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3시간 전
물론 삶의 방침을 찾았다고 해서 곧바로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고통 끝에 고통 뿐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다. 정확한 확률따위 계산할 줄 몰랐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겪은 일, 세상에 일어나는 일만 봐도, 고통스런 노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볼 수 없었다. 누구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지만, 그 말은 적어도 나한테는 시지프의 형벌에 계속 갇히게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고통 끝에 고통이 있다는 믿음 역시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누구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미래는 누구도 모르니까. 나는 이 부분에 강박적으로 얽매여 있었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누구도 나쁜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미래에 어느 쪽이 실현될 것이라고 단정짓기에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다고 강조하는 철학자도 많았다.
불확실함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불확실함은 고통의 무의미함과 유의미함, 어느 쪽도 지지해 주지 않았다. 불확실함 앞에서는 그저 ‘모른다’가 정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 아무것도 고르지 않을 수는 없으니, 여기에서도 나는 파스칼의 내기를 응용했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나는 무의미함과 유의미함, 어느 쪽이 실현될 확률이 더 높은지 모른다. 이때 무엇을 하든 무의미할 것이라고 믿고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고통이 아무 보람도 가져다주지 않을 경우 괜한 움직임을 줄여서 에너지를 아끼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실업을 겪어 본 사람은 알 테지만, 가만히 있는 것도 마냥 편안하지 않다. 내 방에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누워 있는 것도 공짜가 아니니까.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내 몸의 에너지를 아끼는 대가로 어떤 식으로든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다. 게다가 세상이 잘못 돌아갈 때 스스로를 지킬 여력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고통 끝에 보람 있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즉 고통에 보람이 없다는 믿음이 틀렸다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후회에 빠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고통에 보람이 없다고 믿는 선택지는 최악의 경우도 마이너스고, 최선의 경우도 마이너스다.
반대로 고통이 유의미하리라 믿고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 고통만 겪고 좌절할 것이다. 최선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한 성과와 좋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고통에 보람이 있다고 믿는 선택지는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지만 최선의 경우 플러스가 기다린다. 세상은 불확실해서 희망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고통 뒤에 무언가 유의미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득이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세상 모든 고통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몸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근육이 녹을 정도로 훈련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고문이다. 나중에 보상해 줄 것이라고 믿고 계약서도 없이 일하는 것은 보람 없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고통이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사회적 상황을 살폈을 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큰 고통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 고통은 감당할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결과가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런 전망이 곧바로 의욕을 키워주지는 않았다. 내 경험 상,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다. 애써 밝은 미래를 떠올리려고 해도 잿빛만 보일 뿐이었다. 흔히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움직여야 한다고 하지만, 애초에 움직일 수 있다면 무기력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무기력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자동으로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내린 허무주의가 사라진다고 볼 수도 없었다.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덜 무기력할 때 나 자신을 움직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계산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해야 했다. 이때 파스칼의 내기가 가장 다루기 좋은 생각 전략이었다.
- 분량 탓에 '청년 자살 사회'에서 삭제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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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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