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페로
20시간 전
[주제17] 인간은 왜 금을 가치저장 수단으로 쓸까?
1부. 인류는 왜 하필 금을 골랐을까
2부. 금은 무엇이 특별한가?(희소성)
2부. 금과 경제, 그리고 금의 미래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2025년, 거듭된 금리인상과 안정된 인플레이션의 끝에 미국의 실질금리는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물가를 뛰어넘는 이자를 주는 미국 국채가 널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론대로라면 이자 한 푼 안주는 금은 매력을 상실하고 하락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25년 한 해 금은 65% 넘게 올랐고, 이듬해 1월에는 사상 처음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 무너진 실질금리와 금의 상관관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금이 경제와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인플레이션과의 관계, 금리와의 관계를 통해서 살펴보고, 그 끝에서 2부에서 잠깐 맛보았던 금이 가치저장 수단으로 쓰이는 일곱번째 이유였던, '상대방위험 부재'를 통해 금이 역대급 랠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해부해보겠습니다.
1.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의 가장 효과적이 대상인가?
결론부터 내놓고 시작해 볼까요? 정답은 '기간에 따라 다르다' 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금을 사라"는 말은 상식처럼 통합니다. 이 상식을 만든 건 1970년대의 경험입니다. 1부에서 본 닉슨의 금태환 중단 쇼크로 화폐와의 연결고리가 풀린 금은 1971년 온스당 35달러에서 1980년 초 무려 850달러까지, 10년도 안 돼 20배 넘게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물가상승률은 한때 15%에 육박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금이 화폐를 압도한, 인플레이션 헤지가 완벽하게 작동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20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198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 물가는 연평균 4% 안팎으로 꾸준히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금의 가격은 오랜 기간 하락했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의 기준으로 본다면 금도 꾸준히 올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850달러였던 금은 2000년대 초에 300달러 아래까지 미끄러졌습니다. 물가가 두 배 넘게 오르는 동안 금은 명목으로도 3분의 2의 가치가 날아가 버렸으니,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는 되려 80% 이상을 잃은 셈입니다.
최근 2022년에도 미국 물가상승률이 41년 만의 최고치를 찍는 동안, 금은 1년 내내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정리해볼 수 있는 금의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효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은 연 단위 물가상승률의 헤지로는 부적합>합니다. 다만 시야를 <세대 단위, 세기 단위로 넓히면 금의 구매력은 놀랍도록 보존돼 왔다>는 걸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금이 반응하는 건 매년의 소비자물가가 아니라, 1970년대나 2020년대처럼 화폐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국면입니다.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가 아니라, 화폐에 대한 불신의 헤지인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트코인이 생각나는 지점이네요.
2. 금리와 금의 관계
금리와의 관계는 어떨까요? 논리는 명쾌합니다. 금은 이자를 낳지 않습니다. 금을 들고 있다는 건 채권이나 부동산이 주는 이자와 임대료를 포기하는 의사표시 입니다. 그 포기한 이자와 임대료가 금 보유의 기회비용입니다.(금을 보유함에 따라 포기하는 이익)
여기서 중요한 건 명목금리가 아니라 실질금리(명목금리 - 기대 인플레이션)입니다. 이자를 받아도 물가가 그만큼 오르면 헛돈이니까요.
실질금리가 오르면 →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상승 → 금가격 하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실질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 자산으로 사람들이 이동할 테니까요.
실질금리가 내리면(특히 마이너스가 되면) → 포기할 이자가 없음 → 금 가격 상승
여기서 실질금리 하락이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정리해보면 금이 오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실질금리 하락과 금 가격 상승의 매커니즘을 다시 이해해보면
(1) 화폐 보유로 얻을 이익이 감소-> 화폐보유 이유 상실, 위험자산 선호 증가
(2) 통화량 증가로 화폐 신뢰가치가 훼손됨 -> 명목자산에 대한 신뢰하락 금 등 실질 자산으로 머니무브로 이어집니다.
실질 금리가 하락하면 화폐가 아닌 실물자산으로의 이동을 촉진하고, 그 대척점에 금이 있는 것입니다.
