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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6시간 전
“This ‘useless class’ will not merely be unemployed — it will be unemployable.”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아예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일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얼마 전 클로드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이를 발판 삼아 별도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무와 병행하다 보니 처음에는 귀찮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듣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업무에서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덕분에 회사에서도 토큰 걱정 없이 최상위 요금제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권유하고 추진해주신 팀장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어떤 교육이나 마찬가지로 교육 ‘자체’가 대단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과정을 준비한 주최 측의 헌신과 강사님의 열정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단순합니다. 교육 하나를 수료한다고 삶이나 업무 방식이 마법처럼 바뀌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건 수강생들이었습니다. 200명 가까운 인원이 신청해 역대 기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고, 전문직 종사자와 현직 교수, 대기업 실무자도 상당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게시글에서 저는 “바람이 제 방향으로 불지 않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교육장에 가보니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는 최신식 모터보트를 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노를 젓는 '괴물'들이 있었습니다. 수료식에서 대화를 나눈 한 변호사 형님은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AI의 도움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보다 어린 한 세무사는 기장처럼 반복적인 업무를 AI로 자동화하고, 자신은 영업과 고객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들은 업무뿐 아니라 ‘자기계발’에도 AI를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AI는 몇 초 만에 답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생성형 AI를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고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연구 결과도 존재하구요. 실제로 아무 생각 없이 답만 받아 적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AI를 잘 쓰는 사람들은 사용법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답을 요구하기보다 질문을 요구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AI가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고, 사용자는 그 질문에 답하면서 스스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정답을 알려줘”가 아니라 “내 생각의 허점을 찾아줘”, “반대 입장에서 질문해줘”, “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한 단계씩 물어봐줘”와 같은 방식입니다. 핵심은 AI가 대신 생각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AI를 이용해 '더 많이 생각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를 배워서 저도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답을 받아볼 때와는 체감이 확연히 다릅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도 꽤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AI를 정답지로 쓰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개인 튜터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사고 훈련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AI는 굉장히 똑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불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AI를 활용해 자신의 생산성과 사고 능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입니다. 더구나 AI 활용에는 단순한 의지뿐 아니라 시간과 비용, 교육 환경, 정보 접근성까지 필요합니다. 자본과 지식, 좋은 환경을 이미 가진 사람이 AI까지 능숙하게 활용하기 시작하면 격차는 단순히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에 머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쪽은 AI를 통해 업무를 자동화하고, 남는 시간으로 공부하고, 다시 그 지식을 이용해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냅니다. 반대편은 AI 때문에 기존 업무의 가치가 떨어지고, 학습할 시간과 기회도 줄어듭니다. 차이는 한 번 벌어지고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누적됩니다. 돈이 시간을 만들고, 시간이 학습을 만들고, 학습이 생산성을 높이고, 높아진 생산성이 다시 더 많은 자원과 기회를 가져옵니다. AI는 이 순환을 더욱 빠르게 돌리는 가속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떠올랐습니다. 하라리는 미래의 불평등이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생명공학과 기술을 이용해 신체와 인지 능력까지 강화한다면, 인류는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나뉘는 데 그치지 않고 ‘강화된 인간’과 ‘강화되지 않은 인간’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저는 AI가 그 시작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뇌에 칩을 심거나 유전자를 개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는 AI를 자신의 두 번째 두뇌처럼 사용합니다. 기억을 보조하고, 정보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코드를 짜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의사결정을 돕고, 공부를 시키고, 자신의 사고 과정까지 점검하게 합니다. 신체는 그대로지만 인지 능력은 이미 외부의 지능과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증강인간’이라는 표현이 꼭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느냐가 아닙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AI를 이용해 자신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의 격차는 어디까지 벌어질까. 그리고 그 격차가 어느 순간 능력의 차이를 넘어 기회의 차이, 소득의 차이, 사회적 영향력의 차이로 굳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AI 시대의 경쟁은 ‘인간 대 AI’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먼저 시작될 경쟁은 AI를 사용하는 인간과 사용하지 않는 인간, AI를 소비하는 인간과 AI로 자신을 증강시키는 인간 사이의 경쟁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호모 데우스》에는 ‘쓸모없는 계급(useless class)’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사람과, 더 이상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AI를 공부하면서 생산성보다 먼저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AI를 잘 쓰면 얼마나 편해질까가 아닙니다. AI를 이용해 스스로를 증강시키는 사람들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는 어느 쪽에 서 있을까. 착취당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협상할 힘이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요조차 없는 존재에게는 협상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호모 데우스》가 던진 가장 섬뜩한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의 문제는 우리가 AI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빼앗기느냐가 아니라, AI 시대에도 우리가 계속 ‘필요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느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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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훈
5시간 전
질문마저 ai를 시킨다는게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점이 마뜩지 않습니다. 자기가 정말 뭘 모르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성찰은 오로지 인간이 스스로 해야 할 일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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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4시간 전
공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신의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만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고도화 될 수록 인문학과 철학의 가치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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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숙
5시간 전
ai활용 능력이 필요한건 알겠는데 이정도까지 해야 돼? 편하려고 이용하는데 왜 더 힘들지? 요즘 이런 생각이 부쩍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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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4시간 전
예. 말씀하신 것처럼 AI가 만능도 아닐 뿐더러 왜곡된 답변도 많이 하죠. 모델이 향상될 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것도 피로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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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수
4시간 전
인간은 진화중인가요 퇴화중인가요? ai를 잘쓰는 직원들이 있는데 저는 그들이 진화했다는 느낌은 못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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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4시간 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진화하겠지만 AI에 모든 걸, 심지어 사고마저도 '의존'한다면 퇴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과물을 내는 것은 AI를 쓰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검토를 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있냐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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