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觀海
3시간 전
오늘 핼러윈, 런던에서 딱 한 곳을 걸어야 한다면 저는 햄스테드(Hampstead)를 추천합니다.
런던에서 핼러윈으로 유명한 곳은 노팅힐의 엘긴 크레센트(Elgin Crescent)입니다. 아름다운 주택들이 호박과 해골, 거미줄로 장식되고, 아이들은 저마다 코스튬을 입고 “Trick or Treat!“을 외치며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햄스테드를 더 좋아합니다. 조금 더 한적하고, 오래된 런던의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핼러윈 장식도 좋지만 사실 햄스테드는 가을의 골목 자체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햄스테드는 런던의 전통적인 부촌이기도 합니다. 배우 주드 로와 다니엘 크레이그 등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손흥민 선수도 이곳에 살았습니다.
유명인들이 선호하는 동네이지만, 제가 좋아했던 것은 오히려 평범한 골목의 풍경이었습니다.
햄스테드역에서 나와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를 걷습니다.
1977년 문을 연 La Crêperie de Hampstead에서 크레페 하나를 사 들고 언덕을 오르곤 했습니다.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크레페를 먹는 맛이 참 좋았습니다.
플라스크 워크(Flask Walk)에 들어서면 작은 가게들과 오래된 주택들이 이어집니다.
햄스테드는 18세기 광천수로 유명했던 동네입니다. 런던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는 물을 마시러 찾아오던 곳이지요. Flask Walk라는 이름에도 당시 광천수를 병에 담아 팔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이 골목에서 제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집집마다 선명한 색깔로 칠해진 대문들이었습니다. 빨강, 파랑, 초록색 대문들이 오래된 벽돌 건물과 어우러집니다. 같은 골목인데도 집마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조금 더 걸어 홀리 부시(The Holly Bush)에 이릅니다.
원래 18세기 말 마구간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1807년에는 연회장 부속시설로 바뀌었고, 이후 지금과 같은 펍이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오래된 벽돌과 건물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넝쿨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을이면 붉고 노랗게 물든 잎들이 벽돌과 어우러지는데, 저는 영국에서 이런 풍경을 참 좋아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힐 가든 앤드 퍼골라(The Hill Garden and Pergola)에도 들러볼 만합니다.
1905년 비누 사업가 윌리엄 레버가 자신의 저택을 위해 조성하기 시작한 정원입니다. 오늘날 유니레버의 뿌리가 된 기업을 세운 인물이지요. 지금은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됐습니다. 오래된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햄스테드 히스의 가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스패니어즈 인(The Spaniards Inn)을 만나면 맥주 한잔을 마시며 쉬어갑니다.
건물의 역사가 15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곳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픽윅 페이퍼스》에도 등장하고, 시인 존 키츠와도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400년 넘는 역사를 품은 건물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영국에서는 펍도 역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력이 남으면 켄우드 하우스(Kenwood House)까지 걸어가 봅니다.
17세기에 시작된 저택을 18세기 건축가 로버트 애덤이 개조했습니다. 이후 기네스 가문의 소유가 됐다가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지금은 렘브란트와 베르메르의 그림도 볼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출연한 영화 노팅힐에서 윌리엄이 애나의 영화 촬영장을 찾아가는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습니다.
정원을 걷고 차 한잔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지나갑니다.
제가 햄스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1977년 문을 연 가게에서 크레페를 사 들고, 18세기의 흔적이 남은 골목을 걷습니다. 400년 넘는 역사를 품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옛 귀족의 저택에서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합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생활하며 좋았던 모습 중 하나입니다.
런던의 가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끝나면 오후 4시만 넘어도 어둑해집니다. 핼러윈이 지나고 가이 포크스의 밤에 불꽃놀이가 열리면, 곧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조명이 켜집니다.
그렇게 런던의 가을이 겨울로 넘어갑니다.
아직 가을이 남아 있는 지금, 크레페 하나를 들고 플라스크 워크의 알록달록한 대문과 붉게 물든 담쟁이넝쿨 사이를 걸어보셔도 좋겠습니다.
Happy Halloween!
觀海
제 서재에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남겨두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사행건樂 by 戒盈杯>
https://m.blog.naver.com/realguy81/22446018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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