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0yun_noir
2026.06.14.
《숏스퀴즈 헌터》
리부트 3화. 패닉셀
“돈 빼!”
누군가의 외침이 신호탄이 되었다.
처음엔 한 명이었다.
그다음엔 셋.
그리고 열 명.
순식간에 사람들이 민간 제휴 부스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환불해 주세요!”
“출금 먼저!”
“서버 왜 안 돼!”
“방금 가입했는데 취소해 달라고요!”
비명과 욕설이 로비 안을 가득 채웠다.
조금 전까지 인생 역전을 외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만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익숙했다.
너무 익숙했다.
주식도 늘 이랬다.
오를 때는 모두가 천재가 된다.
내릴 때는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상담 직원은 창구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여러분,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닙니다!”
“현재 확인 중입니다!”
“절차에 따라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절차.
확인.
처리.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들이었다.
특히 자기 돈이 걸렸을 때는.
“절차고 뭐고 돈 내놔!”
누군가 책자를 집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책자 위로 발들이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금덩이처럼 보이던 상품 설명서가.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전광판은 계속 붉게 깜빡였다.
⸻
《청룡 길드 대표 잠적 의혹 확산》
《대한헌터투자길드 환매 요청 폭주》
《청룡 길드 연계 특별 펀드 거래 제한 검토》
《기초자산 일부 매도 주문 급증》
⸻
사람들은 더 크게 흔들렸다.
“청룡 들어간 거 다 빼!”
“연계 상품 전부 팔아!”
“지금이라도 던져!”
“휴지 되기 전에 팔라고!”
단어들이 뒤섞였다.
청룡 길드.
대한헌터투자길드.
연계 특별 펀드.
잔여 수익권.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구분할 여유가 없었다.
공포가 오면 이름이 길어질수록 먼저 버린다.
나는 상태창을 바라봤다.
⸻
《대한헌터투자길드》
표면 가치 : 신규 헌터 투자 플랫폼
실제 가치 : 신뢰 기반 유동성 착각
붕괴 진행률 : 87%
→ 94%
괴리율 : 측정 상승 중
⸻
대한헌터투자길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판매자가 신뢰를 잃었다.
환매 요청이 몰렸다.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빼려고 했다.
이건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망하는 건 대한헌터투자길드다.
그런데 던져지는 건 그보다 많았다.
청룡 길드 연계 특별 펀드.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청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것.
사람들은 전부 같은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었다.
그때 로비 한쪽에 떠 있던 민간 거래창이 눈에 들어왔다.
환매 창구는 사실상 멈췄다.
하지만 보유자 간 긴급 매도창은 아직 열려 있었다.
대한헌터투자길드는 환매를 막으려 했지만.
수익권 장외 이전까지 막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었다.
⸻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현재 매도가 : 12,000원
좌당 청산 추정 가치 : 최대 287,000원
회수 가능성 : 불확실
회수 기간 : 측정 불가
괴리율 : -95.8%
※ 관측 불완전
⸻
“…어?”
나는 눈을 비볐다.
다시 봤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가격은 낮고.
추정 가치는 높다.
물론 최대치였다.
확정값이 아니었다.
실제로 회수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12,000원은.
아무리 봐도 과했다.
대한헌터투자길드는 망한다.
그건 맞다.
하지만 대한헌터투자길드가 망한다고 청룡 길드가 이미 벌어둔 잔여 토벌 수익이 곧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대표가 도망갔다고.
정산 대기 중인 마석이 증발하는 것도 아니다.
계약된 잔여 수익권이 바로 0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망하는 건 판매 플랫폼이다.
던져지는 건 그 안에 묶여 있던 기초자산이다.
사람들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공포가 그 구분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12,000원.
11,000원.
10,000원.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시세창을 바라봤다.
공포가 커질수록.
괴리는 더 벌어진다.
그건 투자판에서 수도 없이 봤다.
