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
2026.08.11.
유럽연합에는 아직도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 독일도 2015년에야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렇다.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최저임금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모두 경제, 사회 양면으로 진보한 곳이고 무엇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오랜시간 권력을 잡은 곳이다.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에서는 1870년대와 80년대부터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과 그 조직들이 등장했고, 핀란드에서도 같은 시기에 훗날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는 노동자 조직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하나의 민주적 수권 정당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노동당이 60년 넘게 집권했다.
그럼에도 저 네 국가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연합이 모든 회원국에 적용되는 적정 최저임금 지침을 마련하려 할 때, 스웨덴과 덴마크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유럽연합이 회원국의 임금 문제에도 개입하려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점, 그리고 북유럽 특유의 노사 단체협상 전통을 흔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덴마크 모델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는 노동자와 기업 양측의 폭넓은 지지다. 임금 통계를 보면 덴마크 모델은 전반적으로 덴마크 노동자 대다수가 적정한 수준이면서 좋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받도록 보장하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이나 단체협약의 보편적 적용에 기초한 병행 체계가 모든 노동자에게 적정한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임금을 확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덴마크 노동조합연맹은 법정 최저임금이 덴마크 모델의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 리제트 리스고르, 덴마크 노동조합연맹(FH) 의장, 2020년 1월 12일 가디언지
사회민주주의 본고장에서는 법정 최저임금을 그리 중요한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좌파는 법정 최저임금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심지어 '최저' 임금으로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려 한다. 마치 모든 사업주들이 부유층인 줄 아는 것 같다. 일부 노동운동가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하청기업인을 사실상 중간관리 노동자처럼 여기는데, 그러면서 생활임금을 요구한다면 이 노동자에게 저 노동자의 생계를 책임지게 하려는 셈이 된다.
최저임금은 생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노동자에게 좋은 생활수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람만 사업을 할 수 있다면, 이 나라에서는 극소수 현금 부자들만 기업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사업자가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산업주의적 사회주의 관점에서 자본과 노동은 한몸이다. 자본을 죽이면 노동자도 죽는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능력도 없이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현명한 사회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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