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觀海
14시간 전
영국 정부가 최근 영주권 제도를 대폭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5년을 거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원칙적으로 1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만 일정한 요건을 갖춘 연봉 £50,270 초과자는 5년, £125,140 초과자는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시행 전인 개편안입니다.
영국에서 살아보신 분들은 연봉 £50,000이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2026년 영국의 법정 최저임금은 21세 이상 기준 시간당 £12.71입니다. 주 40시간 일해도 세전 연봉이 약 £26,437입니다.
정규직 근로자의 연봉 중위값은 £40,911이고, 약 3명 중 2명은 연봉 £50,000 이하입니다.
영국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이 연봉 £50,270에 도달하려면 소득이 거의 두 배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원래 이민자의 노동력으로 성장해 온 나라입니다.
2024년 영국의 해외 출생 인구는 약 1,31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입니다. 2004년 약 526만 명에서 20년 만에 2.5배가 됐습니다.
이렇게 이민자를 받아들여 온 영국이 왜 이제는 이민의 문턱을 높이는 것일까요?
영국의 이민사를 돌아보면 세 가지 아이러니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윈드러시 세대입니다.
1946년 영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노동력이 최대 1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공장을 돌리고,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1948년 6월 22일,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들을 태운 엠파이어 윈드러시호가 영국 틸버리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2주 뒤인 7월 5일, 영국의 자랑인 NHS가 출범했습니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가 제시했던 복지국가의 구상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저절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할 간호사와 의료지원 인력부터 부족했습니다.
카리브해와 영연방 출신 이민자들은 병원과 공장, 버스와 철도에서 일하며 영국의 전후 재건을 도왔습니다.
2011년 인구총조사 당시 영국에 거주하던 1971년 이전 입국 영연방 출생자는 약 60만 명이었습니다. 이른바 윈드러시 세대를 포함하는 인구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처음 살았던 집의 주인도 스리랑카 출신 이민 2세대였습니다.
윔블던에서 학교를 나온 그는 누가 들어도 영국인다운 영어를 썼습니다.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할 만큼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스리랑카에 남아 있는 친척들에게 돈을 보내거나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영국인이면서 동시에 스리랑카인이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이민이 단순히 국경을 넘어오는 일이 아니라, 한 사회에 뿌리내리고 다음 세대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아이러니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이민자의 복지 수급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복지국가를 만들고 운영하던 시절에는 이민자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이민자가 복지제도에 얼마나 부담을 주느냐를 논쟁하지만, 과거에는 그 이민자들이 복지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동유럽 노동자들입니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정부는 해외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997년 약 4만 7천 명이던 영국의 연간 순이민은 2004년 약 22만 3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004년 5월 1일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8개국이 EU에 가입했을 때도 영국은 노동시장을 즉시 개방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서유럽 국가들이 신규 회원국 노동자들의 취업을 일정 기간 제한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영국과 함께 바로 문을 연 나라는 아일랜드와 스웨덴이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폴란드와 동유럽 노동자들이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2004년 약 150만 명이었던 영국의 EU 출생 인구는 2021~2022년 약 4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폴란드 출생자만 약 84만 명이었습니다.
호텔과 식당, 농장, 건설현장, 공장, 물류창고까지 영국 경제 곳곳에서 일했습니다.
블레어 시대 영국은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호황을 누렸습니다. 1997~2008년 영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미국 다음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2020년 말 EU 노동자의 자유이동이 끝났고, 하필 그 무렵 코로나19까지 터졌습니다.
2019년 6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영국의 EU 국적자 급여 고용 건수는 17만 1천 건 감소했습니다. 숙박·음식업에서는 무려 25%가 줄었습니다.
NHS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EU·유럽경제지역 출신 간호사의 신규 등록은 2015/16년 9,389명에서 2017/18년 793명으로 급감했습니다.
물론 이후 영국은 인도 등 비EU 국가에서 의료인력을 충원했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서비스업과 돌봄 분야에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영국의 작은 호텔이나 식당에 갈 때마다 영국인 청년들이 서빙을 했는데 손이 서툰 경우가 많았습니다.
숙련된 동유럽 직원 3명이 하던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영국인 직원 5~6명을 채용하고 교육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코로나 이후 영국 경제는 구인난 발 고물가로 고통받았습니다. 반면 영국에 노동자를 보냈던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 성장을 귀국한 노동자들 덕분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겠습니다.
두 번째 아이러니입니다.
세 번째는 홍콩 이민자들입니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영국 정부는 홍콩 주민들에게 특별한 이민 경로를 열었습니다.
과거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의 역사적 책임을 이유로 BN(O) 비자를 도입한 것입니다.
2021년부터 2026년 6월까지 약 17만 4천 명이 이 비자로 영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전의 이민자들이 주로 노동력을 가지고 왔다면, 홍콩에서는 상당수가 자산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2026년 옥스퍼드대 이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홍콩 BN(O) 이민자의 주택 소유율은 52%였습니다. 최근 영국에 들어온 다른 이민자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제가 살던 윔블던에서도 홍콩에서 온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학교와 주거환경을 갖춘 윔블던은 자녀교육을 중시하는 가족들이 선호하는 곳이었습니다.
홍콩의 아파트 한 채를 팔면 윔블던에 집을 두 채 사서 하나에는 살고, 다른 하나에서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국경을 넘으면 노동력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축적한 자산과 지식, 소비와 교육에 대한 수요도 함께 움직입니다.
세 번째 아이러니입니다.
영국은 홍콩 주민들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역사적 책임으로 문을 열었는데, 결과적으로 홍콩의 자본과 인재까지 영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사례를 돌아보면 영국의 이민정책에서 한 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저는 이민을 많이 받아야 한다거나, 반대로 이민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난 영국에는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블레어 시대에는 유럽 단일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했습니다.
홍콩에는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인재와 자본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반면 브렉시트 이후에는 국경 통제의 자율성을 얻는 대신 노동력 확보에 드는 비용도 경험했습니다.
영국의 선택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의도한 성과를 얻기도 했고, 예상하지 못한 비용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영국은 이민자의 소득과 전문성, 사회적 기여를 더욱 엄격하게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AI 시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는 국가 경제력의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일할 사람이 많았고, 생산과 소비도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인구를 늘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AI가 인간이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앞으로도 노동자의 숫자가 지금처럼 중요할까요?
아니면 더 적은 인구로도 훨씬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 내는 국가가 등장할까요?
영국의 이민 정책 변화를 보면서 국가가 사람과 노동을 바라보는 기준도 언젠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저출생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도 그 목표를 뒷받침하던 전제들이 모두 그대로 유효할까요?
기존 정책이 모두 잘못됐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기술과 산업구조가 바뀐다면 정책의 목표와 수단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책의 일관성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추구하는 목적의 일관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민을 확대할 수도 있고,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제도와 고용정책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목적까지 달라질 이유는 없겠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면, 국가가 던지는 질문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觀海
제 서재에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남겨두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사행건樂 by 戒盈杯>
https://m.blog.naver.com/realguy81/22446834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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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댓글

송혜성
9시간 전
영국도 빗장을 잠그는군요. 프랑스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겠지요. 이해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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