그때 가격이 다시 움직였다.
9,000원.
⸻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현재 매도가 : 9,000원
좌당 청산 추정 가치 : 최대 287,000원
회수 가능성 : 불확실
거래 제한 위험 : 상승 중
괴리율 : -96.8%
※ 청산 추정 가치는 변동 가능
※ 회수 실패 시 손실 가능
⸻
“…미쳤네.”
진짜 미친 건 가격이 아니었다.
내 손이었다.
사고 싶어졌다.
방금까지 사람들은 돈을 빼려고 서로를 밀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실액을 확인하며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직원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한복판에서 매수 버튼을 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숫자는 선명했다.
공포.
투매.
괴리.
그리고.
기회.
검 든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거래창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밀리는 사람.
우는 사람.
휴대폰을 움켜쥔 사람.
아직도 가입 취소를 외치는 사람들.
남자는 낮게 말했다.
“다들 도망치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왜 반대로 보고 있냐?”
나는 시세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부 같은 걸 던지고 있으니까요.”
“뭐?”
“망한 것과 아직 안 망한 것을 같이 던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잠시 나를 보았다.
“그게 보여?”
“조금요.”
“조금?”
“정확하진 않습니다.”
나는 상태창 아래쪽의 작은 문구를 봤다.
⸻
※ 관측 불완전
※ 일부 항목 추정치
※ 회수 실패 시 원금 손실 가능
⸻
정답지는 아니다.
미래 예언도 아니다.
이 숫자는 그저 말하고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너무 빨리.
한꺼번에 던지고 있다고.
나는 민간 거래창 앞으로 걸어갔다.
창구 직원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환매 요청서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장외 거래 단말기를 붙잡고 있었다.
“출금이십니까?”
“아니요.”
“그러면요?”
나는 거래창을 가리켰다.
“청룡 잔여 수익권 사려고요.”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요?”
“예.”
“다들 파는데요?”
“그래서요.”
직원은 순간 말을 잃었다.
나는 협회 임시 지갑을 열었다.
⸻
《협회 임시 지갑》
잔액 : 270,000원
⸻
현재 가진 전 재산.
27만 원.
고시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숫자.
초보자 던전에서 죽을 뻔하고 다시 손에 쥔 숫자.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사라질 숫자.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단말기를 조작했다.
“현재 매도가 기준으로 30좌 가능합니다.”
“수수료는요?”
“긴급 매도 물량은 판매자가 수수료 부담입니다.”
“좋네요.”
“좋은 상황은 아닌데요.”
“그러네요.”
직원은 나를 빤히 봤다.
그리고 화면 아래에 뜬 고지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말투는 친절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는 사람의 자동응답에 가까웠다.
“거래 제한 가능성 있습니다.”
“환매 지연 가능성 있습니다.”
“기초자산 청산 가치가 실제 회수 금액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법적 회수 절차가 지연되거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말은 믿을 만하네요.”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원금 보호 구조를 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을 읽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이 더 정직했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매수하시겠습니까?”
주변에서는 아직도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내 돈 어디 갔어!”
“보호 구조라며!”
“환매해!”
“서버 열어!”
나는 눈앞의 숫자를 다시 봤다.
⸻
현재 매도가 : 9,000원
좌당 청산 추정 가치 : 최대 287,000원
괴리율 : -96.8%
회수 가능성 : 불확실
⸻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청산이 실제로 될지도 모른다.
거래 제한이 걸릴 수도 있다.
내 27만 원이 그대로 묶일 수도 있다.
아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숫자에 끌려가는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늘 그랬다.
누가 오른다 하면 흔들렸고.
누가 끝났다 하면 팔고 싶었다.
누가 기회라 하면 사고 싶었다.
늘 남의 말에 끌려다녔다.
이번엔 달랐다.
숫자가 왜 틀어졌는지 보였다.
사람들이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보였다.
