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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2시간 전
간만에 하루종일 등을 펼 수 없었다. 명치 안쪽까지 짓눌리는 것 같았다. 불안에 압도되거나 넘치는 생각에 압도당하면 자주 이랬다. 이번에는 루머에 휩쓸려서 완전히 고립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단언컨대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청소년 조력자로 활동할 때 범죄 이력을 조회해서 서류를 제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범죄자처럼 대한 적은 있다. 정확히는, 같은 부대에 있던 병사들이 나를 꾀병 부리는 병역기피자처럼 대한 적은 있다. 군복무할 때,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 씩 근육이 굳을 정도로 과호흡하는 바람에 훈련 뿐만 아니라 아침 점호에도 참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곧 대대 의무대와 군병원을 왔다갔다 했다. 그럴 때마다 별다른 진단명을 받지 못했다. 동기와 선임은 슬슬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도 원인을 몰라서 어릴 때 천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내가 천식인 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한테 민폐 끼치지 말라며 화를 내는 동기도 있었다. 내가 원해서 간 군대도 아니었지만, 나는 괜히 군대에 와서 동기들 발목이나 잡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에 정신과 군의관을 만났다. 의무대에서는 대기자가 많아서 어렵다고 한 것을, 중대장이 어거지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군의관은 지금까지의 진료기록을 보고 나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이후 나를 데려간 부소대장이 대신 진단명을 들었다. 부소대장에 따르면, 나는 공황장애였다. 겨울이 한창일 때, 나는 사단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 두세 번 약을 받았다. 약을 먹을 때는 간부가 보는 앞에서 잘 삼켰는지 검사받아야 했다. 사단에서 가장 심각한 환자라서 관찰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 후 봄이 되었을 때, 나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현역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후 푹 쉴 틈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엄마가 한창 개인회생 중인데,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 다행이 군복무하기 전에 다니던 곳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익숙한 곳이라는 안도감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약을 계속 먹은 덕분이었을까. 구체적인 원인은 모르겠지만, 병영 밖에서는 쓰러질 만큼 과호흡하는 증상이 거의 없었다. 전철을 타면 종종 다리에 힘이 풀리는 정도였다. 물론 하루종일 피로감, 두통, 자살생각에 시달렸지만, 단순한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대로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군대 관련 뉴스나 드라마를 접하면 그 때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만약 내가 어느정도 유명해졌을 때, 당시 나를 의심하던 동기나 선임, 간부가 나를 병역기피자로 몰아가면 어떻게 될까. 이 잔인한 세상에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고립되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이 진실보다 가십거리에 관심 있고 정신질환에는 무관심하니, 평소 내 글에 불만 있던 사람들이 나에 대한 루머를 적극 확산시키지는 않을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민감해 하는 군대 문제 아닌가. 물론 동기나 선임에게는 아무 전문성 없는 증언 밖에 없고, 나에게는 지금까지 치료받은 기록이 있다. 내가 정말 꾀병을 부린다고 여겼다면, 군의관도 몇 개월 씩 향정신성 약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현역부적합심사가 있는 이유가 기피자를 걸러내기 위해서 아닌가. 나는 그 심사를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도 하루 8알이 넘는 약을 삼킨다. 두꺼운 심리검사지도 갖고 있다. 약을 안 먹으면 하루종일 이마와 명치가 꽉 조이는 듯한 느낌 속에서 눈을 뜨고 있을 기운도 잃는다. 이렇듯 나한테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증거들을 나열해도, ‘만에 하나’ 모두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어제 오전부터 지금 12시 40분까지, 이런 상태로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보며 인공지능에 번역을 맡기는 반복 작업만 이어갔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중간에 낮잠도 잤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털어놓으며 한참 대화하고 난 뒤에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편안해졌다. 같은 말도 내가 나에게 하는 것과 남이 나에게 해 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모양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난 어디까지 갔을까. 의문은 떠오르지만 자세히 추론하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자고, 다시 자료 정리에 전념해야겠다. 불필요하고 부당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한 꼬집 만큼이라도 기여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막연한 낙관이지만, 막연한 비관보다는 나은 것 같다. 만약 세상에 신이 있다면, 모든 노력이 실패했을 때 위로해주고 다시 한 번 기운을 주는 존재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 시편 23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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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리
2시간 전
이완님 글을 자주 읽는데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을 담고 사시는거 같아요. 생각의 무게에 눌러있는 모습이랄까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가져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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