실질금리와 금이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이 법칙은 실제로 약 25년 동안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작동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21년까지 금 가격과 미국 10년 실질금리는 거울처럼 반대로 움직였습니다.(그래프 참조)
2011~2012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금은 당시 사상 최고가를 찍었고, 2013년 실질금리가 반등하자 금은 급락했습니다. 2020년 팬데믹으로 실질금리가 -1%까지 추락하자 금은 다시 신고가를 갈아치웠고요.
3. 2022년, 무너진 상관관계
그런데 차트의 오른쪽 끝을 보시죠. 2022년부터 연준은 4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고,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서 2%대까지 치솟았습니다. 기존이 상관관계 대로라면 금의 가격은 떨어져야 했습니다. 2019년~2022년 까지실질금리 상승으로 눌렸던 금 가격은 실질금리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는데도 반등하더니, 2024~2025년엔 아예 실질금리를 무시하고 수직으로 올랐습니다. 25년간 강하게 유지되던 역의 상관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답은 금을 사는 주체가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 전까지 금 가격의 한계 매수자는 서방의 ETF 투자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금리에 민감합니다. 이자가 좋아지면 금을 팔고 채권으로 갈아탑니다. 그런데 2022년 이후 시장의 주인공은 다른 플레이어로 교체됐습니다. 수익률 따위는 보지 않는 매수자인 바로 각국 중앙은행입니다.
4. 2022년 2월, 중앙은행들이 본 것
1부에서 말씀드렸던 브라운 바텀을 기억나시나요? 1999년, 선진국들이 "금은 끝났다"며 내다 팔던 그 금의 흑역사를 찍던 시기 말입니다. 바로 그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은 사건이 2022년 2월에 일어났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해외에 예치해 둔 외환보유액 약 3,000억 달러를 동결해 버렸습니다.
이 장면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은 단 하나의 사실을 학습했습니다. 달러든 유로든, 해외 계좌에 있는 외환보유액은 결국 누군가의 장부에 적힌 약속일 뿐이며, 그 약속은 정치적 관계가 틀어지면 버튼 하나로 언제든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는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다른 개별 제재대상 인물이나 테러단체가 아닌 국가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동결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2부에서 언급드린 금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일곱번째 특징인 '상대방위험의 부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놔눠 볼 차례입니다.
예금은 은행이 지급을 약속하고 국채는 정부가 지급을 약속하지만, 금은 약속이 아닙니다. 자국 금고에 쌓아둔 금괴는 동결할 주체도, 부도날 발행자도 없습니다. 물론 해외의 금고에 보관해둔 금 반출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외화는 대금의 결제나 관리의 편의를 위해 통상 해당 통화의 발행 국가 소재의 은행에 보관합니다. 달러는 미국, 엔화는 일본, 유로는 유럽소재 은행이 통상적인 보관 방식입니다. 하지만 금은 결제에 쓰이거나 이동을 할 일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자국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만 한다면,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자산이 동결될 일이 절대 없습니다.
2022년 2월 이후에 모든 국가는 안전한 외환보유고의 조건에 정치적 리스크로 인한 인출이 중단될 수 있는지 여부까지 고려해야할 상황에 놓였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에게 가장 절실한 조건이 된 것이 중앙은행이 금으로 눈을 돌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태까지의 숫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들의 금 순매입은 그 이전 10년간 연평균 500톤 수준이었는데, 2022년부터는 연 1,000톤 안팎으로 두 배가 됐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매입이 4년째 이어지는 중입니다. 실질금리가 방향과 속도를 정하던 시장에서, 이제는 중앙은행 수요가 바닥을 지지하는 구조로 바뀐 겁니다. 전통적인 이론이 틀린 게 아니라, 큰 손의 등장으로 그 구조가 왜곡되어 버린 것입니다.