패닉이 무엇을 한꺼번에 던지고 있는지 보였다.
나는 짧게 말했다.
“30좌.”
직원이 다시 물었다.
“30좌 전부요?”
“예.”
나는 미소 지었다.
“전부 주세요.”
잠시 후.
거래가 체결되었다.
⸻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매수 완료
수량 : 30좌
평균 단가 : 9,000원
총 투자금 : 270,000원
⸻
전 재산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다른 숫자로 바뀌었다.
잔고 27만 원이.
청룡 잔여 수익권 30좌가 되었다.
그 순간.
전광판이 크게 흔들렸다.
⸻
《긴급 공지》
청룡 길드 연계 특별 펀드 거래 제한 검토
기초자산 신규 거래 일시 제한 예정
환매 처리 지연 발생
⸻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누군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던졌다.
누군가는 창구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는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봤다.
전 재산은 묶였다.
어쩌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이 차분했다.
눈앞에는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하는 숫자가 떠 있었다.
⸻
《최대 청산 회수 시 예상 수익률》
+3,088%
⸻
그 아래.
작은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
※ 회수 실패 시 손실률 : -100%
※ 예상 수익률은 최대 추정치 기준
⸻
“…하.”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미쳤네.”
웃긴 건.
그 미친 구조가.
너무 익숙했다는 것이다.
상승하면 희망을 판다.
하락하면 공포를 판다.
패닉이 오면 사람들은 전부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
그때.
괴리가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인 자리.
나는 그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검 든 남자가 내 휴대폰 화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지금 샀냐?”
“예.”
“이 상황에서?”
“예.”
“미쳤냐?”
나는 잠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마도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다들 도망치는데 혼자 들어간다고?”
나는 창구 쪽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었다.
직원들은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고.
전광판은 계속 붉게 깜빡였다.
나는 말했다.
“다들 도망칠 때.”
“…?”
“가끔 바닥에 떨어지는 게 있습니다.”
남자는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너 진짜 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아직 몰랐다.
그때 상태창이 떠올랐다.
⸻
《괴리 관측 완료》
대상 :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유형 : 패닉셀형 저평가
기록하시겠습니까?
YES / NO
⸻
나는 YES를 눌렀다.
상태창이 조용히 빛났다.
⸻
《관측 기록 생성》
청룡 길드 잔여 수익권
왜곡 원인 : 플랫폼 리스크와 기초자산 리스크 혼동 추정
가격 왜곡 : 과도한 투매
위험 신호 : 거래 제한 / 환매 지연 / 회수 불확실성
기회 신호 : 청산 가치 잔존 가능성 / 공포 과잉 / 매도 쏠림
※ 일부 항목은 추후 검증 필요
⸻
나는 그 문장들을 읽었다.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뜻은 간단했다.
사람들은 전부 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부 망한 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차이가 돈이 된다.
그리고 그 차이가.
괴리였다.
전광판은 마침내 멈췄다.
⸻
《청룡 길드 연계 특별 펀드》
거래 제한 발동
기초자산 신규 거래 중지
⸻
거래가 막혔다.
내 27만 원도 막혔다.
사람들의 비명은 더 커졌다.
검 든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이제 어쩔 건데?”
나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기다려야죠.”
“얼마나?”
“모릅니다.”
“그게 투자냐?”
나는 피식 웃었다.
“보통은.”
잠시 말을 멈췄다.
“기도라고 하죠.”
남자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무너져가는 민간 제휴 부스를 바라봤다.
이 세계는 이상했다.
몬스터가 있고.
던전이 있고.
상태창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똑같았다.
공포에 팔고.
희망에 사고.
모르면 믿고.
믿으면 늦게 도망친다.
나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잔고는 0원.
보유 수익권은 거래 제한.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었다.
수익도.
손실도.
회수도.
파산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괴리는.
사는 순간보다.
기다리는 순간부터 사람을 물어뜯는다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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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괴리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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