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6.12.
소수 극단주의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면 극단주의가 잠잠해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증명 못 할 전제가 있다. 하나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정치적으로 소외된 소수파가 얌전히 물러날 것이라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극단주의자를 제외한 모두가 그 무반응 전략에 협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극단주의자는 제 풀에 지쳐서 잠드는 갓난아기가 아니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어려우면 극단주의는 꾸준히 설득력을 얻는다. 게다가 지금도 대형 유튜버가 합법적 몽둥이 운운하는 상황이다. 눈앞의 보상도 뚜렷하지 않고, 제재 수단도 없고, 지도부도 없는 전국민적 극단주의 무시 운동이 제대로 작동하기란 극도로 어렵다.
무시는 곧 정치적 배제이고, 어느정도 규모 있는 정치 운동은 배제당할수록 더 분노하고 더 강해질 수 있다. 나치즘이 위태로웠던 시기는 혁명 이후 대공황 이전, 바이마르 공화정이 그럭저럭 성장하며 잘 작동할 때였다. 대공황 이후, 나치는 순식간에 불어나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양면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무시가 합리적인 전략인지는 둘째 치더리도, 다 같이 합리적으로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은 매우 공상적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좌우 극단주의가 나타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정부가 무너진 노동시장을 방치한 채 아파트 매매가와 주가만 거품처럼 부풀리고 있는 한, 좌우 극단주의는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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