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상범
2026.04.08.
심층동인에서 본 미국의 이란 공격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후 국제사회 움직임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남진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영미의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났을 당시 영, 프랑스, 합스부르크, 프러시아의 인구를 다합쳐야 러시아의 인구와 비등한 수준이었다.
유럽대륙에서의 세력균형과 그외 지역에서 제해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영국입장에서 러시아를 막는 것은 외교안보정책의 일순위 였다. 영국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그리고 프랑스의 부활을 억제하기 위해 독일 통일을 지원하였지만 너무 지나쳐서 2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어야 했다.
2차대전후 영국의 바톤을 이어 받은 미국은 소련을 유라시아의 심장부에 가두기 위해 소련의 주변부를 미군기지로 둘러쌓는 봉쇄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소련을 수십년 동안 봉쇄하였고 봉쇄정책을 창안한 조기 케닌의 예언대로 소련은 스스로 무너졌다.
소련이 붕괴한 뒤 유라시아 주변부에 설치된 미군기지는 쓸모없어졌고, 미국에게는 미군기지를 철수하고 난 뒤에 세계의 패권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는 과제가 떨어졌다.
미국이 내놓은 해법은 제해권을 장악한 뒤 해군함정에서 군사력을 대륙으로 투사한다는 것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주요도시와 산업시설을 바다와 가까운 장소에 두고 있으며 바다를 이용하여 교역하고 있다. 미국이 해군력으로 바다를 장악하고 분쟁이 생길 경우 군함에서 군사력을 투사하면 유라시아 국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전략에는 한가지 단점이 있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도달하기 못하는 심장부 깊숙히 중국과 러시아가 철도와 도로,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면 바다에서 타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일대일로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이다
조지 부시 주니어는 또 다른 관점에서 세계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1세기에도 인류문명은 석유를 기반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석유를 장악하면 세계의 패권을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유라시아 심장부를 무력화시킬 급소도 역시 석유라고 보았다.
카스피해 유전은 세계최초의 상업유전이었고, 조사하기만 하면 대규모 유전과 가스전이 터져나오는 자원의 보고이다. 그러나 카스피해는 러시아의 앞마당이나 다름없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미국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없었다. 부시는 중동과 카스피해의 석유를 같이 확보하면 미국은 21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은 WMD나 후세인 타도 때문이 아니라 카스피해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기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시는 카스피해의 석유와 가스를 서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방측으로 넘어가면 러시아는 방어선이 서부와 남부로 나뉘어지게 되어 방어하기 대단히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만다. 미국과 경쟁할 수 없으며 종국적으로 러시아는 세계적인 강대국에서 유럽의 일개강국으로 지위가 격하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후 오바바 대통령이 취임하고 미국내에서 셰일가스가 나오면서 부시의 전략은 폐기되었다.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한 것은 부시의 정책을 부활한 것이다. 이라크를 확보한 가운데 카스피해에 접해있는 이란을 굴복시켜 이란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거나 그게 안되더라도 이라크 동북부나 이란 북부에 안전하게 미 공군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면 중동과 카스피해는 미국의 손아귀 안에 들어오는 것이 이번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1992년 미 해군성이 발표한 from the sea 보고서 안에 실려있는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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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댓글

심미연
2026.04.08.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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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픽
2026.04.08.
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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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훈
2026.04.08.
수준높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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