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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로
2시간 전
2026년 1월, 국제 금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사상 최고치를 그 순간이 바로 인류가 금을 이용한지 5,000년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물건을 돈으로 써왔습니다. 개껍데기, 소금, 가축, 은, 구리, 그리고 지폐까지. 이젠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명목화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수 많은 수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있으니 바로 '금'입니다. 닉슨의 금태환 중단 선언으로 금과의 절연을 선언한지도 50년이 넘었지만, 금의 가치는 갈수록 오르고 있으며 심지어 각국 중앙은행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사 모으고 있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금의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이번 3부작에서 그 답을 찾아가 보려합니다. 출발은 바로 금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1. 3,300년째 빛나는 마스크가 보여주는 금의 가치 1922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이 열렸을 때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3,300년 전에 만들어진 황금 마스크였습니다. 놀라운 건 그 광택이 마치 어제 세공을 마친 듯 그대로였다는 점입니다. 같은 무덤에서 나온 철제 단검은 무덤을 개방하자마자 부식이 진행되었고, 다른 유적의 은(Silver) 유물들은 검게 변색된 채 발굴되곤 합니다. 그런데 금만은 3,300년 동안 변색되지도 부식되지도 않은 채 제작 당시의 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불변성'이 금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금은 화학적으로 귀금속, 그중에서도 '반응성'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금속입니다. 우리 주변의 금속들의 일반적인 속성을 떠올려 보자구요. - 철은 산소와 만나면 녹슮 - 은은 공기 중 황 성분과 만나면 검게 변색됨(은수저가 시커멓게 변하는 이유) - 구리는 습기에 푸른 녹이 슮 금은 이 셋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산소와 반응하지 않으니 녹슬지 않고, 황에도 반응하지 않으니 변색되지 않죠. 물과 습기, 바닷물의 소금기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수백 년 전 침몰한 배에서 건져 올린 금화가 방금 주조한 것처럼 반짝이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입니다. 웬만한 산과 염기에도 끄떡없어서, 금을 녹이려면 질산과 염산을 섞은 특수한 용액 정도가 필요합니다. 옛사람들은 이 용액에 왕수(王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금속의 왕을 녹이는 물'이라는 뜻이죠. 왕수를 이용해야만 녹일 수 있다는 말에서 역사가 금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몸에 지닐 수 있는 장신구로 가공 가능한 수준의 유연성 또한 금에 가치를 더해줬습니다. 금의 진짜 매력은 화학적으로는 불변인데 물리적으로는 더없이 유연하다는 양면성에 있습니다. 금은 모든 금속 중 연성(늘어나는 성질)과 전성(펴지는 성질)이 가장 뛰어나서, 1g의 금을 3km가 넘는 실로 뽑아낼 수 있고, 두드려서 빛이 비칠 만큼 얇은 금박으로 펼 수도 있습니다. 녹는점도 약 1,064°C는 고대의 화덕 기술로도 충분히 녹여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죠. ⇒ 썩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물질로. 고대의 장인들에게 금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이 귀중한 재료였습니다. 고대인들은 수천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먹을 수도 없고, 이자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이 금속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물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금을 '신들의 살'이라 부르며 영원의 상징으로 삼은 것도, 죽은 왕의 얼굴을 하필 금으로 덮은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사람은 죽고 제국은 무너져도 금은 그대로 남아 영원히 보존될 테니까요. 역사적으로 인간이 금에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은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금은 변치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2. 국가가 화폐의 순도를 보증 — 주화의 탄생 금이 화폐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된 결정적 계기는 기원전 7세기,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에 있던 리디아 왕국이 금을 화폐로 쓰기 시작했던 때부터였습니다. 리디아인들은 강에서 채취한 일렉트럼(금과 은의 천연 합금) 덩어리에 사자 문양을 찍어 세계 최초의 금속 주화를 만들었죠. 문양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 싶지만, 이건 화폐 역사의 혁명이었습니다. 