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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026.07.08.
외가 사촌 동생 중 둘째는 오랫동안 언어 치료를 받았다.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느려서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자주 당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이모부가 동생을 장애인으로 적극 등록하지 않았다. 훗날 큰 불이익이 있을까 봐, 그리고 언젠가 치료될 수 있을 줄 알고 그런 듯하다. 장애인 차별은 일상이니까. 그 탓에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친가에는 혼자 일어설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 사촌이 있다. 지금은 이혼한 탓에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게 되었지만, 큰 엄마 혼자 그 사촌을 30년 넘게 보호하고 있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종종 소식을 전해듣고 있다. 장애인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나도 수년 째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먹는 공황장애 환자다. 군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았고, 현역부적합심사로 전역해야 했다. 2주 전 즈음에는 ADHD까지 진단받아서 시범 삼아 콘서타를 먹고 있다. 자살을 시도한 적 있는 정신질환자.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상병 계급도 받지 못한 현역부적합자. 고등학교도 1년만에 자퇴한 저학력자. 굳이 분류하자면 이렇다. 극빈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평균만큼 산다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위치다. 나는 복지 신청주의의 단점과 중증 장애인 보호자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봤고, 나 자신도 사회적 평균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다. 그런 내가 약자들의 삶과 무관한 기득권인가. 그럼 대체 누가 유관한가? 사각지대를 직접 겪어 본 적도 없는, 강남 사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유관한가? 답이 무엇이든, 기성 진보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성 진보는 자신 또는 자신이 공감하는 대상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항상 누군가가 상처받을 수 있으니 말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반대편의 삶과 생각을 멋대로 재단하며 조롱하거나 혐오주의자로 규정해 버린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정치 세력을 내가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상상 속 약자 또는 자신들이 지정한 약자에게만 관대한 세력을 진보주의자라고 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내 주변에 장애인이 있는지, 내가 정신질환자인지 어떻게 알고 말을 가리냐고?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과 혐오 표현 처벌의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다. 세상에는 수많은 약자 집단이 있다. 그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표현도 매우 다양하다. 그 표현도 자주 변한다. 일상에 치이는 사람 모두가 다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칭 진보주의자도 그렇게 못한다. 그럼에도 혐오 표현을 처벌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미투 운동이 성폭력 무고로 변질되어서 여러 사람의 생계와 생명을 빼앗은 것처럼. 완전히 정신을 놨다. 미쳐 버렸다. 뇌가 없다. PC 관점에서 보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댓글을 봐도 혐오 표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모두가 나에 대해서 잘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무엇보다 차단해 버리면 반복적으로 접할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상대가 싫어하는 말을 여기저기 반복하는 것은 혐오 표현이란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무례한 일이자 범죄였다. 몇몇은 혐오 개념이 생기기 전에는 마치 말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가깝지 않은 상대 앞에서 말을 아끼는 것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미덕이었다. 오히려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말을 가리면 더 불편하다. 나도 사석에서는 시장만능주의자나 볼셰비키 꿈나무들을 보며 '정신줄 놓은 인간들'이라고 종종 부른다. 모두가 선비들처럼 형식 갖춘 시를 주고 받으며 교류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서로의 약점을 찌르며 논다. 물론 선은 있지만, 그 선은 관계의 종류나 깊이마다 다르다. 상대에게 전혀 무례할 수 없다면, 그 상대는 과연 내 친구인가, 상전인가? 상대를 보며 말을 조심하느라 긴장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진보주의자가 혐오 표현이라는 자의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앞세워서 사람들을 처벌하려 한다면, 정말 서로를 아끼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될까? 사회 곳곳에 동료애(Fellowship)를 퍼뜨린다는 진보주의의 오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약자우선주의, 평등지상주의에 빠진 기성 진보주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자신들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앞세우는 모순을 청산하고, 실제 평균적인 인간, 현실 속 대다수 인간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주의'를 퍼뜨리려 한다. 국민 다수가 호소하는 안보 불안을 무시하지 않고, 일상에 별 의미 없이 사용되는 단어를 단속하느라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고, 일상에 치이는 사람들을 함부로 혐오주의자로 몰아가지 않는 진보주의. 일할 수 있는 자에게 일할 곳을, 일할 수 없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진보주의. 필요한 불평등까지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습과 지대가 초래한, 인위적이고 지나친 불평등을 폐지하는 진보주의. 노동과 자본의 계급 투쟁이 아니라 협력을 이끌어내는 진보주의. 능력과 덕성 있는 자를 찾고 육성해서 나랏일을 맡기는 진보주의. 나는 이런 진보주의를 원한다. 이런 진보주의야말로 전통 있는, 역사 깊은 진보주의다. 누구와 다르게, 나는 겉멋을 위해 진보주의자를 자처하지 않는다. 최근 기성 진보를 더 자주 공격하는 것도 그래서다. '조선'에 아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근대화가 완수되지 못한 조선땅에 전통 있는 진보주의를 이식하기 위해서다. 기성 진보의 태도를 보면, 이 신조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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