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캉
2시간 전
<CPI는 무난했다, 시장을 흔든 건 다리오 아모데이였다>
이번 주 시장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따로 봐야 합니다. 하나는 예상 범위 안에서 흘러간 CPI, 금리, 유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AI 안전 논쟁입니다.
11일 한국 시간 낮, 코스피는 CPI 발표를 앞둔 경계심리로 1.76% 하락하며 사흘 만에 7000선 아래로 밀렸습니다. 그날 밤 발표된 미국 8월 CPI는 전년 대비 3.4%, 근원 CPI는 2.4%로 나왔습니다. 컨센서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치였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반등했습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전체 CPI와 근원 CPI의 격차 1%포인트 중 에너지 가격이 기여한 몫이 1.08%포인트였습니다. 사실상 유가가 전체 숫자를 밀어올린 셈입니다.
이 에너지발 압력은 CPI 발표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미, 이란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핵심 송유관까지 폐쇄하면서, WTI는 배럴당 103.95달러, 브렌트유는 109.14달러까지 뛰었습니다. 미국 경유 가격도 사상 처음 갤런당 6달러를 넘었습니다. 여기에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023년 이후 처음으로 5%를 돌파하면서, CME 페드워치 기준 9월 FOMC 금리 인상 확률은 한 달 전 33.9%에서 92.5%까지 치솟았습니다. 외국인 자금이 빠지고 달러 강세가 겹치며 원화도 약세 압력을 받았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사실 예견된 흐름이었습니다. 유가, 금리, CPI가 서로 맞물려 시장을 압박한다는 건 이미 몇 주 전부터 시장이 소화하고 있던 변수였습니다. 실제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준 건 따로 있습니다.
9월 12일,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장문의 에세이를 통해 "최첨단 AI의 발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샘 올트먼(오픈AI)이 동조했고, 일론 머스크도 "다리오가 맞다"며 힘을 보탰습니다. 배경에는 내부고발도 있었습니다. 앤트로픽 전직 연구원은 "회사가 목숨을 걸고 도박하고 있다"며 퇴사했다고 밝혔고, 앤트로픽 AI 안전연구원은 "향후 10년 내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확률이 10%를 넘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쟁이 확산되자 14일 반도체, AI 인프라주가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프리마켓에서 마이크론 -5%, 인텔 -6%, 엔비디아 -2%가 빠졌고,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 -6%대, 삼성전자 -4%대, 일본 소프트뱅크는 -10%대까지 급락했습니다.
이 논쟁을 "안전이냐 가속이냐"는 이념 대립으로만 보면 놓치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당 논쟁을 각자의 시장 포지션에 대입해보면서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앤트로픽은 오픈AI, 구글 대비 시장점유율에서 밀리는 2티어 포지션입니다. "우리는 안전을 더 신경 쓰는 회사"라는 브랜딩이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고, 규제가 강화되면 이미 자본과 인프라를 갖춘 선두기업에는 오히려 해자가 되고 후발 스타트업의 진입은 막힌다는 구조적 이득도 있습니다.
실제로 마이클 버리는 “속도조절론이 경쟁사 추격을 늦추고 IPO를 앞둔 몸값을 부풀리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가깝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오픈AI는 이미 업계 1위라 방어적 동기는 약하지만, 대규모 투자 유치, 기업가치 재평가 국면에서 "우리 기술이 위험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메시지가 몸값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앤트로픽과 비슷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xAI는 후발주자입니다. 그가 예전부터 AI 위험론을 꾸준히 얘기해온 일관성은 있지만, 동시에 "다들 속도를 늦추면 따라잡을 시간을 번다"는 계산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판매가 본업입니다.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퍼질수록 데이터센터, GPU 투자 위축으로 직결되는 만큼, 그가 "멸종 확률 같은 예측은 만들어낸 것"이라며 정면 반박한 건 논리적 타당성과 별개로 본인 사업의 존립과 직결된 방어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와 데이비드 삭스(백악관 AI 자문)는 AI 회사 당사자가 아니라 정책적 이해관계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프레임이, 삭스는 규제 자체에 대한 반감이 핵심입니다.
구글과 메타는 이 논쟁에 거의 끼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조용히 웃은 쪽이라고 봅니다. 이미 광고 사업에 AI를 적용해 수익을 내고 있는 상태라, 경쟁사들의 자본지출 속도가 늦춰지면 "AI로 버는 돈은 계속되는데 AI에 쓰는 돈의 증가 속도는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같은 날 두 회사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두 가지 성격이 다른 리스크가 겹치고 있습니다. 유가, 금리, CPI는 이미 시장이 소화하며 대비해온 변수였던 반면, AI 안전 논쟁은 예고 없이 튀어나와 반도체주를 흔든 변수였습니다. 문제는 이 논쟁이 한 번으로 끝날 가능성이 낮다는 점입니다. 각 진영의 발언 뒤에 깔린 이해관계가 이렇게 뚜렷한 이상, 비슷한 논쟁은 다음 실적 시즌이나 다음 투자 유치 국면마다 형태를 바꿔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당장은 FOMC 결과가 CPI, 금리, 유가 축의 결론을 내려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AI 속도조절론 쪽은 한 번의 발언으로 정리될 사안이 아닌 만큼, 반도체주에 대해서는 실적과 무관하게 이런 뉴스 흐름에 따라 단기 변동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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