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페로
2026.08.21.
<국가의 부채는 왜 줄어들지 않는 걸까?>(1편)
1. 두 개의 기사에서 보는 쟁점
"한국의 나라 빚 6,515조 사상 최대."
"금융당국, 가계부채 관리 강화… 대출 조인다."
같은 시기의 신문에 실린 두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의문을 가져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나라 경제 전체의 빚이 사상 최대라는데, 정부가 걱정하며 줄이겠다는 빚은 왜 언제나 '가계'의 빚일까?
여기에 더해 "올해 우리 정부는 빚을 갚아서 정부부채를 줄였습니다"라는 뉴스를 접한 적도 없으실 겁니다.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일 수도 있죠.
이 지점에서 가계부채는 엄격히 관리하면서 정부부채에 대한 통제는 느슨하게 하는, 부채 관리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래 두 가지 질문을 통헤 다뤄보려고 합니다.
-왜 국가의 부채는 줄어들지 않는가?
-왜 가계부채만 언제나 스포트라이트의 대상이 되는가?
2. 메커니즘 — 국가가 부채를 늘리기만 하는 세 가지 이유
(1) 첫 번째: 보상의 비대칭성
정치인에게 지출은 표가 되고, 증세와 긴축은 표를 잃게 만듭니다.
보조금을 주면 혜택은 당장 눈에 띕니다. 당장 내 손에 쓸 수 있는 현금이 들어오는 것만큼 즉각적이며 효과적인 보상은 없습니다. 반대로 지출을 깎으면 고통은 특정 집단(연금 수급자, 보조금 수혜자, 공무원)에 집중되며 이 고통 또한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절약의 효과는 전 국민에게 고루 퍼지며, 짧게는 수개월, 많게는 몇 년이 지나서야 나타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외부효과란 어떤 사람이 내린 결정과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외부효과에는 긍정적인 외부효과도 있으나, 다른 사람이 배출한 가스를 우리가 들이마시는 부정적 외부효과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부효과는 스스로 개선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시각"과 "타인의 이해관계"를 이해하는데 서툽니다. 그러다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고, 자신의 이해관계만 중시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외부효과가 개선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합니다.
부채를 감축하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미래 사람들을 위한 선택입니다. 당장에 효과를 볼 수 없는 긴축을 결정하기 위해선 정치인의 시야는 다음 선거를 넘어서, 아니 향후 10~20년을 넘어서 까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긴축으로 인한 고통은 향후 30년 뒤의 미래세대들을 위한 우리의 결단입니다" — 이런 슬로건을 좋아할 유권자는 별로 없으며, 그런 장기적 시야를 가진 정치인이 없는게 현실이죠.
즉각적이며 특정 집단에게 집중되는 고통은 저항을 만들고, 분산된 편익의 효과는 장기적인 관점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도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를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는 보상의 비대칭성을 상징적으로 내비치는 말이면서, 부채가 구조적으로 줄어들기 어려움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문장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긴축이 선거 필패 카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공식과도 다름없습니다.
(2)두 번째: 시간의 불일치
정치인의 임기는 4~5년인데 국채의 만기는 10년, 30년입니다. 오늘 발행한 국채의 원리금을 갚을 의무는 오늘의 정부가 질 필요가 없습니다. "쓰는 사람 따로, 갚는 사람 따로"인 이 구조에서 빚을 억제할 유인은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통 선진화된 자본주의를 운영 중인 국가들은 '재정준칙'이라는 것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OECD 38개국 가운데 튀르키예와 함께 유일하게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입니다. 빚의 폭주를 막을 유일한 방패막도 없는 상태라면 정치인들은 어떤 결정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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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fiscal rules)>
재정수지, 재정지출, 국가채무 등 총량적 재정지표에 수치화된 목표를 정하고 그 달성 방안을 법제화해, 재정당국의 재정운용에 제약을 가하는 체계.
IMF는 재정준칙의 세 가지 구성요소로 ①헌법·법률·가이드라인·국제협약 등 법적 토대 ②재정수지·국가채무·지출총액 등 총량 목표 ③위반 시의 사법적·금전적·신용적 제재를 제시.