주화 이전에는 거래할 때마다 금덩이의 무게를 달고 순도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화폐를 믿지 못하면, 그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죠. 하지만 리디아 왕국의 사자 도장은 이렇게 선언한 겁니다. "일렉트럼의 무게와 순도는 왕이 보증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거래할 때마다 반복되던 검증 비용을 국가가 한 번에 대신 치러준 것입니다. 돈의 핵심이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신뢰라는 사실이 여기서 처음 드러나게됩니다. 리디아의 화폐의 발명은 순식간에 그리스와 페르시아로 퍼졌고, 이후 2,500년간 "돈 = 금속 조각에 찍힌 국가의 보증"이라는 공식이 세계를 지배하게되고, 금화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3. 금을 너무 뿌린 왕 — 만사 무사, 1324년 그런데 금이라고 다가 아닙니다. 금의 가치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걸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있는데요. 바로 말리 제국의 황제 만사 무사가 일으킨 인플레이션입니다. 14세기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황제 만사 무사는 아프리카의 황금왕으로 불릴 정도로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당시 세계의 모든 금은 말리에서 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말리에는 금이 넘쳐났습니다. 1324년 그가 메카 순례에 나섰을 때, 수만 명의 행렬이 낙타에 금을 싣고 이동하며 지나는 도시마다 금을 선물하고 뿌렸습니다. 문제는 경유지였던 카이로에서 터졌습니다. 만사무사가 뿌린 금으로 시중에 금이 쏟아지자 카이로의 금 가치가 폭락한 겁니다. 당시 금이 화폐로 쓰였으니, 화폐가치 폭락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겠죠. 당대 기록은 이 물가 폭등의 충격에서 회복되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전합니다. 한 사람의 씀씀이가 대도시의 물가를 뒤흔든, 역사상 유일한 사례로 꼽힙니다. 아무리 금이라도 공급이 갑자기 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금이 5,000년간 가치를 지킨 건 금이어서가 아니라, 금의 공급이 늘 느리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희소성' 이야기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4. 천재가 만든 금본위제 — 뉴턴, 1717년 만유인력의 아이작 뉴턴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과 업적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왕립 조폐국장을 30년 가까이 지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럽은 금화와 은화를 함께 쓰는 복본위제였는데, 1717년 뉴턴은 금과 은의 공식 교환 비율을 재설정하면서 금의 가치를 주변국보다 후하게 매기는 비율을 택합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영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는 금을 들여오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은을 해외로 빼돌렸습니다. 은화는 유통망에서 사라지고 영국은 본의 아니게 금만 쓰는 나라, 즉 사실상의 금본위제 국가가 됩니다. 이후 대영제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각국이 영국 표준을 따랐고, 19세기 후반 금본위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습니다. 뉴턴이라는 천재의 비율 설정 하나가 200년 세계 화폐질서의 방향을 튼 셈입니다. (금과 은의 이 미묘한 관계는 2부에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5. 국가의 금 압수 — 루스벨트, 1933년 금이 돈의 왕좌에 있는 동안, 국가와 금의 관계는 겉보기만큼 평화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금본위제는 명목화폐의 가치를 지켜주지만, 그 금본위제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습니다. 지폐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줘야 하니, 보유한 금만큼만 돈을 발행할 수 있죠. 평시에는 금본위제의 족쇄가 물가를 지켜주는 미덕이지만, 대공황 같은 위기에는 경기 부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경기 부양이란, 정부가 돈을 풀어서 인위적으로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인데, 화폐를 찍을때 발행량 만큼의 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야만 하니 금본위제하에서는 경기부양 수단이 제한적이게 되는 것입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물가는 폭락하고 은행은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지폐와 은행을 못 믿게 된 사람들은 예금을 빼서 금으로 바꿔 장롱에 쌓기 시작했죠.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지폐를 금으로 태환해 사재기함 -은행과 연준의 금 보유량이 줄어듦 -금본위제에서는 금 보유량이 곧 돈 발행 한도 → 돈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줄여야 함 -시중에 돈이 마르니 물가는 더 떨어지고 불황은 깊어짐 → 사람들은 더 금으로 도피 경기를 살리려면 돈을 풀어야 하는데, 돈을 풀려면 금이 필요하고, 그 금은 국민들 장롱 속에 있었던 겁니다. 1933년, 취임 직후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꺼낸 해법이 바로 행정명령 6102호였습니다. 