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0yun_noir
2026.06.13.
《숏스퀴즈 헌터》
리부트 1화. 차트가 보였다
사람들은 몬스터를 사냥해 돈을 벌었다.
나는 헌터들을 사냥해서 돈을 벌었다.
정확히 말하면.
헌터들이 돈을 잃는 곳에서 돈을 벌었다.
⸻
“야! 피해!”
귓가를 찢는 비명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눈앞에는 고블린 세 마리가 녹슨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
숲속에서 더 많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휙!
칼날이 머리카락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뭐야…”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보는 숲.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 보는 상태창.
⸻
《초보자 던전》
입장 인원 : 50명
생존자 : 31명
잔여 시간 : 00:28:13
⸻
“…씨발.”
꿈이 아니었다.
마지막 기억은 분명했다.
고시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주식 계좌.
빨간 숫자보다 파란 숫자가 더 많던 화면.
그리고 마지막 잔고.
⸻
잔고 : 270,000원
⸻
그 숫자를 보며 욕을 삼켰다.
그러다 잠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던전이었다.
“멍 때리지 마!”
누군가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검을 든 남자였다.
젊어 보였지만, 눈은 젊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용감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익숙해 보였다.
남아 있는 게 몸에 밴 사람처럼.
“죽고 싶냐?”
“아니.”
“그럼 움직여.”
남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고블린 하나의 목을 베어냈다.
퍼억!
고블린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이상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
《고블린 전사》
위험도 : F
체력 : 100%
공격성 과열 : 82%
공매도 비율로 환산 중…
강제청산 확률 : 91%
괴리율 : 37%
⸻
“…응?”
나는 눈을 비볐다.
다시 봤다.
똑같았다.
공격성 과열.
공매도 비율로 환산 중.
강제청산 확률.
고블린한테 왜 공매도가 붙어 있지?
아니.
그 전에.
고블린이 왜 종목처럼 보이지?
“뭐야 이건…”
그때 숫자가 움직였다.
⸻
공격성 과열 : 82%
→ 89%
⸻
고블린 무리를 바라봤다.
처음 보였던 세 마리만이 아니었다.
숲 안쪽에서 더 많은 고블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놈들은 서로를 밀치며 달려들었다.
앞에 있는 놈은 뒤에서 밀려 넘어졌고.
뒤에 있는 놈은 앞의 놈을 밟고 지나갔다.
숫자가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
공격성 과열 : 93%
강제청산 확률 : 96%
괴리율 : 42%
⸻
“야.”
내가 검 든 남자를 불렀다.
“왜?”
“지금 공격하지 마.”
“뭐?”
“잠깐만.”
“미쳤냐?”
⸻
95%
96%
97%
98%
99%
⸻
숫자가 폭주했다.
놈들의 움직임이 점점 엇갈렸다.
달려드는 놈.
멈추려는 놈.
도망치려는 놈.
서로의 칼끝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
100%
⸻
상태창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
《강제청산 발생》
⸻
콰아아아앙!
폭발이 아니었다.
무언가 터진 건 고블린들의 몸이 아니라.
놈들의 균형이었다.
앞에 있던 고블린이 뒤에서 밀린 놈에게 떠밀렸다.
겁먹은 놈이 먼저 칼을 휘둘렀고.
그 칼이 옆 놈의 목을 갈랐다.
비명이 터졌다.
그러자 다른 놈들이 더 크게 날뛰기 시작했다.
퍽!
콰직!
서걱!
고블린들이 서로를 찢어발겼다.
칼이 목을 꿰뚫고.
이빨이 살점을 뜯어내고.
손톱이 배를 갈랐다.
공포가 공포를 밀어붙였다.
광기가 광기를 불렀다.
한 마리가 쓰러지자 다른 놈이 달려들었고.
또 한 마리가 죽자 남은 놈들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연쇄 폭락.
패닉셀.
자기파괴.
불과 몇 초.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서로를 죽이며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인간들도 무사하지 않았다.
비명 몇 개가 더 터졌다.
누군가는 도망치다 넘어졌고.
누군가는 고블린 무리 사이로 사라졌다.
살이 찢기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짧은 숨.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무섭지 않은 게 아니었다.
너무 무서웠다.
손끝이 떨렸고.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숫자가 보였다.
피보다 먼저.
비명보다 먼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한 마리.
놈이 비틀거리며 남았다.
⸻
《고블린 전사》
체력 : 17%
공격성 과열 : 0%
강제청산 확률 : 0%
괴리율 : 0%
⸻
숫자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마치 숏스퀴즈가 끝난 종목처럼.
놈은 숨을 헐떡이며 나를 봤다.
그리고 달려왔다.
“야!”
검 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었다.
무거웠다.
손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았다.
고블린이 바로 앞까지 왔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둘렀다기보다는.
달려드는 놈 앞에 겨우 갖다 댔다.
푹.
고블린이 스스로 검에 박혔다.
놈의 몸이 내 어깨를 밀쳤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컥!”
고블린이 내 위에 쓰러졌다.
뜨거운 피가 팔 위로 흘렀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놈의 시체를 밀어냈다.
팔이 떨렸다.
다리도 떨렸다.
검도 놓쳤다.
절대 멋진 장면은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았을 뿐이었다.
띠링.
⸻
《초보자 던전 클리어》
생존자 : 27명
⸻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피.
시체.
혼란.
공포.
사람들은 울거나, 토하거나, 멍하니 서 있었다.
검 든 남자는 내 쪽을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상한 놈을 보는 눈.
그리고.
죽지 않고 남은 놈을 보는 눈.
그때 상태창이 다시 떠올랐다.
⸻
《히든 특성 조건 충족》
시장 관찰자
세상 모든 존재의 괴리와 왜곡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발현은 비정상 각성 상태입니다.
정식 개방하시겠습니까?
YES / NO
⸻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시장 관찰자.
괴리와 왜곡.
웃기지도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내가 보는 건 여전히 그거였다.
과열.
공포.
왜곡.
붕괴.
주식도.
사람도.
몬스터도.
결국.
무언가를 잘못 믿는 순간 무너진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YES를 눌렀다.
⸻
《히든 특성 개방》
시장 관찰자
⸻
눈앞의 세상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나무.
시체.
사람.
피.
모든 것 위에 희미한 숫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너무 많았다.
너무 빨랐다.
아직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답을 알려주는 힘이 아니다.
정답지가 아니다.
미래 예언도 아니다.
그저.
틀어진 곳을 보여주는 힘이다.
무너질 곳.
과열된 곳.
남들이 착각하는 곳.
그리고.
그 착각이 돈이 되는 곳.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헛웃음을 흘렸다.
“…하.”
살아남았다.
돈은 없고.
검도 못 쓰고.
능력도 제대로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 익숙한 판 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던전은 끝났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직 숫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몬스터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걸.
⸻
다음 화
2화. 헌터 길드가 가장 먼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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