. 레거시는 후배들이 고친다. 그게 코드의 운명이고, 시장의 운명이다. 우리는 4자리에 머물 거라 믿었고, 후배들은 7자리를 넘어 8자리를 준비할 것이다. 다음 세대는 또 그들의 INT16을 어딘가에 박아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른 6.45% 급등 장에서 그 코드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게 좋은 일이다. 코드가 비명을 지를 만큼 시장이 자라난다는 뜻이니까. 오늘 자정, 어딘가에서는 사이드카 발동 후 후속 패치를 위해 서버에 SSH로 접속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분에게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러나 진심으로 — 건배. 97년에 IMF를 맞은 세대에서, 2026년에 7천피를 본 세대로. 그 사이의 모든 오기, 손절, 야근, 그리고 끝내 죽지 않은 회사들에게. 오늘은 마실 만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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