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페로
2026.08.09.
<홍콩은 어떻게 페그제를 유지할까?>
앞서 고정환율제도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드리며 불가능한 삼위일체에 대해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① 자유로운 자본이동
② 독립적 통화정책
③ 고정환율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게 삼불원칙인데요. 다만 이 중에 "독립적 통화정책"을 포기하면 고정환율 제도를 실현할 수가 있습니다.
독립적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페그제"라는 제도를 통해서 고정환율제도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홍콩입니다.
1. 홍콩페그제의 역사
1) 도입 배경(1983년 검은 토요일 사태)
1980년대 초 영국과 중국의 홍콩 반환 협상이 시작되면서 홍콩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이는 홍콩달러에 대한 신뢰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1983년 9월 24일 이른바 '검은 토요일'로 불리는 홍콩달러 대비 미국 달러 환율의 폭락 사태는 이 신뢰 위기가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습니다. 1983년 초 1미달러당 6.5 홍콩달러였던 환율은 1983년 9월 24일 토요일 9.60 홍콩 달러까지 급락합니다. 여기에 홍콩의 장래에 대한 신뢰 위기와 투기적 매도까지 겹치며 환율 하락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홍콩 달러는 1974년 11월부터 변동환율제 아래 있었지만, 통화가치를 안정적 관리 기준이나, 효과적인 통화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당시 홍콩에 통화량과 통화기초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통화관리 장치가 사실상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홍콩달러의 구매력이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해 슈퍼마켓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고, 사재기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또 다른 행렬은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장에서는 홍콩달러에 대한 매도세가 더욱 확대됐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가치가 급락하는 홍콩달러가 아닌 미 달러를 보유하고 싶어했습니다.
9월 24일 시민들의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는 붕괴되었고, 사재기로 텅 비어버린 매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추가 물량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슈퍼마켓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상점에서는 상품 가격을 미국 달러로 표시하기도 했죠.
2) 홍콩 정부의 대응
초기에 홍콩 정부는 금리 인상을 통해 홍콩 달러의 매도세를 막으려 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홍콩 달러의 금리가 우르면 홍콩 달러를 보유할 유인이 커지고, 외화 유출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 가치 하락의 핵심은 단순한 금리차만이 아니라는 것을 홍콩정부는 간과했습니다. 당시 홍콩 달러의 급락세를 촉발한 것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경우 홍콩의 정치적 미래와 통화제도 자체에 대한 불안에 있었기에 금리정책으로는 그 사태의 해결이 역부족이었던 것이죠.
홍콩 정부는 결국 페그제를 검토하기로 합니다. 쟁점은 홍콩 달러를 어떤 통화에, 어떤 비율로 연동할 것인지, 그리고 통화 발행을 어떤 준비자산으로 뒷받침할 것인지 였습니다.
3) 페그제의 도입
1983년 10월 15일 토요일, 홍콩 재무부장관은 홍콩 달러를 미 달러에 고정하는 새로운 환율제도의 세부 내용을 발표합니다. 발표된 기준은 미1달러 = 7.80 홍콩달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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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존 브렘리지 경(왼쪽에서 두 번째)은
1983년 10월 홍콩달러를 미국 달러에 7.80홍콩달러로 고정하는 것을 발표했다.
출처 :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1983년 한 해 동안 홍콩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통화 위기를 겪자, 홍콩 정부는 특정 국가의 통화에 자국 통화의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렇게 1983년 1월, 미 달러 대비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제가 출범했습니다.
페그제 도입 이후 홍콩 달러에 대한 신뢰 위기는 점차 진정됐습니다. 환율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시민과 투자자가 홍콩 달러를 급히 미 달러나 생필품으로 바꾸려는 압력도 완화될 수 있었습니다.
4) 페그제의 진화
*1983~2005년: 처음에는 사실상 1달러=7.8홍콩달러로 고정하는 방식이었고, 발권은행(3대 시중은행 - HSBC, SC, BOC)이 매 발행분만큼 미 달러를 홍콩금융관리국(HKMA)에 예치하는 '통화위원회제도(Currency Board System)'로 운영됐습니다.
*2005년: 환율이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7.75~7.85 홍콩달러 밴드 방식으로 개편됐고, 지금까지 이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1997/98 아시아 금융위기, 2008 금융위기, 2020년대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 변동기 등 여러 차례 투기적 공격과 자본유출입 압박을 겪었지만, 40년 넘게 페그가 깨진 적은 없습니다
2. 홍콩페그제의 장점과 단점
앞서 페그제를 선택하기 위해선 앞서서 통화정책의 주권을 포기해야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통화정책의 주권 포기는 어느 한 측면에서는 장점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서는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을 페그제의 장단점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페그제의 장점>
- 환리스크 제거를 통해 무역·투자 거래 시 발생하는 각종 비용(환헷지, 환손실 등) 감소하여 무역 투자거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수입물가 안정을(기축통화인 달러에 고정 -> 환율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음) 통한 인플레이션 앵커가능. 통화가치 신뢰가 없던 나라에 특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환율 및 통화정책 재량이 봉쇄되어 그 자체가 신뢰를 형성합니다(재정으로 통화를 찍는 유혹 차단)
- 자국통화 표시 조달이 어려운 국가의 차입비용이 절감됩니다.(자국통화 환율 = 기축통화 환율)
<페그제의 단점>
- 통화정책 상실
경기와 무관하게 앵커국 금리를 '수입'합니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초장기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때 홍콩이 연평균 11.6%의 부동산 폭등에도 불구하고 저금리를 강제로 따라간 게 대표적입니다.