미국 민간의 금 보유를 사실상 금지하고, 국민들이 보유한 금을 온스당 20.67달러에 정부에 넘기게 한 것입니다. 장롱 속 금을 국고로 옮겨 태환 요구를 원천 차단하고 돈을 찍을 실탄을 확보한 다음, 이듬해 정부는 금 가격을 온스당 35달러로 다시 고정했습니다. 금 온스당 찍을 수 있는 달러를 늘렸다는건 달러라는 지폐의 가치를 그만큼 절하시킨 것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달러의 가치를 금 대비 40% 넘게 깎아내려, 그만큼 돈을 더 풀고 물가를 끌어올릴 여유를 만듭니다. 이 사건이 말해주는 건 국가가 금지하고 압수해야 할 만큼, 금은 국가 화폐와 경쟁하는 강력한 돈이었다는 것입니다. 금본위제에서도 사람들이 믿는건 국가가 태환을 보증한 화폐가 아닌 진짜 돈인 금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정부가 하룻밤에 지폐의 가치를 절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은 더욱더 금을 놓지 못하기 되었습니다. 6. 금과 화폐의 절연 — 닉슨의 금태환 중단, 1971년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브레턴우즈 체제로 굴러갔습니다. 달러만 금과 연결하고(금 1온스 = 35달러), 나머지 국가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베트남 전쟁과 재정지출로 달러를 계속 찍어내자, 각국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가진 금보다 달러가 훨씬 많은 것 아닌가?" 프랑스를 비롯한 나라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며 줄을 서자,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TV 연설로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합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모든 돈이 금과의 연결을 잃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쓰는 돈은 오로지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만으로 서 있는 법정화폐(fiat money)가 됐죠. 그리고 족쇄가 풀린 금 가격은 온스당 35달러에서 출발해, 지금 4,000달러가 넘는 수준까지 와 있습니다. 7. "금의 시대는 끝났다"던 사람들, 그리고 IMF하의 한국 금 태환이 끝나자 "이제 금은 쓸모없는 유물"이라는 진단이 팽배했습니다. 그 정점이 1999년 영국입니다. 당시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은 국가 보유 금의 절반이 넘는 수백 톤을 매각하기로 했고, 하필 그 시점의 금값은 온스당 300달러 안팎 — 20년래 바닥권이었습니다. 이후 금값이 10배 넘게 오르면서 이 매각은 '브라운 바텀(Brown's Bottom)', 즉 '브라운이 찍은 바닥'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사에 박제됐습니다. 선진국 정부조차 금의 미래를 완전히 오판할 수 있다는 사례로요.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의 한국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이죠. 국민들이 장롱 속 돌반지와 목걸이를 들고 나와 모은 금이 약 227톤이었습니다. 이 금은 수출돼 달러가 됐고, 외채 상환에 보태졌습니다.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마지막에 외화로 바꿀 수 있었던 민간 자산이 주식도 부동산도 아닌 금이었다는 사실 — 한국인들은 금이 '최후의 돈'이라는 걸 몸소 경험한 사례였습니다. 마치며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류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을 숭배했고, 국가는 금에 도장을 찍어 돈으로 만들었고(리디아), 때로는 압수했고(루즈벨트), 결국 1971년 공식적으로 결별을 선언(닉슨)했습니다. 그로부터 55년,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을 버렸다던 각국 중앙은행의 금고에 금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쌓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먼저 금이라는 물질 자체를 더 자세히 뜯어봐야 합니다. 인류가 5,000년간 캔 금을 전부 녹이면 놀랍게도 고작 한 변이 약 22미터짜리 정육면체 하나에 다 들어간다는 놀라운 희소성과 함께, 2부에사는 세상 모든 물질 중에 왜 하필 금이 '가치저장의 왕'이 됐는지, 그 조건들을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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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1시간 전
글이 긴데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금이란게 참 요상한 물건같은데 화학적 특성까지 알려주셔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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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로
54분 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그림을 중간에 넣어드리면 좀 더 재미있게 보셨을텐데 이코에서는 좀 제한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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