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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JOJO
2026.06.19.
인도가 퓨상스를 깨뜨리자, 미국은 크립토를 꺼냈다 (ft.달러역설) — 달러 패권의 다음 무대는 결제가 아니라 선택이다 1.서론ㅡ불편한 시스템은 결국 우회된다 품질과 안전을 관리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한 가지 직업병이 생긴다. 어떤 시스템이 무너질 때, 그 시스템을 가장 강하게 압박한 것이 무너뜨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사고는 대개 가장 통제가 강한 구간이 아니라, 통제가 형식적으로만 작동하던 구간에서 터진다. 명령으로 묶어둔 부분은 겉보기엔 단단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그 명령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드러난다. 결국 작업자나 사용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시스템만이 지켜진다. 불편한 시스템은 감독이 사라지는 순간 우회되고, 그 우회가 쌓인 자리에서 불량과 안전사고가 터진다. 불편한 포스 시스템이 아니라 편한 퓨상스 시스템이 되어야 비로소 운영과 관리가 원활해진다는 뜻이다. 오태민의 《달러 역설》을 읽으며 같은 패턴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공장이 아니라 세계 금융 시스템이었다. 책이 보여주는 세 개의 장면이 있다. 중국의 CIPS, 인도의 UPI, 그리고 미국의 스테이블코인이다. 첫째 장면은 포스로 만든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고, 둘째 장면은 퓨상스가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을 보여주고, 셋째 장면은 패권을 쥔 쪽이 그 교훈을 어떻게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2.본론1ㅡ첫째, CIPS는 왜 강해지지 않는가 책에 나온 사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CIPS, 즉 중국이 만든 위안화 국경 간 결제 시스템에 가입한 나라들의 가입 시점이다. 2018년 트럼프가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에게 제재를 부과하자 수개월 안에 터키 은행 네 곳이 CIPS에 가입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 제재가 시작되자 CIPS 초기 참여 기관 100개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고, 동시에 자체 결제 시스템 SPFS 구축에 착수했다. 벨라루스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러 제재가 본격화되자 곧바로 CIPS 가입을 발표했다. 가입의 동기가 전부 같다. 제재다. 누군가 미국의 포스에 맞아본 직후에야 CIPS에 들어간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회피다. 평소엔 쓰지 않다가, 맞을 위험이 커지는 순간에만 찾는 비상구 같은 존재다. 그 결과가 숫자로도 드러난다. 2022년 기준 CIPS의 일일 거래량은 약 460억 달러다. CHIPS가 처리하는 하루 약 5조 달러와 비교하면 격차가 100배가 넘는다. 맥도웰이 CIPS를 '달러의 구글플러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글플러스는 기능이 나빴던 게 아니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떠날 절박한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CIPS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자체의 결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재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 CIPS를 계속 쓸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포스로 만든 동맹은 포스가 약해지면 함께 약해진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직업적으로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규정으로 강제한 안전 절차는 감독관이 있을 때만 지켜진다. 외부 통제가 사라지면 관행은 곧바로 원래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반면 작업자 스스로 그 절차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게 되면, 감독관이 없어도 절차는 유지된다. CIPS는 전자에, UPI는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둘째 장면이 바로 이 후자를 보여준다. ​ 3.본론2ㅡ둘째, 인도는 어떻게 거부당하지 않으면서 흔드는가 인도라는 나라를 지정학적으로 보면 처음부터 예외적인 위치에 서 있다. 7,500킬로미터의 해안선으로 아라비아해와 벵골만, 인도양 본해에 동시에 접하고,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이라는 세계 에너지 흐름의 두 초크포인트 사이에 정확히 놓여 있다. 결정적인 건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다. 말라카 해협과 1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이 섬들에 인도의 유일한 삼군통합 사령부가 있고, 중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의 80% 이상이 이 사령부 인근을 지나간다. 인도는 가만히 지도 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계 에너지 흐름의 핵심 두 곳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나라다. 존재 자체가 지정학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이 위치를 인도는 군사력으로만 쓰지 않는다.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이 2020년 저서 《인도의 길》에서 제시한 전략이 다중 정렬이다.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을 관리하고, 유럽을 끌어들이고, 러시아를 안심시키고, 일본을 참여시키고, 이웃을 포용한다. 누구와도 완전히 묶이지 않으면서 모두와 연결된다. 미국과는 쿼드를 함께하면서, 러시아 원유를 루피와 루블로 사들이고, 중국을 인도양에서 견제하면서도 BRICS 회원국으로 남는다. 2023~2024년 인도와 러시아의 교역 총액은 650억 달러였고 그중 90% 이상이 현지 통화로 결제됐다. 2030년까지 1,000억 달러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반응이다. BNP파리바를 제재했을 때와 같은 강도로 인도를 압박하지 않는다. 