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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로
2026.08.19.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에 대해> 1. 다음 뉴스에서 읽을 수 있는 공통점은? "홍콩 금리, 미국 연준 따라 또 인상." "중국, 해외 송금 규제 강화." "원·달러 환율, 하루 만에 20원 급등."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세 기사 제목 안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신가요? 서로 다른 세 나라. 그리고 연관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주제. 그런데 이 세 기사 제목은 사실 하나의 명제로 귀결됩니다. "어느 나라도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고, 그 모든 것을 가지려는 자를 시장은 응징한다" 여기서 세 가지란 바로 ① 고정환율(환율을 일정 수준에 묶어두는 것), ② 자유로운 자본이동(돈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 ③ 독자적 통화정책(자기 나라 경기에 맞춰 금리를 스스로 정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이 셋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원리에 아주 멋떨어진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 또는 트릴레마(trilemma)입니다. 1960년대 로버트 먼델과 마커스 플레밍이 정리한 이 원리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환율과 금리, 국제 경제 뉴스의 행간을 읽는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트릴레마를 알고 경제 뉴스를 읽는다면, 자유무역과 환율, 그리고 금리가 만들어내는 경제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게 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불가능한 삼위일체, 트릴레마를 한 문장으로 이해하기** "고정환율, 자유로운 자본이동, 독자적 통화정책 세 가지 중 둘을 고르는 순간 나머지 하나는 자동으로 박탈당한다. 셋을 다 쥐려고 버티면, 시장이 대신 하나를 빼앗아 간다.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2. 메커니즘의 이해 — 왜 셋은 공존할 수 없는가 어떤 국가 A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해당 국가는 호기롭게도 셋을 모두 가지려 합니다. 환율은 달러당 1,000원에 고정했고, 자본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중앙은행은 자국 경기가 나쁘니 금리를 미국 4%보다 낮은 3%로 인하했습니다. 1단계 — 금리차 발생. 미국 금리가 5%인데 A국의 금리가 3%라면, 투자자 입장에서 이 나라 돈을 들고 있을 이유가 사라집니다. 같은 돈을 미국에 두면 2%포인트를 더 받습니다. 만약 변동환율제라면 A국의 금리가 낮으면 A국 통화의 가치는 금리차 만큼 즉시 절하되고(달러/원 상승) 향후 1년간 금리차 만큼 절상 압력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2% 싼 자산을 보유하면서 환율이라는 수단으로 보상을 받을 것을 시장이 기대하기 때문이죠. 저금리 통화가 시장에서 버림받지 않는 유일한 조건은 절상이라는 기대뿐입니다. 하지만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면 금리차를 상쇄할 수 있는 환율 절상을 통한 환차익 기대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A국의 통화를 보유할 이유가 없습니다. 2단계 — 자본이 유출되기 시작 자본이동이 자유로우므로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A국의 통화를 팔고 달러를 사서 떠나게 됩니다. 국경에 문이 없으니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3단계 — 고정환율을 유지하는 데 압력이 걸리기 시작 모두가 A국의 통화를 팔면 환율은 계속해서 절하 압력을 받습니다. A국의 통화 가치는 1달러 = 1,000원을 넘어서려는 압력이 생기게 됩니다(달러의 상승). 고정환율을 지키려면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꺼내 팔고 자국 통화를 사들여서 1달러 = 1,000원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4단계 — 방어 수단이 서로를 갉아먹기 시작 외환보유고는 화수분이 아닙니다. 계속 팔다 보면 점점 고갈되기 시작하죠.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것이 싫으면 유일한 무기는 금리 인상뿐입니다. 그런데 금리를 올리는 순간, "자국 경기에 맞춘 독자적 통화정책"은 사라집니다. 애초에 경기가 나빠서 금리를 내렸는데, 환율을 지키자고 도로 올려야 하는 상황에 빠집니다. 5단계 — 결국 하나를 내려놓게 됨. A국의 선택지는 셋뿐입니다. 금리를 올려 독자적 통화정책을 포기하거나, 자본 유출을 막아 자본이동의 자유를 포기하거나,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시장이 환율을 결정하도록 하거나. 어느 쪽이든 세 가지 중 하나는 내려놓아야 위기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금리차가 발생 → 자본이 이동 → 고정환율에 압력 발생 → 고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금리차를 포기하든지,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든지, 자본 유출을 막든지 셋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 이것이 불가능한 삼위일체의 전부입니다. "돈은 더 높은 수익률을 따라 언제나 어디로든 움직인다"는 상식 하나만 있다면,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금리차 발생 시에 자본이동과 차익거래 유인에 따라 환율이 변동하여 시장이 균형을 이룬다는 "금리균형이론"이라는 배경 지식만 추가하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 같네요! 