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시간 전
어떤 진보주의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외치며 정치적 반대자를 혐오한다. 누구에게나 혐오스러운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상대방에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노한다. 그 반대자가 빈자여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타고난 성향과 자라난 환경, 지금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누구나 직접 고른 적 없고 앞으로도 고를 수 없은 기억과 습관, 편향을 갖고 있다. 그런 '개성'들이 모인 곳이 사회다.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내 학식이 부족하다. 다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수는 있어도, 무엇을 원할지는 고를 수는 없다. 당장은 그 의견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누군가는 원하지 않아도 고수를 먹고 샴푸 맛과 역겨움을 느낀다. 반면 누군가는 고수의 톡 쏘는 맛을 즐긴다. 누군가는 새우를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반면 누군가는 새우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먹는다. 각자가 자기 입맛과 알러지를 고를 수 없다면, 다른 선호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특정 선호만 다르다고 주장하는 쪽이 특별한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그 고를 수 없는 선호 중 하나가 '내집단 편향'이다. 사람은 같은 집단 정체성을 공유하는 상대를 더 좋아한다. 서울에 상경한 호남 사람은 같은 호남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영남 사람도 비슷하다. 유학생은 어디서나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더 잘 뭉치고, 이민자도 그렇다. 이런 모습은 나이, 성별, 국적, 문화, 시대를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내집단 편향은 사람을 '부족 구성원'으로 살게 한다. 부족원에게 최우선 사항은 사실 확인이나 보편적 인권 수호가 아니라 부족의 존속이다. 사실 확인 등도 부족의 존속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부족의 생존에 어울리는 정보를 사실로 여긴다. 그래서 더 많은 정보는 가짜 뉴스 앞에서 자주 힘을 잃는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적 차이는 상대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새우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어딘가 결여된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할 뿐만 아니라 진보적이지 않은 태도이기도 하다.
상대를 나와 비슷한 원리로 이뤄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서로 조건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난한 보수주의자, 궁핍한 극우파를 보는 시선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정말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이상적인 인간상과 상대를 비교하며 상대를 인간 이하로 규정하는 무례함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존중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크게 다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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