압박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결제 인프라가 더해진다. UPI, 통합결제인터페이스는 2016년 인도 중앙은행과 인도국립결제공사가 출범시킨 실시간 소액결제 시스템이다. 스마트폰만으로 은행 계좌 간 즉시 송금이 가능하고, 2025년 기준 연간 2,500억 건, 3조 4,0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처리한다. IMF는 2025년 디지털 결제 규모에서 비자를 추월했다고 평가했다. UPI는 싱가포르, UAE, 프랑스, 스리랑카, 부탄, 모리셔스, 네팔로 확장됐고 페루와 나미비아는 2026~2027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CIPS가 제재를 피하려는 나라들이 모이는 비상구라면, UPI는 그냥 쓰기 편해서 모이는 광장이다. 맥도웰이 말한 '비 오는 날 옵션', 즉 위기가 닥쳤을 때 쓸 수 있는 대안을 인도는 평소에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용히 깔아두고 있다. 자이샨카르는 인도의 자율성을 지구적 모순이 만들어내는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정의했다. 이 문장이 책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는 달러가 편하면 달러를 쓰고, 제재가 불편하면 루피로 우회한다. 어느 한쪽 진영에 속하는 순간 다른 쪽이 인도를 압박할 명분이 생기지만, 인도는 그 명분을 처음부터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인도의 대안은 중국의 CIPS나 러시아의 SPFS보다 미국에게 더 위험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명백한 도전자이기 때문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분명하다. 인도는 도전자가 아니다. 동맹이면서 동시에 이탈자다. 압박할 명분이 없는 상대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라는 건, 조직 관리에서도 똑같이 통하는 원리다. 규정 위반자는 처벌하면 된다.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막을 방법이 없다. ​ 4.본론3ㅡ셋째, 미국은 이 교훈을 어떻게 되돌리려 하는가 책에서 던진 질문이 가장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직면한 진짜 질문은 인도조차 거부할 수 없는 퓨상스를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다. CIPS처럼 명령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이미 실패가 증명됐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다. 인도가 UPI로 보여준 것과 똑같은 방식, 즉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을 다시 만드는 것. 미국이 그 무대로 고른 곳이 바로 크립토, 스테이블코인이다. CHIPS는 포스의 성격이 강하다. 제재와 접근 차단, 금융 통제로 작동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다르다. 빠르고 저렴하고 24시간 결제가 가능하다.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그냥 쓰기 편해서 쓴다. CHIPS는 달러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쓰고 싶다고 말하게 만든다. 이 차이가 결국 향하는 곳은 단순한 결제 인프라 경쟁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위에서 거래가 쌓이면 그 거래를 처리하고 검증하고 정산하는 연산 인프라, 즉 컴퓨트 패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컴퓨트 패권은 다시 AI 경제 전체의 기반으로 연결된다. 통화 패권의 다음 전장이 결제망이 아니라 연산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도가 UPI로 보여준 퓨상스의 원리, 명령이 아니라 선택을 만든다는 원리를 미국은 이번엔 디지털 세계 전체에 적용하려는 셈이다. 이 구도를 끝까지 따라가면 다소 서늘한 결론에 닿는다. 패권 경쟁의 본질이 군사력이나 제재 목록이 아니라, 누가 더 거부하기 어려운 선택지를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의 무대가 통화에서 결제로, 결제에서 다시 연산과 AI로 한 단계씩 옮겨가고 있다. ​ 5.결론ㅡ선택받는 능력이 진짜 힘이다 책을 덮고 나서 계속 남는 질문은 이거다. 진짜 패권은 통제력이 아니라 선택받는 능력 아닐까. CHIPS가 강한 이유는 미국이 명령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유동성이 크고 가장 편한 시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도가 강해지는 이유도 군사력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과 BRICS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모두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요로 묶은 관계는 강요가 풀리는 순간 끝난다. 선택으로 쌓은 관계는 더 나은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이 원리가 국가 사이에서만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조직 안에서도, 개인의 평판 안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명령으로 따르게 만든 신뢰는 명령권자가 바뀌는 순간 사라진다. 스스로 선택해서 따르게 만든 신뢰는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도 남는다.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쌓는 것도 포스가 아니라 퓨상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기서 멈추기는 아쉽다. 인도의 다중 정렬이 미국의 입장에선 아킬레스건이지만, 인도 자신에게는 영원히 안전한 줄타기일까.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건 동시에, 모두에게 동시에 의심받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전략이 언제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줄타기가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가장 먼저 흔들릴 곳은 어디일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판단하는인간 #구조를읽는눈 #40대생존 #패치워크세계 #달러역설 #퓨상스와포스 #인도전략 #스테이블코인 #지정학읽기 #달러패권 #오태민 #비트모빅 #인도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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