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觀海
3시간 전
푸른 잔디 위로 노랗고 붉은 낙엽이 내려앉습니다. 버킹엄궁 옆 그린 파크(Green Park)의 11월 풍경입니다. 런던에서 3년을 살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계절은 가을이었습니다.
런던의 가을에는 트렌치코트가 참 잘 어울립니다. 조금 쌀쌀한 공기와 낙엽을 밟는 소리, 나무 사이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까지. 사진으로도 아름답지만 저는 그 공기를 직접 느끼며 걷는 시간이 더 좋았습니다.
런던에는 공원이 참 많습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공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왕립공원(The Royal Parks)입니다. 넓은 잔디밭과 오래된 나무, 산책길이 잘 관리되어 있어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좋습니다.
왕립공원은 모두 8곳입니다. 하이드 파크, 켄싱턴 가든스,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린 파크, 리젠트 파크, 그리니치 파크, 리치먼드 파크, 부시 파크입니다.
대부분 왕실의 사냥터나 정원에서 시작된 곳들입니다. 총면적은 약 1,951헥타르이며, 가장 넓은 리치먼드 파크는 하이드 파크의 거의 7배나 됩니다.
가을에 런던을 찾으신다면 꼭 사진으로 남겨보셨으면 하는 장면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린 파크의 가로수 사이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양옆의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고 푸른 잔디 위에는 낙엽이 쌓입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어디서 폰을 들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훨씬 아름답습니다.
두 번째는 리치먼드 파크와 부시 파크의 사슴입니다. 런던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넓은 초원과 숲이 펼쳐집니다. 가을은 사슴들의 번식기라 수컷들의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사진 욕심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는 마세요.
세 번째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펠리컨입니다.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로 걸어갈 때 들르기 좋은 곳입니다. 1664년 러시아 대사가 찰스 2세에게 선물하면서 시작된 전통인데, 올해는 공원에서 처음으로 펠리컨 새끼 네 마리가 부화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하이드 파크의 노을입니다. 해 질 녘 세르펜타인 호수에 햇빛이 길게 비치면 저절로 걸음을 멈추고 폰을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공원들에는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1637년 하이드 파크를 일반 시민에게 개방한 국왕이 바로 찰스 1세입니다.
의회와 내전을 치르다 결국 1649년 처형당한 그 왕입니다. 왕권을 둘러싸고 의회와 대립했던 국왕이 자신의 사냥터는 시민들에게 열어주었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왜 개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 찰스 2세도 프랑스 망명 생활을 마치고 1660년 왕정복고로 돌아와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프랑스식 정원으로 정비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이름은 여전히 왕립공원이지만 지금은 왕이 직접 관리하지 않습니다. 국왕 개인의 재산도 아닙니다. 정부를 대신해 독립 자선법인인 The Royal Parks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왕들이 사냥하던 땅에서 지금은 누구나 무료로 산책을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11월의 런던에 계신다면 이번 주말에는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가까운 왕립공원에 한번 가보세요.
멋진 풍경을 만나면 저절로 폰을 들어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냥 걷게 됩니다. 낙엽 밟는 소리와 차가운 공기,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사진에 다 담기지 않으니까요.
저도 런던에서 찍은 가을 사진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사진 속 풍경보다 그날 공원의 공기입니다.
觀海
제 서재에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남겨두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사행건樂 by 戒盈杯>
https://m.blog.naver.com/realguy81/22446115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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