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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관
3시간 전
베트남 기업 창업일화 | 빈그룹(Vingroup) 빈그룹(VIC) 창업신화, 우크라이나의 라면 사업은 어떻게 베트남의 아파트가 됐을까? 여러분, 베트남의 아파트와 리조트로 유명한 기업이 처음 팔았던 것이 인스턴트 면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창업 무대도 베트남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였습니다. 팜녓브엉이 키운 빈그룹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라면 회사를 팔아 그 돈으로 부동산을 시작했다”라고 설명하면 중요한 순서가 틀립니다. 그는 식품회사를 매각하기 전부터 베트남에서 리조트와 상업시설을 개발했습니다. 오늘은 라면 한 봉지에서 거대 기업으로 이어진 과정을, 이 흔한 오해부터 풀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간을 1993년으로 돌려보지요. 소련에서 유학을 마친 팜녓브엉은 아내와 함께 우크라이나로 향했습니다. 가족과 지인에게서 모은 돈은 1만 달러. 그 돈으로 베트남 식당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고층 건물이나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매일 손님이(이어서) 찾아와 한 끼를 먹는 작은 사업이었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베트남에서 들여온 생산설비로 인스턴트 면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 설립한 테크노컴(Technocom), 그리고 식품 브랜드 미비나(Mivina)가 이후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파는 것과 공장에서 식품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식당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음식을 내놓습니다. 공장은 제품을 만들어 여러 판매처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설비와 원료, 유통에 돈이 먼저 들어갑니다. 많이 팔릴 기회와 팔리지 않을 위험이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그가 선택한 확장에는 아찔한 숫자가 등장합니다. 포브스는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월 8%의 이자로 돈을 빌렸다고 전합니다. 연 8%가 아닙니다. 이 대목을 단순히 ‘배짱이 성공을 만들었다’고 읽으면 위험합니다. 매출이 늦어지거나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빚이 사업을 압박할 수 있는 조건(이어서)이었습니다. 홍보 방법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조미료 소포장 제품 50만 개를 베트남을 주제로 한 달력과 함께 배포했습니다. 낯선 제품의 장점을 길게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맛보게 한 것입니다. 라면이라는 출발점 때문에 놓치기 쉽지만, 테크노컴은 조미료 등 건조 식품으로도 사업을 넓혔습니다. 이후의 변화는 우크라이나 밖에서 시작됩니다. 빈그룹 공식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2001년 빈펄, 2002년 빈컴이 출범했습니다. 식품회사가 여전히 운영되던 때입니다. 해외 사업에서 만든 기반을 고향의 다른 산업에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대표 무대는 나트랑이었습니다. 포브스는 그가 나트랑을 방문한 뒤 해안 앞 섬의 리조트 개발에 나섰다고 소개합니다. 식품은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먹는지 읽어야 하는 사업입니다. 리조트는 앞으로 어디에서 휴가를 보내고, 어떤 숙박 경험을 원할지 내다봐야 합니다. 기존 제품을 다른 나라에 파는 것보다 훨씬 큰 방향 전환이었(이어서)습니다. 첫 빈펄 리조트는 2003년 문을 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하노이의 빈컴 바찌에우가 등장했습니다. 관광과 도시 상업시설이라는 두 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훗날 이름이 널리 알려진 브랜드들도 이렇게 서로 다른 시장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제 기억해 둘 연도는 2010년입니다. 테크노컴이 네슬레에 매각됐습니다. 이미 리조트와 상업시설이 문을 연 뒤였습니다. 따라서 ‘라면 회사를 매각한 다음 부동산에 처음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바뀐 셈입니다. 포브스는 매각 당시 테크노컴의 연 매출을 약 1억 달러, 거래금액을 약 1억5,000만 달러로 소개했습니다. 다만 거래금액은 언론의 추정치입니다. 공식 확정액처럼 적거나, 당시 환율도 밝히지 않고 원화로 환산해 창업의 극적인 숫자로 쓰는 것은 피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다음 중요한 해는 2012년입니다. 1월 빈컴과 빈펄이 합병하면서 빈그룹이라는 그룹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빈그룹 설립이(이어서) 1993년인가, 2012년인가’라는 질문에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1993년은 전신 테크노컴의 출발, 2012년은 두 주요 기업이 합쳐진 그룹 체제의 전환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빈그룹의 성장사는 라면 한 품목의 대성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식품사업에서 기반을 만들고, 다른 나라의 관광과 부동산에 투자한 뒤, 여러 사업을 그룹으로 묶은 과정입니다. 각 단계는 고객도, 필요한 자본도, 운영방식도 달랐습니다. 여기서 창업자의 꿈도 흥미롭습니다. 포브스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에는 그저 가족을 부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의 그룹 전체를 상상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실제 회고와 다릅니다. 작은 생계의 목표가 사업 경험과 함께 커진 것입니다. 또한 식품을 팔던 능력이 리조트 운영 능력으로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설과 인력, 고객 서비스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매각대금의 크기만큼이나 그전에 실제 시설을 열었다는 사실이 중요합(이어서)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전환입니다. 다만 창업자의 선택을 나중의 성공만 보고 언제나 옳았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금리 차입과 대규모 개발에는 실패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과거의 성장사는 현재 VIC 주식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자료와도 다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팔리던 인스턴트 면과 나트랑의 리조트.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 사이에는, 먼저 번 돈을 다음 사업의 기회로 연결하려 했던 선택들이 있습니다. 빈그룹의 창업신화는 그 연결을 따라갈 때 가장 선명해집니다. #베트남기업창업일화 #빈그룹 #Vingroup #VIC #팜녓브엉 #미비나 #빈펄 #창업스토리 #베트남기업 #베트남경제 나머지 시리즈도 하루에 하나씩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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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바위
1시간 전
흥미로운 사실이군요. 베트남 기업이라고 해서 권력의 뒷배로 사업을 일군 것으로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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