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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026.07.10.
통념과 다르게 고대 기독교는 의문에 열려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의문을 품을 줄 아는 지성을 타고나기 마련인데, 고대 유럽과 근동은 여러 학파, 종파가 경쟁하는 곳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사람들의 의문에 적절하게 답하지 못하면 외면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대 기독교 교부들은 신학을 발전시켰다. 기독교가 왜 합리적인지, 왜 다른 신앙보다 기독교가 더 나은지에 대해 꾸준히 논의했다. 기독교가 이런 지적 노력을 상당히 내려놓고 힘으로 신앙을 강요하게 된 것은 유럽 세계의 독점 종교로 부상했을 때부터다. 현대에는 고대보다 더 다양하고 자극적인 주장들이 경쟁한다. 자연히 의심쟁이들을 설득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그런 조건 속에서 인권 근본주의자는 의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누군가가 왜 모두가 더 평등해져야 하는지, 왜 길고 모순적인 인권 목록을 기억하고 보호해야 하는지 물으면, 인권 근본주의자는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분명 누군가는 지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권 교부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다수는 인권에 대한 의문을 혐오와 차별의 출발선처럼 여긴다. 우리 안에 혐오주의와 차별주의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인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식이다. 과거에는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정당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인권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증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사실을, 적지 않은 학자가 직시했다. 하지만 현대에 인권을 무기 삼는 사람들은 고대 기독교 교부가 아니라 중세 말기 이단심문관처럼 행세하고 있다. 감히 인권을 의심하는 자를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로 몰아서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이렇게 인권, 혐오, 차별은 또 다른 반지성주의로 전락했다. 언제나, 주장하는 쪽이 의문에 답해야 한다. 치열한 신념 경쟁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의문조차 다룰 수 없는 신념을 그냥 살려두지 않는다. 사람은 의문을 타고나지, 인권에 대한 충성심을 타고나지 않는다. 곳곳에서 인권이 후퇴한다면, 고대 신학자보다 게으른 현대 인권 근본주의자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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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배
2026.07.11.
와, 어려운 글이지만 납득되고 공감이 됩니다. 어쩌다가 이 사회가 '내가 아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과, 진정한 지성으로 서로를 따져보는(감정적으로 날세우며 따지는 것 말고) 태도가 사라지고 무조건 내 말이 맞고, 그것에 반하는 자는 모두 나쁘다는 식의 극단적 대치구조로만 치닫는지 저도 안타깝게 여깁니다. 특히 소위 애국기독교인들은 비이성적 극우주의자가 되어가고 있고, 그 대척지점에 있는 극단적 인권옹호론자들은 극좌의 자리에서 무조건 피해의식만 가지고 '평등이 아니면 모든 것은 악'이라는 식으로 싸우자고 나오니.... 저도 요즘 현실을 보면 성경에 말한대로 악이 관영해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ㅜㅜ 안타깝습니다. 모두가 건설적 논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엔 서로의 영적배경과 지적이해도가 너무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성숙하고 겸손한 태도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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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026.07.11.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한데, 많은 사람이 닫혀 있죠 ㅠㅜ 말씀하신 것처럼 좌우가 모두 극단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위험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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