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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1시간 전
“Great minds devote themselves to thought; for them, living is thinking.” 위대한 정신은 생각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 몽테뉴 《수상록》 약 한 달 전, 클로드 활용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업무와 공부, 글쓰기까지 생성형 AI를 전방위적으로 활용하면서 금방이라도 ‘증강인간’이 될 것 같다고 기고만장하게 적었습니다. 돌아보니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습니다. 직무 역량은 분명 좋아졌습니다. AI를 활용해 숫자를 다루고,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자료를 구조화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제가 만든 자료가 팀장님 검토를 거쳐 C레벨 보고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생산성만 놓고 보면 AI는 분명 저를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일을 더 잘하게 될수록 제가 조금씩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능력은 확장됐는데 생각하는 힘이 오히려 약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글을 완성하는 일보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한 가지 주제를 오래 붙잡아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감이 떠오르면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AI부터 찾았습니다. 막히면 조금 더 고민하는 대신 프롬프트를 입력했습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히자마자 해설지를 펼쳐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빠른 답에 익숙해지면서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번거롭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책도 덜 찾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책을 찾아 읽고,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하려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이 제 것이 됐습니다. 허나 AI는 이 과정을 너무 쉽게 생략해줬습니다. 결국 답을 '얻는 데'에는 능숙해졌지만, '답에 도달하는 데'에는 서툴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는 것’과 ‘생각해본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멍청하게도 이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인정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인정한다는 '생각'자체가 귀찮아졌기 때문이죠. 얼마나 바보 같은가요. 그래서 명절 연휴 동안 의도적으로 생성형 AI를 멀리하고 철학책을 펼쳤습니다. 문장은 길었고 개념은 난해했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페이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답답함이 좋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오랜만에 '직접 생각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몽테뉴의 《수상록》도 읽었습니다. 완역은 1,000page가 넘는데 지금 멍청해진 상태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요약본을 읽었습니다. 몽테뉴는 1580년 자신의 글을 묶어 《Les Essais》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Essai’는 시도, 시험, 해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의 글은 진리를 선언하는 글이라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보는 기록이었습니다. 실제로 내용도 그렇습니다. 몽테뉴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Que sais-je?”, 즉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에세이에서는 정답보다 생각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확신했다가 의심하고,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며, 때로는 스스로 모순되기도 합니다. 에세이는 지식을 과시하는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기록하는 글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AI 시대에 에세이는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의 검색과 정리, 요약과 문장의 생산은 갈수록 AI가 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AI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야 할 순간까지 외주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업무의 반복은 AI에게 맡길 수 있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만큼은 직접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글을 ‘시도’라고 불렀습니다. 생각에는 완성된 정답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읽고, 의심하고, 생각하고, 다시 써볼 뿐입니다.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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