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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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시간 전
한국인은 영어로 Apple이라고 불리는 과일을 '사과'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서 그렇게 정의한다고 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말이 있고 사전이 있는 거지, 사전이 있고 말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단어의 용법을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용법대로 단어를 쓴다.' 일상에서는 이것이 말뜻 대부분의 사실상 유일한 출처이고 근거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시점의 물리학에서 속도는 방향을 포함하는 말이라지만, 그건 지금 시점의 물리학이라는 맥락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속도'라는 한자어 자체에는 방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금 물리학자들이 한자어를 멋대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물리학자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물리학의 용법이니까. 진화(Evolution)도 그렇다. 생물학 좀 배운 사람들은 진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을 혐오한다. 진화는 자연 선택이고, 자연 선택에는 한 순간의 유리함이 있을 뿐, 어떤 방향이나 우열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18, 19세기에 Evolution이라는 말 자체는 '더 나아짐'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다윈 이전의 진화론자도 그런 의미로 썼다. 정치사상에는 점진적 사회주의(Evolutionary Socialism)라는 말도 있다. '포켓몬 진화'가 더 원래 의미에 부합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 진화는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틀린 것이 아니다. 그저 새 맥락에 맞는 새 용법일 뿐이다. 말뜻 대부분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은 통계값에 가깝다. 물론 법률 용어 같은 전문 용어는 철저히 맥락에 맞게, 일상 언어와 다른 의미로 써야 할 수는 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학문의 영역에서는 학자의 용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특정 맥락 속 전문 용어가 모든 상황에서 일상 언어보다 우월하거나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공공기관이 그렇게 정했다. 국제연합이 그렇게 정의했다. 물리학에서는 다르다.'' 이런 주장은 일상에서 무의미한 스노비즘에 불과할 수 있다. 말의 용법에 맥락을 초월하는 정답 따위는 없다. 애초에 자기 맥락에만 갇혀 있는 것은 좋은 소통법이 아니다. 그러니 물리학 좀 배웠다고 '속도는 방향도 포함한다'고 화를 내는 건 자제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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