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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5일 전
“Computers are useless. They can only give you answers.” “컴퓨터는 쓸모없다. 그저 답만 줄 수 있을 뿐이니까.” — 파블로 피카소 앞으로 ‘직접 쓴 글’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이전에 작성된 글과 책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굳이 시점을 나눈다면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하고, 2023년부터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기 이전의 글들입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이 직접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것을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때는 지나치게 정돈된 문장이나 '**'같이 특정한 흔적 같은 것을 보고 “AI가 쓴 글 같다”고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징은 작성자가 조금만 수정하면 얼마든지 사라집니다. 앞으로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을 문체만으로 구별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AI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마크다운 수정처럼 AI가 만든 초안을 사람이 다시 읽고 고치는 과정은 최소한의 성의는 더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AI에게 맡기고 무엇을 자신이 직접 쓸 것인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가 대중화되기 전에 쓰인 글은 나름의 가치를 갖습니다. 적어도 그 글을 쓰기 위해 누군가는 직접 자료를 찾고,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고쳐가며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전제하고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글을 잘 쓰는 능력’만큼이나 ‘어떤 글을 직접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데이터의 정합성을 확인하고 대량의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업무에서는 인간이 AI의 속도와 처리량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나스닥과 S&P까지는 갈 것도 없습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만 해도 수천 곳입니다. 이 기업들이 매 분기 쏟아내는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 각종 공시자료를 사람이 모두 읽고 분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능력도, 생각도 없었습니다. 미국 기업 하나 실적 분석하는데 반나절 이상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AI를 쓰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바이브 코딩을 통해 기업의 공시자료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필요한 숫자를 추출하고, 기업별 변화를 비교하고, 일정한 형식의 분석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릴 일을 컴퓨터는 쉬지 않고 반복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진성 문과생인 제가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굳이 인간이 직접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AI에게 위임해야 하는 글에 가깝습니다. 정보를 빠르게 모으고, 정리하고, 비교해서 생산하는 글쓰기 시장에서는 이미 사람이 AI와 생산량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실함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AI 여러 개를 동시에 돌리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글쓰기의 일부 영역이 ‘물량전’의 세계로 들어간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저는 어떤 글을 직접 써야 할까요. 얼마 전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2019년, 대학생 시절에 작성한 기행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문장은 투박했습니다. 표현도 세련되지 않았고,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가 있었나 싶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지금이라면 몇 문장은 지우고, 문단의 순서를 바꾸고, 표현을 훨씬 매끄럽게 다듬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글을 읽는 동안 여행했던 장소보다 오히려 그때의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보고 신기해했는지, 무엇을 고민했는지, 당시에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가 서툰 문장 사이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당장 클로드나 제미나이에게 같은 주제의 기행문을 써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더 유려하고, 더 논리적이고, 더 보기 좋은 글이 몇 초 만에 나올 것입니다. 단언컨대 저의 졸문따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AI는 저 대신 여행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왜 별것 아닌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고민을 품고 여행을 떠났는지는 대신 경험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인간이 직접 써야 할 글은 바로 그런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를 요약하는 글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한 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사실을 정리하는 글보다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담은 글. 완벽하게 정돈된 문장보다 고민하고 망설였던 흔적이 남아 있는 글.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더 커질 것입니다. 분석과 정리는 AI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수천 개의 기업을 비교하고, 수만 페이지의 보고서를 읽고, 숫자의 이상치를 찾아내는 일은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경험하고, 선택하고, 판단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기록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글을 쓸 때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AI가 대신 써도 되는 글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써야만 하는 글인가.” AI가 대신 써도 되는 글이라면 기꺼이 맡길 것입니다. 오히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맡기는 능력이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 고민과 판단이 들어가는 글이라면 조금 서툴더라도 직접 써보고 싶습니다. 2019년의 제 기행문처럼 말입니다. 그 글의 투박함은 당시에는 부족함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의 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완벽한' 글은 점점 흔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직접 고민하고 경험해서 쓴 글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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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하마
5일 전
https://blog.naver.com/timshel924/221630804261 부끄러운 글이지만 기행문 원본 링크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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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픽
5일 전
좋은 글이네요.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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