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6시간 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란 대략 이렇다. 중증장애인이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 서울시는 그런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장애인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도 그렇다. 이런 제도를 만든 사람들에게 노동이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런 제도는 지대추구로 변질되기 쉽다. 서울시 정부가 여러 활동들의 실질적인 기여를 측정하기도 어렵고 누가 얼마나 참여했는지 감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일반적인 중증장애인이 아니라 특정 단체에 속한 전업 활동가들에게 예산이 몰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인식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단체, 시민단체를 억지로 부양하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온갖 사회문제가 쌓여 있는데 귀중한 공공 재정이 무익하게 흩뿌려질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지대추구를 유도하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오랜 사회정의에 따르면, 국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적절한 생존 수단을 보장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생존하고 발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좋은 국가라면, 마땅히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도 마련해야 한다.
그 일자리가 오래 유지되려면, 생산성이 낮더라도 시장경제라는 사회적 분업 체계에 속해야 한다. 보조금 등으로 낮은 생산성을 벌충해주더라도, 국가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해서 타인과 교환하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무엇을 보상받을 만한 노동으로 인정할지는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보편적인 공정성 감각을 거스르는 합의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 활동에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정책이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재도입할 것이 아니라, 기업인이나 자영업자에게 더 많은 장애인 채용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만약 장애인을 채용한 사업장에 큰 감세 혜택을 준다면 가짜 채용을 통한 탈세가 일어날 테니, 사업주가 지급하는 임금에 비례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편이 낫다.
공공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여러 시설 이용법이나 정부 제도 등을 교육하고 안내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편이 사회적으로 유용할 것이다. 청소년 문화의집처럼, 장애인끼리 경험을 나누며 세상에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새겨 줄 기관도 더 많이 필요할지 모른다.
굳이 집회와 시위를 무리하게 노동으로 격상시키지 않아도, 장애인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대표성 없는 정치단체에 굴복해서 재정에 구멍을 내는 것은 공공이익을 해치는 일이자 정치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다. 사회정의가 아니라, 부패한 엽관주의일 뿐이다.

11
1
공유하기
모든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