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7.06.
적지 않은 사람이 엄벌보다 교육을 지지해 왔다. 엄벌주의가 행동을 고치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나쁜 행동에는 사회적 원인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타고난 유전자나 자라난 환경 때문에 나쁜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다면, 순전히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주로 진보주의자가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정확히는, 피고인에 따라 다르다. 20대 남자가 시위 과정에서 공공기물을 파손하면 엄벌해야 하지만, 동덕여대 학생, 강성 노동조합원, 특정 장애인 단체가 비슷한 행동을 하면 관대해져야 한다. 진보가 6.25 전쟁을 미국의 기획 또는 북침이라 부르는 것은 표현의 자유지만, 보수가 5.18 광주 학살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역사 왜곡이고 엄벌 대상이다. 사실상 같은 잘못을 두고 다른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같은 행동이라도 다르게 대우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장군의 이토 저격은 독립운동이고, 일본 공사의 명성황후 시해는 주권 침해이자 테러다. 그러나 진보 활동가들이 이런 비유를 꺼내드는 것은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자신들이 민족 독립처럼 고귀한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공자산을 훼손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정확히 같은 논리로, 극우는 12.12 군사반란과 12.3 계엄 내란을 옹호하고 있지 않은가.
둘 중 누가 옳은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두고 진보는 합리적이고 공적인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신념만 사회적 가치로 격상시키고 있다. 공적인 논의가 없다면, 누구도 자기 주장이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인권이든 평등이든 마찬가지다. 그저 모두가 자신의 신념이 가치 있다고 단정한 채 서로 갈등하게 될 뿐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혼란상이다.
진보 스스로 공정한 규범의 기본을 잊고 정치 부족주의에만 빠져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같은 잘못에는 같은 처벌이 필요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라야 한다. 이는 국내외 여러 진보주의자들이 달성하려한 목표였다. 어찌보면, 세계 인권 선언이나 약자우선주의보다 더 오래되었고 근본적인 목표다. 기성 진보는 그 근본을 잊었다.
이 글을 읽고 '그럼 보수는?' 이라는 생각부터 든다면, 당신이 바로 정치 부족주의에 빠진 사람이다. 이쪽에 대한 비판이 저쪽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도 '같은 잘못'이라고 명시해 뒀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 보수의 근본 없는 시장주의와 비간섭주의를 줄곧 비판해 왔다. 정치 부족주의 역시 진보와 보수 양쪽의 문제라고 여긴다.
다만 지금은 자칭 민주진보 세력이 큰 권력을 잘못 행사하고 있고, 진보주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라서 기성 진보를 주로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시간과 주의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모두가 모든 문제에 똑같이 반응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같은 행동을 두고 다른 처벌을 요구하는 모순을 피할 수는 있다.
진보가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그런 모순을 보수보다 적게 저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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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026.07.06.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학술 공동체 안에서 여러 학자가 질서 있게 토론하고 경쟁하며 지식을 발견한다. 언론인과 예술인이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새 지식을 전파한다. 마지막으로 국민 전반을 대의하는 정부가 지식에 기반해서 서로의 이익을 조율하며 법과 정책을 만든다. 이런 과정을 나는 '공적인 논의'라고 부른다. 특정 시민단체나 개인이 멋대로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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