이렇게 트릴레마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환율·통화 체제는 이 셋 중 "무엇을 버렸는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독자적 통화정책 포기 국가: 홍콩 등 페그제 운영 국가들 2.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포기한 국가: 중국 — 자본계정 통제 3.  고정환율을 포기한 국가: 중앙은행의 독자적 금리 정책 +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하는 국가들 ⇒ 한국, 미국, 일본 등 •    홍콩: 고정환율(달러 페그) +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골랐습니다. 대신 독자적 통화정책을 버렸습니다. 홍콩 경기가 어떻든 홍콩 금리는 미국 연준을 따라가야 합니다. •    중국: 환율 관리 + 통화정책 자율성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자본이동의 자유를 버렸습니다. 중국은 자본계정 통제를 시행합니다. 개인에게 해외송금 한도를 부여하고, 기업 외환 규제 같은 자본통제가 상시 작동합니다.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나가는 건 아니란다"가 바로 중국의 자본계정 통제를 대표하는 문장이죠. •    한국·미국·일본: 자유로운 자본이동 + 독자적 통화정책을 선택한 국가입니다. 대신 고정환율을 포기했습니다. 환율이 매일 출렁이는 것은 경제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이 선택의 대가입니다. 3. 역사 속, 셋을 모두 쥐려던 나라의 최후 (1) 1997년 서울 대한민국은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IMF 때 몸소 체험한 나라입니다. 1997년의 한국은 아주 용감하게도 삼위일체를 몸소 구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본시장 개방은 1990년대 들어 빠르게 추진됐고, 환율은 정부가 좁은 변동폭 안에서 관리했습니다(시장평균환율제라는 관리환율제도를 운영했고, 당시 환율은 900원대에서 관리되고 있었음). 동남아에서 시작된 위기로 외국 자본이 한국에서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 환율에 평가절하(원화가치 하락) 압력이 걸리고(달러/원 상승) → 정부는 외환보유고로 방어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외환보유고는 바닥납니다. 11월 말 가용 외환보유고는 70억 달러 수준까지 줄어 있었습니다. 1997년 11월 21일 밤, 정부는 그토록 부인하던 사실을 인정합니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발표하죠. 12월 16일에 환율 일일 변동폭 제한 자체가 폐지되었습니다. 고정환율을 포기한 것이죠. 이 조치가 시행되자 얼마 안 지나 900원대로 정부가 눌러놓았던 달러/원 환율은 12월 23일 장중 1,90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습니다. 인위적 압력 행사의 대가가 환율 대폭등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무려 반년 만에 원화가치의 52%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IMF와의 합의에 따라 콜금리는 연 30% 수준까지 인상됐습니다. 환율 방어에 실패한 뒤, 한국을 떠난 자본을 붙잡기 위해 박살나버린 국내 경기와는 정반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죠. 1997년 겨울 한국은 셋을 다 쥐고 버티다가, 먼저 시장에게 고정환율을 빼앗겼고, 그 뒤 통화정책의 자율성까지 한동안 IMF에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걸 다 쥐려고 하면 시장은 하나 이상을 빼앗아 가고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3) 1992년 런던 — 영란은행이 환율전쟁에서 헤지펀드에 패배한 날 트릴레마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글로벌 사례가 한국의 IMF 사건 5년 앞서 있었는데요.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있던 영국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유럽 환율조정장치(ERM)에 가입해 파운드를 독일 마르크에 사실상 고정(페깅)해둔 상태였습니다(1파운드당 2.95마르크). 자본이동은 자유로웠습니다. 앞서 홍콩이 홍콩달러 환율을 미국달러에 페깅하면서, 금리정책도 미국과 동일하게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렸었죠. 문제는 경기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탓에 주택시장이 붕괴하고 소비가 위축되며 경기 침체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국내의 경기를 감안할 때 금리를 내려야 할 처지였는데, 환율을 지키려면 고금리의 독일을 따라가야 했습니다(당시 독일은 서독과 동독이 통일하면서 통일비용을 국채로 조달하느라 금리 상승을 우려한 분데스방크가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음).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고정환율 제도하에 독자적 금리정책까지 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때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은 이 모순적 상황을 눈치챕니다. "영국은 경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야 하고, 금리를 내리면 파운드의 평가절하가 일어날 것이다"는 논리 하나로 파운드를 대규모로 공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공매도는 먼저 빌려서 팔고, 하락하게 되면 떨어진 가격에 사서 되갚으면 되기 때문에 (판 가격 − 되산 가격)만큼 이익을 봄). 