<한국의 재정준칙 입법 시도> — 세 번 설정 시도, 세 번 모두 국회에 막혀 실패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의결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의 '한국형 재정준칙' 역시 입법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3% 이내로 묶는 도입방안을 확정하고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해 연내 법제화를 추진했습니다. 재정건전화대책 수립을 의무화하는 보완장치, 준칙 한도를 5년마다 재검토한다는 변경 주기가 담겼습니다. 그러나 이 개정안도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습니다.
재정준칙은 105개 국가에서 도입 중이며, OECD 38개국 가운데 도입 경험이 전무한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라는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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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 번째: 인플레이션이라는 '몰래 걷는 세금'
부채를 줄이는 정공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지출을 깎거나(긴축),
세금을 더 걷거나(증세).
긴축과 증세 모두 유권자는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샛길이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부채의 명목 금액은 그대로여도 실질 가치가 녹아내립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에 편승해서 부채의 실질가치를 녹여버리는 겁니다.
부채 계약은 '명목 기준(nominal)'으로 이행됩니다. 100만 원어치의 국채를 정부가 10년 만기로 발행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10년 사이에 어마무시한 인플레이션으로, 과거 100만 원의 현재 가치는 200만 원(2배 상승)이 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래도 정부는 100만 원만 갚으면 됩니다. 화폐의 실질가치는 싸그리 무시하고 액면금액, 즉 명목금액만으로 채무를 이행하면 됩니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서 채권자 입장에서 봅시다. 10년 뒤 100만 원을 상환받으면 거래는 끝납니다. 그런데 현재 100만 원의 구매력은 10년 전 대비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10년 전의 50만 원 가치 수준).
채권자의 사라진 구매력은 누가 가져간 것일까요? 바로 채무자였던 정부입니다. 정부는 100만 원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현재가치 200만 원이 아니라 명목금액인 100만 원만 갚음으로써, 자신의 채무 부담을 물가상승분만큼 채권자에게 이전했습니다. 채무자의 채무 부담이 경감된 만큼, 채권자의 자산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는 것으로 균형은 맞춰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에선 어떻게든 빚을 내서 자산을 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정부가 그것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인플레이션의 세상에선 명목금액을 지불해야 할 자는 승리자가 되고, 명목금액을 지불받아야 할 자는 패배자가 된다." 이 유인이 전 세계에 부채로 찌들어 있는 정부가 끊임없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려고 하는 주된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한가?'라는 글에서 이 내용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물가가 두 배가 되면 100조 원의 빚은 실질적으로 절반이 됩니다. 물론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방어벽이 있고,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퍼지면 새로 빌리는 돈의 이자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상보다 높은 물가상승이 발생하면, 이미 낮은 금리로 발행해 둔 국채의 실질 가치는 조용히 줄어듭니다. 그 부담은 누구에게 갈까요? 현금·예금·고정소득 자산을 가진 사람들(예금자와 연금 가입자)입니다.
국회 표결도, 세율 인상 발표도 없이 부채 부담이 재분배된다는 점에서, 경제학은 이를 '인플레이션세'라 부릅니다. 실제로 물가상승률은 명확하게 측정되기도 어려우며, 우리가 몸으로 체감하는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주거비 등의 지표가 물가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아,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얼마나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국가가 노리는 지점입니다. 증세도, 긴축도 없이 국가 부채의 실질가치를 녹여버리는 가장 뛰어난 계책. 암이 침묵의 살인마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침묵의 살인마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세 가지 이유를 겹쳐 보면 결론이 나옵니다.
부채 감축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정치적으로 수지가 안 맞는' 것이죠. '늘리면 박수, 줄이면 돌팔매, 몰래 녹이면 무저항'인 이 보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부채는 줄지 않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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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국
2026.08.21.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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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2026.08.21.
오늘도 좋은 공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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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2026.08.25.
진짜 디테일하게 써주셨습니다. 글 쓰시느라고 힘드셨겠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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