- 비대칭 충격에 무방비
앵커국과 경기 사이클이 어긋나면 조정 부담이 전부 임금·고용·자산가격 같은 실물로 갑니다(내부 디플레이션). 예를 들어 미국이 호황기이고, 홍콩이 침체기라고 생각해봅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올릴텐데, 홍콩 역시 자신의 경기 사이클과 관계없이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용은 악화되고 자산가격은 내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조정 부담이 실물 경기로 간다고 설명하는 이유)
이를 곧 환율이 아니라 실물이 대신 조정된다고 해서 내부 디플레이션이라고 불립니다. 홍콩은 실제로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환율 방어에 성공했지만, 대신 부동산 가격이 60~70% 가량 폭락하고 임금이 급락하는 극심한 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 제약
은행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 준비자산에 묶입니다. 페그제 하에서는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서 은행에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해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갖고 있는 달러만큼만 홍콩달러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르헨티나는 페소를 미 달러에 1:1로 페그해뒀는데, 은행 위기가 터지자 중앙은행이 페그제의 제한에 묶여서 유동성을 풀지 못했고, 예금 인출제한까지 갔다가 페그가 붕괴되고 국가 부도로 이어졌습니다.
- 투기 공격 표적이 되기 쉬움
1998년 헤지펀드의 이중 공격(환·주식 동시 숏)처럼, 방어 자체가 금리 급등(을 낳고 그게 주식을 떨어뜨리는 구조가 역이용됩니다. 헤지펀드가 홍콩달러를 대규모 매도해서 홍콩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릴 경우, 홍콩금융관리국은 금리를 인상해 홍콩달러를 다시 사고 싶게 만들어야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자부담이 급증해 기업의 이익이 악화되고 주가가 폭락합니다.
이를 예상한 헤지펀드가 홍콩 주가지수까지 동시에 숏을 쳐놓은 것이죠.
페그제는 그 태생상 페그를 지키는 행위 자체가 주식시장 공격의 무기가 되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방어에 성공해도 지고, 실패해도 지는 함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행이 98년에 홍콩정부는 직접 주식시장에 개입해서 외환보유고로 주가 방어 총력전을 펼쳤고, 헤지펀드들은 어마무시한 손실을 보고 물러났습니다.
<홍콩이 성공적으로 페그제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
홍콩이 구축한 페그제 특징과, 홍콩의 경제의 특징을 보면 홍콩이 페그제의 단점을 견딜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커런시보드 제도
HKMA가 발행하는 홍콩달러는 미달러 준비자산으로 100% 뒷받침됩니다. 발권은행(HSBC·스탠다드차타드·중국은행)이 홍콩달러를 찍으려면 7.80 고정환율로 달러를 예치하고 부채증서(CI)를 받아야 합니다. 발권은행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어 신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② 자동조절 메커니즘
자본이 유출되면 은행 결제잔액(Aggregate Balance)이 줄고 HIBOR가 올라 자본을 다시 끌어옵니다. 당국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규칙이 작동합니다. 대신 홍콩 금리는 사실상 연준이 정합니다.
③ 압도적 화력
외환보유액이 본원통화의 몇 배 수준입니다. 한국이 1997년에 졌던 화력 싸움을 홍콩은 애초에 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홍콩이 여러차례 투기적 자본의 환율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도 역시 외환보유액에 있었습니다.(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당시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928달러 한국은 39.4억달러, 2005년 이후 한국은 홍콩보다 외환보유고가 많았던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유사한 수준)
④ 경제 구조
소규모 개방경제, 무역·금융 중계지, 계약과 자산가격이 달러화 기반. 환율 안정의 효용이 통화정책 자율성의 효용보다 큽니다.
⑤ 재정 건전성
정부부채가 낮아 "환율 방어를 포기하고 부양할 것"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습니다.
결국 페그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근간은 통화정책의 주권이 필요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외환보유고를 보유하는 것 + 그에 맞는 개방경제의 수준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3. 결론
페그는 "환리스크를 없앤 것"이 아니라 평소 환리스크를(평소에 자주 있는 수준의 낮은 환율 움직임) 금리·유동성·신용 리스크로 바꿔놓고, 꼬리위험(뱅크런, 투기 공격, 금융위기 등 블랙스완 상황)구간에 몰아둔 제도에 가깝습니다.
평소의 환위험은 제로로 만들되, 평소 기간에 눌러놓은 압력을 억누르기 위해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해야하는 것이 홍콩정부의 숙명입니다.
더불어 그 눌러둔 압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이해하고, 신뢰가 흔들리는 극단적 순간을 대응해야할 '기지' 또한 가지고 있어야하는게 페그제를 운영하는 국가가 짊어져야할 또 하나의 숙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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