5. 누가, 왜 금을 사는가 — 수요의 구조
시야를 넓혀 금 수요 전체의 지도를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2025년 세계 금 수요는 사상 처음 연 5,000톤을 넘었는데,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 장신구: 전통의 최대 수요처. 다만 금값 급등에 수량 기준으로는 급감 — 인도와 중국의 결혼·명절 수요가 절반가량을 차지
- 투자: 금 ETF와 골드바·코인. 2025년 ETF로만 800톤 넘게 유입되며 랠리의 불쏘시개 역할
- 중앙은행: 앞서 본 연 1,000톤 안팎의 구조적 매수
- 산업: 반도체 접점, 인공위성 코팅 등 — 그런데 전체의 10%도 안 됨
2부에서 은은 수요의 절반이 산업용이라 했었죠. 금은 정반대입니다. 금 수요의 90% 이상이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기 위해서'입니다. 금값은 유용성의 가격이 아니라 신뢰의 가격이라는 것 바로 그 사실이 금이 절대적 가치보전의 수단으로 자리잡게한 핵심입니다.
2부에서 예고한 금은비(금 가격 ÷ 은 가격)도 최근 금가격 과열의 온도계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평상시 이 비율은 대략 60~90배 사이를 오가는데, 금이 먼저 급등한 2025년 초반엔 100을 넘었다가, 뒤늦게 은이 따라붙으며 2026년 초 51까지 급락했습니다. 귀금속 랠리가 2인자까지 번질 만큼 뜨거워졌다는 신호였고, 이후 70 부근으로 다시 되돌림했습니다.
금은비가 극단으로 벌어지거나 좁혀질 때, 시장은 그걸 랠리의 온도를 재는 눈금으로 씁니다. 투자할 때도 금은비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면 은의 상대적 저평가구간으로 보고 진입의 신호로 읽을 수 있고, 금가격이 하락하면서 금은비가 내려가게 되면 금 투자 진입의 신호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한국은행의 금 트라우마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한국은행의 금 매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4.4톤으로 세계 40위권이고,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칩니다. 왜 이렇게 적은지 궁금하지 않나요?
한은도 금을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2011~2013년,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달리던 시절에 약 90톤을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직후 금값이 30% 넘게 폭락했습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왜 상투를 잡았느냐"는 질타가 쏟아졌고, 한은은 이후 13년간 금을 단 1그램도 사지 않았습니다. 한국은행의 '금 트라우마'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침묵이 2026년에 깨졌습니다. 한은은 2분기에 금 ETF를 소액 매입하며 몸을 풀더니, 8월에는 KRX 금시장에서 국내 생산 금을 연 5톤 안팎으로 사들이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규모 자체는 상징적 수준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고점 매입의 상처를 안고 13년을 관망하던 중앙은행마저 다시 금 매수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흐름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이동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1998년 국민들이 돌반지를 들고나와 나라를 구했던 한국의 중앙은행이, 이제는 위기가 아닌 평시에 금을 쌓기 시작한 겁니다.
마치며 금의 미래 — 4,000달러 위의 질문들
이제 금의 가격을 볼 차례입니다. 2025년 금은 연평균 기준 40% 넘게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50차례 이상 갈아치웠습니다. 2026년 1월 5,000달러를 뚫은 뒤 현재는 4,300~4,400달러대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준과 일본은행이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사이클에 돌입한터라, 무이자 자산의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이 다시 금의 가격을 압박하는 형세가 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정직하게 말하면, 이 주제에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강세와 약세를 지지하는 측면으로 정리하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강세를 지지하는 측면 : 제재 리스크는 미국의 정권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러시아 외환보유고 동결로 한번 학습된 공포는 되돌리기 어렵고, 중앙은행 매수가 구조적으로 계속되면서 금 가격의 바닥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계해야 할 측면: 실질금리의 압력은 여전합니다. 연준의 Higher for longer가 계속ㄷ괸다면 금 ETF에 유입된 자금은 견디지 못하고 먼저 이탈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은의 2011년이 보여주듯 "모두가 확신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교훈은 금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과거에 상투를 잡았다면, 지금도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켜볼 부분 : 달러 결제망 바깥의 대안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달러'로서 오히려 달러 수요를 강화할지, 아니면 금과 함께 탈달러의 도구가 될지도 하나의 핵심 주제가 될 겁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스테이블코인을 위시한 코인 생태계가 전통 금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로 다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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