1992년 9월 16일, 헤지펀드가 시작한 환율전쟁에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10%에서 12%로 올리고, 몇 시간 뒤 15% 인상까지 예고하며 맞섰습니다. 하지만 침체에 빠진 나라가 하루에 금리를 5%포인트 올리겠다고 나선, 그 자체로 울며 겨자 먹기식의 피눈물 나는 방어였습니다. 그날 저녁 7시, 영국은 ERM 탈퇴를 선언합니다. 더 이상 독일 마르크에 파운드 가치를 고정하지 않겠다고 페깅 포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더불어 예고했던 15% 인상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파운드는 헤지펀드의 예측대로 폭락했고, 조지 소로스는 약 10억 달러의 이익을 챙기게 됩니다. 영국 재무부는 이날의 환율 방어를 위해 훗날 33억 파운드 규모로 추산되는 막대한 방어 비용을 소모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이날을 '검은 수요일'이라 부릅니다. 서울과 런던, 모두 조건은 달랐지만 결말의 구조는 같습니다. "셋을 다 쥐려는 나라는, 가장 약한 꼭짓점에서 시장에 약점을 노출하고 먹잇감이 되며, 어느 하나를 포기하게 된다" (3) 홍콩의 환율전쟁 승리와의 대비점 앞서 홍콩이 페그제를 운영하며 98년도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이야기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때 헤지펀드는 홍콩달러를 공매도하면서, 동시에 주식시장도 공매도했습니다. 홍콩정부는 외환보유고를 쏟으면서 동시에 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을 예상하고 이중 플레이를 진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홍콩정부는 초단기 금리를 하루 기준으로 300%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동시에, 헤지펀드가 공매도한 주식을 1,180억 홍콩달러를 들여(당시 기준 26조 원 수준) 대량 매입했습니다. 단기로 홍콩달러를 빌리고, 주식을 공매도한 헤지펀드는 단기 차입비용 급증과, 주가가 오히려 상승함에 따라 주식 매도 포지션 양방향에서 대량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페그제에서는 금리를 정책목표로서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통화량을 단기에 조임으로써 금리를 결과변수로 활용할 수 있고, 그 성공 사례가 바로 98년 홍콩의 환율전쟁 승리 사례입니다. 영국이 92년에 파운드를 대량 매입하면서 초단기 금리를 결정변수로 활용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영국은 그럴 만한 기초 체력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4. 마치며 : 이제 이 뉴스가 보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원리를 장착하고 나면, 처음의 세 기사가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됩니다. "홍콩 금리, 연준 따라 인상"은 홍콩정부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페그제와 자본이동을 지키기 위해 통화정책을 스스로 반납한 결과물이며, "중국, 해외 송금 규제 강화"는 갑작스러운 통제 강화가 아니라, 환율과 통화정책을 지키기 위해 자본이동이라는 꼭짓점을 상시 희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원·달러 환율 급등"은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이 금리정책의 자율성과 자본시장 개방을 지키는 대가로 환율이라는 완충장치가 충격을 대신 흡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997년에는 그 완충장치가 없어서, 충격이 외환보유고와 금리 그리고 실물경제를 직접 때렸습니다. 앞으로 어느 나라든 "환율도 지키고, 자본시장도 열어두고, 금리도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뉴스가 나오면, 조만간 경제 위기의 신호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봐도 좋습니다. 그 위기를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셋 중 무엇을 포기할지에 대한 답에서 나오겠죠. 신학에서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이 셋이 곧 한 분인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셋이 하나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경제에서 삼위일체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불완전함"을 대변합니다. 고정환율, 자유로운 자본이동, 독자적 통화정책 셋 중 하나를 덜어내야 경제정책이 올바로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비워야만 채워질 수 있는 소설 거상의 계영배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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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2026.08.19.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공부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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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아빠
2026.08.19.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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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2026.08.22.
대단한 식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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