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8.09.
주간조선 8화가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혐오 표현 처벌의 문제점에 대해 다뤘습니다.
복잡한 사회학 가설로 포장해도, 결국 혐오의 기준은 주관적 감정과 정파적 소속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약자와 강자의 기준 역시 정치적으로 결정하기 나름인지라,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억누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 팬덤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팬덤의 숫자에 따라 처벌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법은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최대한 명료해야 하는데, 혐오는 지나치게 모호합니다. 지금도 혐오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학자가 경고해 온 일이기도 합니다.
“만델라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압력솥의 안전 밸브에 비유했다: 만약 사람들이 평화롭게 불만을 목소리로 낼 수 없다면, 그들의 분노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할 것이다. 그의 통찰력은 단순하지만 심오했다: 정부가 평화로운 표현을 억압할 때, 민주주의에 전념하는 사람들조차 폭력을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로 여길 수 있다.”
- 반극단주의 위원회, 영국 내무부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칼럼니스트에게는 공유가 최고의 응원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3/0000060553?sid=100
"어쩌면 요즘 청소년과 청년에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고대 교부와 같은 성실한 '노무현 변론가'들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수가 북한에 관대하고 반시장적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다면, 기성 진보는 노 전 대통령이 반노동, 친기업, 반민족, 친서방 정책을 편다며 힐난했다. 지금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진보 단체와 언론 상당수도 노 전 대통령을 외면했던 곳이다."
"고인을 모독하는 것이 도덕적 잘못이라면, 이 고인과 저 고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고인은 모독해도 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 연쇄살인마에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데, 왜 특정 정치인에게는 없을까."
"이 논리 공백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기성 진보 정치인은 본 적 없다. '상식이다' '당연하다' 같은 요즘 시대에 통하지 않는 변론만 반복될 뿐이다. 이런 날것 그대로의 부조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 서사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약자와 강자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혐오표현 처벌은 악용될 위험이 크다. 훗날 사회 분위기가 보수 우위로 돌아서면, 그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때 기성 진보가 표현의 자유를 다시 꺼내 봐야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정보로 가득한 시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론하려면, 고대 교부보다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한다. 가부장적으로 의문을 억누를 수 있는 시대는 진짜 민주화 유공자들이 끝냈다."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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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국
2026.08.09.
내로남불의 대몀사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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